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통상 전쟁 속 무기화된 반덤핑 관세…정부도 적극 활용 움직임

기사등록 2025/12/28 08:10:00

최종수정 2025/12/28 08:32:24

트럼프 집권 이후 자국우선주의↑·WTO 분쟁해결 기능↓

세계각국, '반덤핑관세' 적극 활용…작년 368건 역대최다

韓, 통상 마찰 최소화 위해 비교적 신중한 태도 유지해와

최근 국내 시장에 중국 등 제3국의 저가 물량 대량 유입

"값싼 수입품 공세로 산업 기반 무너지면 회복 어려워"

관세 부과시, 경제 전반 영향까지 고려하는 방안 등 검토

[인천=뉴시스] 전진환 기자 =  사진은 중국 광군제,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등 해외직구 극성수기를 맞았던 지난해 11월 14일 인천 연수구 인천본부세관 통합검사센터 해상특송물류센터에서 작업자들이 직구 물품 통관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2024.11.14. amin2@newsis.com
[인천=뉴시스] 전진환 기자 =  사진은 중국 광군제,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등 해외직구 극성수기를 맞았던 지난해 11월 14일 인천 연수구 인천본부세관 통합검사센터 해상특송물류센터에서 작업자들이 직구 물품 통관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2024.11.14. [email protected]

[세종=뉴시스]박광온 기자 = 정부가 반(反)덤핑 관세 부과 기준과 관련해 가격 덤핑 여부뿐 아니라 산업·경제 전반의 영향을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제도 운용 방식을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덤핑 피해가 인정되더라도 물가 부담이나 수요 산업 피해가 큰 품목은 관세를 낮추고, 반대로 전략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산업에는 보다 강한 관세를 적용하는 식이다.

글로벌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되는 가운데 중국 등 제3국의 저가 물량이 국내 시장으로 유입되면서, 반덤핑 관세를 보다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28일 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최근 이 같은 내용의 '반덤핑 제도 고도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반덤핑 제도는 외국 기업이 정상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수출해 국내 산업에 피해를 줄 경우, 그 차이만큼 관세를 부과해 공정한 경쟁 여건을 회복하는 제도다.

통상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이 명시적으로 허용한 범위 내에서만 발동되는 합법적 무역구제 수단이다.

최근 세계 각국은 이 같은 반덤핑 관세를 주요 통상 방어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자국우선주의 확산과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해결 기능 약화가 맞물리면서, 각국이 통상 리스크 관리 차원으로 반덤핑 관세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2020년의 경우 미국(89건)과 인도(92건)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총 355건의 반덤핑 조사가 이뤄지며 당시 기준 최다 건수를 기록했다. 이 같은 증가세는 이후에도 이어져 지난해에는 조사 건수가 368건으로 늘었다.
[워싱턴=AP/뉴시스] 사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8일(현지 시간)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을 향해 발언하고 있는 모습. 2025.12.19.
[워싱턴=AP/뉴시스] 사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8일(현지 시간)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을 향해 발언하고 있는 모습. 2025.12.19.

이처럼 글로벌 차원에서 반덤핑 조사가 빠르게 늘고 있음에도, 그간 우리 정부는 통상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 반덤핑 관세 활용에 비교적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 왔다.

미국이나 유럽연합(EU)처럼 국가안보나 환경 규제 등을 명분으로 한 새로운 관세 수단을 적극 도입하기보다는, 규범 준수국으로서 WTO 규범이 허용한 범위 내에서만 무역구제 제도를 운용해 온 것이다.

우리나라의 덤핑방지관세 부과 건수는 2021년 3건에 그쳤고, 2022~2023년에도 각각 5건 수준에 머물렀다. 지난해 6건, 올해도 8월까지 8건에 그치며 증가세는 제한적이었다.

문제는 주요국이 반덤핑 관세를 적극 활용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제도 운용에 소극적일 경우, 저가 덤핑 물량이 한국 시장으로 집중 유입되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EU 등에서 관세 장벽에 막힌 중국 등 제3국의 초과 생산 물량이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시장으로 이동하는 이른바 '풍선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요국이 반덤핑 관세로 자국 시장을 방어하는 상황에서 우리만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할 경우, 글로벌 초과 공급 물량이 한국으로 쏠릴 가능성이 커진다"며 "이는 중장기적으로는 국내 산업의 수익성과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구조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최근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대미 수출이 위축된 중국 등 제3국의 저가 물량이 한국 시장으로 대량 유입되면서 국내 기업들의 반덤핑 제소 움직임이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9월 말 기준 국내 기업의 반덤핑 제소 건수는 12건으로, 종전 최대치였던 2002년(11건)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8건은 중국산 제품을 대상으로 한 제소다.

광섬유와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PET) 필름, 산업용 로봇 등 일부 품목에 대해서는 이미 무역당국이 산업 피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대전=뉴시스] 미국 행정부의 강화된 관세정책으로 대미 수출이 어려워진 제3국이 한국시장으로 저가수출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덤핑방지관세를 회피키 위한 불법행위 가능성이 커져 세관당국이 전담반을 꾸려 강력 대응에 나서고 있다. (사진=관세청 제공) 2025.08.1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대전=뉴시스] 미국 행정부의 강화된 관세정책으로 대미 수출이 어려워진 제3국이 한국시장으로 저가수출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덤핑방지관세를 회피키 위한 불법행위 가능성이 커져 세관당국이 전담반을 꾸려 강력 대응에 나서고 있다. (사진=관세청 제공) 2025.08.1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덤핑 피해가 제기된 품목의 국내 시장 규모 역시 2021년 1500억원, 2023년 5400억원에 그쳤으나, 지난해에는 2조9200억원으로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관계자는 "값싼 수입품 공세로 한 번 산업 기반이 무너지면, 설비와 인력, 공급망이 함께 사라져 이후 시장 여건이 바뀌어도 산업을 다시 회복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내산업의 정당한 보호를 위해 반덤핑 관세를 보다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제도 운용을 손질한다는 계획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그동안 통상 마찰과 보복 가능성을 고려해 반덤핑 관세 부과에 신중한 접근을 유지해왔지만, 최근 덤핑 방식으로 국내에 유입되는 물량이 늘면서 기존 제도를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운용 방식을 보다 정교화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밝혔다.

먼저 기재부는 관세 부과가 소비자와 수요 산업, 지역경제, 전략 산업 등 우리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심사해 관세율과 부과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을 검토 리스트에 올렸다.

그간 덤핑 사실과 산업 피해에 초점을 맞춰 제도를 운용해 왔지만, 향후에는 경제 전반의 파급 효과를 함께 따지는 방식으로 운용 폭을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EU가 반덤핑 관세 부과 과정에서 '공공의 이익'(public interest)을 함께 심사하는 방식과 유사한 모델로 평가된다.

공공의 이익이란 덤핑 피해 여부나 특정 산업의 손익만 보지 않고, 관세 부과가 소비자 물가와 수요 산업, 고용과 지역경제 등 경제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함께 따져 정책 결정을 내리는 기준을 말한다.
[베이징=AP/뉴시스] 사진은 2023년 10월14일 중국 베이징의 유럽연합(EU) 중국 대표부 입구에서 중국 공안이 경비를 서고 있는 모습. 2025.12.22.
[베이징=AP/뉴시스] 사진은 2023년 10월14일 중국 베이징의 유럽연합(EU) 중국 대표부 입구에서 중국 공안이 경비를 서고 있는 모습. 2025.12.22.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글로벌 통상 환경이 보호무역 기조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단순한 덤핑 마진 계산만으로는 국내 산업을 지키기 어렵다"며 "관세 부과가 산업 생태계와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고려하는 접근은 국제 흐름에도 부합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반덤핑 조사 과정에서 덤핑 마진을 산정해 잠정 관세율을 결정한 뒤 조사 종료 시점에 최종 확정 관세율을 확정하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으며, 확정 관세는 최대 5년간 적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관세율은 대체로 10~30% 수준에서 형성되며, 덤핑 마진이 큰 일부 품목의 경우 40~50% 이상의 고율 관세가 부과되기도 한다.

향후 공공의 이익 판단을 적극적으로 검토·활용할 경우, 관세 부과 기준이 덤핑 피해 여부를 넘어 경제 전반의 영향까지 포괄하도록 넓어질 가능성이 있다.

허윤 교수는 "공공의 이익 판단을 본격적으로 반영하게 된다면, 덤핑 피해가 인정되더라도 물가 부담이나 수요 산업 피해가 큰 품목은 관세 수준을 조정하고 반대로 전략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산업에는 보다 강한 관세를 적용하는 등 관세 운용의 선택지가 넓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기재부는 '가격약속'(price undertaking) 제도를 활성화하는 방안도 살펴보고 있다. 가격약속은 수출 기업이 정상가격으로 판매하겠다는 약속을 제시할 경우, 반덤핑 관세 부과를 유예하거나 중단하는 방식이다.

관세 부과 대신 수출자가 자율적으로 가격을 조정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상대국의 보복 조치나 외교적 마찰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그동안 한국은 반덤핑 관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보다는 해외로부터 관세를 부과받는 경우가 많았다"며 "글로벌 통상 질서가 보호무역 기조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국내 산업을 지키기 위한 무역구제 수단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뉴시스] 강종민 기자 =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기획재정부 전경. 2023.04.04. ppkjm@newsis.com
[세종=뉴시스] 강종민 기자 =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기획재정부 전경. 2023.04.04. [email protected]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button by close ad
button by close ad

글로벌 통상 전쟁 속 무기화된 반덤핑 관세…정부도 적극 활용 움직임

기사등록 2025/12/28 08:10:00 최초수정 2025/12/28 08:32:24

이시간 뉴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