1979년 수립, 군사력으로 체제 유지
'이스라엘 패전에 통제력 약화' 해석
팔레비 전면에…왕정 복고는 미지수
![[테헤란=AP/뉴시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이끄는 이란 신정(神政) 체제가 갈수록 격화되는 반정부 시위로 최대 위기를 맞이했다고 서방 주요 언론이 진단했다. 사진은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지난해 7월29일(현지 시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숨진 군 관계자, 핵 과학자 등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에서 연설하는 모습. 2026.01.12.](https://img1.newsis.com/2025/07/30/NISI20250730_0000526695_web.jpg?rnd=20250730082608)
[테헤란=AP/뉴시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이끄는 이란 신정(神政) 체제가 갈수록 격화되는 반정부 시위로 최대 위기를 맞이했다고 서방 주요 언론이 진단했다. 사진은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지난해 7월29일(현지 시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숨진 군 관계자, 핵 과학자 등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에서 연설하는 모습. 2026.01.12.
[서울=뉴시스] 김승민 기자 =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이끄는 이란 신정(神政) 체제가 갈수록 격화되는 반정부 시위로 최대 위기를 맞이했다고 서방 주요 언론이 진단했다.
이란 정권은 강력한 군사력으로 체제를 수호해왔으나, 지난해 6월 이스라엘·미국과의 '12일 전쟁'에서 약한 모습을 보인 뒤 여론을 좀처럼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일(현지 시간) '전쟁으로 약화된 이란 정권, 가장 혹독한 도전에 직면하다' 제하의 기사에서 "이란 집권세력은 과거에도 '히잡 시위' 등 유사한 폭풍을 견뎌냈으나, 이번에는 정권 입지가 훨씬 취약하다"고 봤다.
이슬람 시아파 성직자가 대통령 위의 최고 권력자 '라흐바르(최고지도자)'를 맡는 이란 신정체제는 1979년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이란 혁명으로 수립돼 47년을 이어왔다.
이란은 혁명 직후인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신정체제 하에서 이라크와 총력전을 벌였고, 이란 국민들은 '외세의 공격으로부터 국민을 지켜주는 강력한 국가'를 내면화했다.
신정체제 하의 이란이 '중동의 맹주'로 불릴 정도로 군사력을 키운 덕분에 외세 침략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여기서 수반되는 정치적 자유 억제 등은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다고 인식해왔다는 것이다.
2009년 대선 부정선거 논란으로 촉발된 '녹색운동', 2019년 경제난으로 일어난 '피의 11월' 시위, 2022년 20대 여성 의문사로 벌어진 '히잡 시위' 등 2000년대 이후로도 강도 높은 반정부 시위가 여러 차례 벌어졌으나 모두 진압됐다.
그러나 이란이 지난해 6월 이스라엘·미국과의 전쟁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내보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이 외신과 전문가 평가다.
권위주의 정권이 패전 직후 붕괴한 사례는 국제정치사에 다수 있다. 세르비아, 아르헨티나, 그리스의 권위주의 정권은 각각 199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군의 코소보 폭격, 1982년 포클랜드 전쟁 패배, 1974년 키프로스 전쟁 패배 직후 실각했다.
WSJ은 "이란 전역에 걸친 이스라엘 공습은 이란군 지휘부를 상당 부분 파괴했고, 뒤이은 미국의 폭격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에 치명적 타격을 가했다"며 "본토 공격을 억제하는 데 막대한 국부를 투자해온 정권에게는 굴욕이었다"고 지적했다.
알리 바에즈 국제위기그룹(ICG) 이란 담당 국장은 "이란 정권은 그동안 번영이나 다원주의를 가져오지는 못하더라도 안보는 제공했다고 주장해왔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다"며 "사람들은 '이제 그만'이라고 말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해석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레바논과 시리아의 이란 대리세력은 사실상 소멸했고, 이란 영토 내에서 감행된 이스라엘의 대담한 공습은 정권이 얼마나 허약한지 보여줬다"며 "최고지도자는 여전히 이란이 미국 패권과 이스라엘 음모에 맞서는 저항의 선봉이라고 말하지만, 점점 더 많은 이란인들은 국가를 지켜낼 능력조차 없는 부패한 기득권 체제를 보고 있다"고 짚었다.
발리 나스르 존스홉킨스대 중동학과 교수는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이라는 외부 위협, 그리고 대규모 민중 봉기라는 내부 위협 사이에서 압착되고 있다"며 "교착에서 빠져나갈 쉬운 출구는 없으며, 이란 혁명은 이제 종말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내다봤다.
![[AP/뉴시스]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축출된 팔레비 왕조의 왕세자 레자 팔레비가 2006년 파리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AP 자료사진) 2026.01.12.](https://img1.newsis.com/2023/04/17/NISI20230417_0000126053_web.jpg?rnd=20230417055347)
[AP/뉴시스]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축출된 팔레비 왕조의 왕세자 레자 팔레비가 2006년 파리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AP 자료사진) 2026.01.12.
한편 신정 체제가 초유의 위기를 맞으면서, 1979년 이란 혁명 이전 정치체제인 팔레비 왕조의 복고 가능성에도 관심이 모인다.
WP 등에 따르면 이란 반정부 시위 영상에는 팔레비 왕조 시기 이란 국기가 종종 등장하고, 시내 광고판에 왕정 복고를 지지하는 내용의 낙서도 발견되고 있다.
특히 왕정 붕괴 후 미국에서 살아온 레자 키루스 팔레비 왕세자가 구심점으로 떠오를지에 이목이 집중된다.
유로뉴스는 "이란 이슬람공화국(신정 체제) 이전 정치질서의 상징이며, 현 체제에 맞선 가장 저명한 인물로 널리 인식되고 있다"며 "지속적 발전을 이루지 못한 현 체제의 실패와 왕정 시기 성과를 부각하는 미디어 서사들이 결합하면서 왕정 시기와 신정 체제의 이란을 비교하는 인식이 확산됐다"고 짚었다.
그는 17세였던 1978년 조종사 훈련을 받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는데, 이듬해 이란 혁명으로 부친 팔레비 1세가 축출되자 미국에 망명해 눌러앉았다.
팔레비 왕세자는 11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미국이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를 제거하는 것을 원하는지 묻자 "이란 국민은 미국의 개입 약속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고 긍정적으로 답했다. 그러면서 "이란의 이익, 미국의 이익, 그리고 지역 전체의 이익에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도록 그 뱀의 머리를 완전히 잘라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신정이 붕괴하더라도 왕정이 원상태로 복고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시위 현장에서 팔레비 왕조 언급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왕정 복고 자체를 주장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신정 체제 전복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대척점에 있던 구(舊)체제가 등장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팔레비 왕세자는 "유일한 해결책은 이 정권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이란 국민이 스스로 해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에 기반한 국민 중심 통치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며 신정 체제를 전복시킨 뒤 입헌군주국을 채택할지 공화국을 채택할지를 국민투표로 정하자는 입장이다.
미국에서 일생을 보낸 팔레비 왕세자의 국내 영향력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란사 전문가 아바스 아마나트 예일대 명예교수는 "팔레비는 주목도가 높지만 신기루에 가깝다"며 "그는 개인적 매력도, 조직화된 지지도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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