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역술인의 터전…미아리 점성촌이 스러지고 있다[현장]

기사등록 2026/01/03 08:00:00

최종수정 2026/01/03 08:18:25

전성기 100곳에서 10곳 안팎으로…고령화도 한몫

"쇠퇴는 어쩔 수 없지만, 공동체 소멸은 아쉬운 일"

"하루 한두 명 올까 말까"…발걸음 뚝 끊긴 점성촌

[서울=뉴시스]신유림 기자=서울 성북구 동선동 미아리 점성촌 일대. 2025.01.02. spicy@newsis.com
[서울=뉴시스]신유림 기자=서울 성북구 동선동 미아리 점성촌 일대. 2025.01.02.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신유림 기자 =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서울 성북구의 최대 번화가가 내뿜는 속도에 휩쓸려 나오던 발걸음이 7번 출구를 지나자 조금 느려진다. 대학생들의 웃음소리와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줄어들 즈음 골목 벽면에 붙은 작은 간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 철학원' '○○ 역학사' '작명·사주'. 번화가의 불빛에서 한 걸음 벗어나면 이곳, 오래된 시간이 숨 쉬는 동네를 마주할 수 있다.

성북구 동선동 일대에 자리한 '미아리 점성촌'. 이곳은 시각장애 역술인들이 모여 형성한 국내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남은 시각장애인 점성촌이다.

미아리고개는 오래전부터 사연 많은 고개로 불렸다. 서울 대문을 지키는 관문이자, 역사적 격변의 길목이었다. 병자호란 당시 외적이 넘어온 길이었고, 한국전쟁 때는 국군과 북한군의 교전이 벌어지며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단장의 미아리고개'라는 구슬픈 노래가 전해지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서울=뉴시스]신유림 기자=서울 성북구 미아리 점성촌에 첫 터를 잡은 역술가 이도병 씨가 2일 점자로 된 역학서를 보며 사주를 풀이하고 있다. 2025.01.02. spicy@newsis.com
[서울=뉴시스]신유림 기자=서울 성북구 미아리 점성촌에 첫 터를 잡은 역술가 이도병 씨가 2일 점자로 된 역학서를 보며 사주를 풀이하고 있다. 2025.01.02. [email protected]
한이 겹겹이 쌓인 고개라 시각장애 역술인들이 모였던 걸까. 지난 2일 점성촌을 찾아가 물었지만, 이곳에 첫 터를 잡은 이도병(86)씨의 설명은 달랐다. 이씨는 지금까지 고향인 철원을 내세운 철원철학관을 운영하고 있다.

미아리 점성촌은 1966년 이씨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씨는 원래 창신동·숭인동 쪽에서 역학을 배워 일을 시작했다. 그는 "스승님께서 북쪽이 좋다고 하셔서 올라오다 보니까 이쪽으로 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번듯한 가게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굴다리 밑에서 노상을 했어. 그러다 (손님들이) 용하다고 소문이 나서, 2년 만에 가게를 얻었지."

이씨가 자리를 잡자 사람들은 하나둘 더 모였다. 특히 남산 일대에서 활동하던 시각장애인 역술인들이 도시 정화라는 명목으로 철거되면서, 미아리고개 쪽으로 터전을 옮겼다. 그렇게 이 골목에는 시각장애인 역술인 공동체가 형성됐다.
[서울=뉴시스]신유림 기자=서울 성북구 미아리 점성촌에 첫 터를 잡은 역술가 이도병 씨가 공부해 온 역학서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2025.01.02. spicy@newsis.com
[서울=뉴시스]신유림 기자=서울 성북구 미아리 점성촌에 첫 터를 잡은 역술가 이도병 씨가 공부해 온 역학서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2025.01.02. [email protected]

전성기는 분명했다. 1980년대 한때 이 일대에는 100곳이 넘는 철학관이 들어섰다. 강태봉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 관장은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강 관장은 "버스가 올라가는 길 쪽으로 간판이 쭉 이어졌고, 아리랑고개 위 고가도로 근처까지 간판이 줄지어 있었다"며 "집 한 채에 두 집, 세 집이 함께 들어선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지금 골목은 그때와 전혀 다른 숨결을 내쉰다. 남아 있는 곳은 10곳 안팎이다.

"지금은 다섯 집? 열 집은 좀 넘을 텐데, 제대로 운영하는 데는 다섯 집 정도일 거야." 이도병 씨는 담담하게 숫자를 세듯 말했다. 줄어든 이유를 묻자 대답은 더 짧아졌다. "죽고, 이사 가고, 세를 올려달라니까 떠날 수밖에 없는 거지."
[서울=뉴시스]신유림 기자=서울 성북구 미아리 점성촌에 첫 터를 잡은 역술가 이도병 씨가 2일 점자로 된 역학서를 보며 사주를 풀이하고 있다. 2025.01.02. spicy@newsis.com
[서울=뉴시스]신유림 기자=서울 성북구 미아리 점성촌에 첫 터를 잡은 역술가 이도병 씨가 2일 점자로 된 역학서를 보며 사주를 풀이하고 있다. 2025.01.02. [email protected]
체념 섞인 말투에도 아쉬움이 묻어났다.

"어쩔 수 없다고 봐. 그래도 점성촌 자체가 없어지는 건 아쉬운 일이야."

사람들이 줄어들자 자연스레 일감도 말라갔다. 이씨는 "손님이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며 "많으면 하루 한두 명, 어떤 날은 아예 안 올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백일홍 여성 역학사' 간판을 단 김모(70대 후반)씨와 '흑진주 여성 역학사'로 불리는 우송정(82)씨 역시 "단골 덕분에 버틴다"고 말했다.

점성촌의 뿌리가 사라지지 않도록 붙잡는 곳도 있다. 점성촌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위치한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은 매년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역학 교육 과정을 운영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올해도 11개월 과정으로 15명을 모집해 오는 5일 개강을 앞뒀다.
[서울=뉴시스]신유림 기자=서울 성북구 동선동 미아리 점성촌 일대. 과거 철학원이었던 건물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5.01.02. spicy@newsis.com
[서울=뉴시스]신유림 기자=서울 성북구 동선동 미아리 점성촌 일대. 과거 철학원이었던 건물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5.01.02. [email protected]
하지만 교육만으로 쇠퇴를 되돌리기엔 역부족이라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강 관장은 시각장애인의 대표적인 직업군으로 안마사와 점술가가 거론되는 현실을 짚으며 "안마는 성장해 왔지만, 역술은 침체돼 왔다"고 말했다. 그는 "맹학교 교육 과정에 안마는 필수로 포함돼 있는 반면, 역학은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운세 산업이 인공지능(AI)과 결합하면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면서도 "시각장애인들은 아직 이런 사업 영역에 진입하지 못해 마케팅에서도 밀리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미아리 점성촌은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2014년 서울미래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에 당시 성북구는 점성촌 초입에 안내판과 점자 조형물을 설치해 그들의 존재를 새겼다.

그러나 이마저도 지금은 자취를 감췄다. 2023~2024년 사이 노후화와 차량 시야 방해 등을 이유로 민원이 제기되면서, 안내판과 조형물은 모두 철거됐다. 점성촌을 상징하던 표식도, 사람들도 서서히 스러지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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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 역술인의 터전…미아리 점성촌이 스러지고 있다[현장]

기사등록 2026/01/03 08:00:00 최초수정 2026/01/03 08: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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