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30일 심정지상태 중환자실 입원
순천향대병원 입원 엿새만에 세상 떠나
2019년 혈액암 진단…이듬해 완치 후 재발
1957년 다섯살에 데뷔 영화 140여편 남겨
완벽 가까운 필모그래피·사생활 국민배우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필모그래피와 사생활 모두에서 완벽에 가까웠다. 수많은 별이 떴다 질 때 70년 간 영화계를 지키며 한국영화의 아이콘이자 페르소나로 불렸다. 한국영화가 변화를 맞이하는 길목마다 그가 있었기에 모두가 그를 한국영화 이정표로 보고 따랐다. 그 오랜 세월 실력과 인성 모두 한결 같아서 동료 선후배 영화인 누구 하나 그를 우러러 보지 않은 이 없었다. 게다가 어떤 관객도 그를 싫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배우로는 유일무이한 타이틀인 국민배우라는 수식어를 늘 달고 살았다. 드라마·연극·뮤지컬 한 편 하지 않고 독야청청 영화만 찍었고 그렇게 약 140편을 남겼다.
국민배우 안성기(74)가 5일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지난 12월30일 심정지 상태로 순천향대학교병원으로 후송돼 중환자실에서 치료 받다가 입원 엿새만인 이날 오전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안성기는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왔다. 이듬해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암이 재발해 계속 치료해왔다. 2023년까지 부천판타스틱영화제 등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이는 건 물론 각종 외부 활동을 하며 후배 배우들을 통해 근황을 알리기도 했지만 이듬해부터 병세가 급격히 악화해 투병에 전념했다. 영화 '칠수와 만수'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라디오스타' 등에서 함께하며 영혼의 파트너로 불린 배우 박중훈은 지난해 방송 등에 나와 "안성기 선배 건강이 매우 안 좋다"고 했었다. 안성기는 생전 완벽에 가까운 자기관리로 60대 중반에 액션영화 주연을 맡으며 왕성히 활동했으나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했다.
1952년생인 국민배우는 운명으로 영화를 살았다. 다섯살이던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해 70년 간 영화배우로 산 그는 생전 자신의 영화 인생을 되돌아보며 "부모님 뜻도 아니었고 내 뜻도 아니었다. 그냥 운명적으로 시작됐다"고 말했다. 안성기는 마지막 작품인 '노량:죽음의 바다'(2023)까지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영화에 투신한 말 그대로 영화인이었다.
안성기 배우 인생은 크게 세 개 시기로 구분된다. 데뷔 후 1968년 '젊은 느티나무'까지 아역배우 시절이 1기, 학업 및 군대를 마치고 무역회사 직원으로 일하다가 다시 영화계로 돌아와 '바람불어 좋은 날'(1980)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81) '고래사냥'(1984) '칠수와 만수'(1988) '태백산맥'(1994) 등 주로 사회파 영화에 출연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가 2기, '투갑스'(1993)를 시작으로 '실미도'(2003) '라디오스타'(2006) 등 주류 상업영화에서 활약한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까지가 3기다.
안성기는 상업영화·독립영화·주류영화·비주류영화·리얼리즘영화·판타지영화·액션영화·로맨스영화·코미디영화를 가리지 않았고, 거지·승려·군인·형사·킬러·대통령·형·아버지·남편을 아울렀다. 그는 "어떠한 작품이든 진정성과 완성도가 있으면 가리지 않고 출연한다"고 했다. 이처럼 각기 다른 장르에서 수많은 캐릭터를 맡으면서도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에 걸쳐 각 시기마다 모두 주연상을 받아내는 탁월한 연기력으로 한국영화 상징으로 불렸다. 대종상·백상예술대상·청룡영화상·영평상 등 각종 시상식에서 그가 거머쥔 트로피만 40개가 넘는다.
안성기는 대한민국 최고 감독들의 페르소나이기도 했다. 그는 임권택·배창호·이장호·이두용·정지영·이준익·강우석·이명세 등과 함께 작업하며 한국영화 변곡점마다 자리했다. '바람불어 좋은 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성장시대 한국 사회 그림자를 담아내며 한국영화 사회비판리얼리즘을 대표했다. '고래 사냥'은 억압적인 시대에 대한 반항의 상징과도 같은 청춘영화였다. '투캅스'는 한국형 형사버디물의 출발점이자 블랙 코미디 영화의 전성기를 열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로 한국영화의 스타일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도 했다. 2003년 '실미도'는 1000만 관객 문을 열어젖힌 한국영화 흥행의 기념비였다.
나서길 싫어하고 주목 받기 꺼리는 성격이었으나 한국영화 발전을 위해서는 언제든 앞장 섰다. 2000년부터 스크린 쿼터 수호천사단 단장을 맡고, 2006년에는 스크린쿼터 비상대핵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는 등 한국 영화계에 주요 사안이 있을 때마다 힘을 보탰다.
영화를 운명으로 살았다면, 삶은 노력으로 살았다. 아역 때부터 70년, 성인 연기자로 40년 이상 활동하면서도 구설 하나 없는 자기관리는 후배 배우들의 귀감이었다. 그는 생전 "이 길로 들어서면서 배우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 존중 받고, 동경했으면 했다.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특별한 자기관리 덕에 안성기는 60대 중반이었던 2016년 액션영화 '사냥' 주연을 맡아 여전한 근육질 몸매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때 그는 "더 어려운 액션연기도 할 자신이 있다. 피가 끓는다"고 말했다.
이렇게 얻게 된 국민배우라는 수식어에 대해 안성기는 이렇게 얘기했다. "전 국민배우가 맞는 것 같아요. 왜냐면 전 팬클럽도, 극성 팬도 없어요. 전국민이 팬이라고 생각해요. 미소로 인사하면서 지나가는 분들, 그 분들이 제 팬이죠. 참 고맙습니다. 확 타오르는 건 없지만 은은한 온기를 보내주시죠."
작은 스캔들 하나 없는 바른 삶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배우들의 이미지가 그렇게 되기를 바랐어요. 의도적으로 그렇게 산 측면도 있습니다. 노력했어요. 또 제 성격 자체가 그런 측면도 있었을 겁니다. 안 그랬다면 피곤해서 살겠어요? 그 타이틀에서 굳이 벗어나야 할 이유는 없죠. 배우로 연기로 잘 살면 되는 겁니다."
2017년 데뷔 60주년 특별전이 열렸을 때 기자회견에 나온 그는 "오래 연기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나이 먹었어도 에너지를 보여주고 싶다. 관객들에게 노쇠함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후배 챙기는 걸 잊지 않았다. "오래 하고 싶은 이유는 후배들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계에 또래가 남아있지 않아 어떤 때는 굉장히 외롭다. 그래도 후배들의 정년을 늘리는 역할을 내가 해야 한다." 그러나 안성기는 2년 후 혈액암 진단을 받고 더 이상 예전처럼 활동하지 못했다.
투병 이후에도 영화 6편을 더 내놨지만 2019년에 나온 '사자'가 사실상 우리가 알던 안성기의 모습을 보여준 마지막 작품이었다. 그는 독특한 장르물인 '사자'에서 구마 사제 역을 맡은 이유에 대해 "어린 친구들은 이제 나를 잘 모른다. 나이 든 사람한테 관심을 잘 주지도 않을 테니. 이 작품을 통해 아직도 소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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