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직후 '尹 방어권' 인권위…1년간 퇴행 논란[계엄1년]

[서울=뉴시스] 조성하 전상우 수습 기자 = 12·3 비상계엄 선포 1년. 계엄 사태 직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처음 내놓은 굵직한 결정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방어권 보장이었다.

계엄 당시 시민 인권 침해보다 권력자의 기본권을 앞세웠다는 지적 속에 인권위는 안창호 위원장 사퇴 요구를 포함한 조직 안팎의 비판 여론, 국제 인권기구의 특별심사와 내란 특검 조사까지 연달아 휘말리며 독립성과 신뢰의 위기를 맞고 있다.

계엄 청산 논의에서도 '헌법존중 정부혁신 TF' 참여를 거부하고 스스로를 조사 대상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인권위가 자생적으로 기관의 소명과 역할을 회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올해 2월10일 인권위 제2차 전원위원회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방어권 보장 안건'으로 알려진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을 의결했다.

헌법재판소에 윤 전 대통령 탄핵 심리에서 형사소송에 준하는 엄격한 적법절차 준수를 요구하고, 계엄 선포 관련자들에 대한 불구속 수사·재판 원칙을 유념하라고 권고하는 내용 등이 결정문에 담겼다.

방어권 의결은 계엄 국면에서 인권위가 시민 인권보다 어떤 사안을 앞세웠는지 보여준 결정으로 기록됐다. 계엄령의 위헌성과 시민 인권 침해에 대한 직권조사·권고보다, 탄핵 심판 중인 대통령의 방어권 보장을 먼저 다룬 것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인권법학회 회장)는 "계엄 그 자체가 엄청난 인권침해였는데 이에 대한 논의는 없고, 갑자기 대통령의 인권에 대해서만 입장을 낸 것"이라며 "그 전에는 피의자·피고인 인권에 대한 개선 논의도 없었던 만큼, 결과적으로는 '윤석열 구하기' 외에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인권위는 어디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함으로써 모두를 안전하게 만드는 기구"라며 "그런데 (이번 결정은)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을 가장 덜 책임지게 만드는 방식으로 인권을 도구화하고 알리바이로 활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결정 직후 인권위 내부에서는 공개 항의와 반발이 잇따랐다. 안건에 반대한 남규선 상임위원과 소라미·원민경 비상임위원 2명은 다음날(2월11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안건 철회와 안창호 위원장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회견장에 모인 인권위 직원 50여명은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국민께 큰 심려를 끼쳤다"고 사과했고, 세 위원들을 향해선 "직원들이 지지한다. 힘내라"고 박수를 보냈다. 공무원 조직으로서는 보기 드문 공개적 이의제기였다.

하지만 1년이 채 되지 않아 위기는 더 커졌다. 인권위 안팎에서는 안창호 체제에 대한 불신이 집단 행동으로 표출되고 있다.

지난달 25일, 인권위 설립 24주년을 맞아 인권위 노조는 '축하할 수 없는 생일'이라는 성명을 냈다. 노조는 지난 1년을 "인권의 이름으로 인권위를 파괴한 날들"로 규정하며, 방어권 의결을 "내란 세력에 동조해 인권위 역사에 오욕을 남긴 결정"으로 지적했다. 퇴직 공무원들까지 1인 시위에 나서며 문제 제기는 조직 밖으로 확산됐다.

전임 인권위원·사무총장 25명도 공동 성명(11월20일)을 통해 "내란 사태 이후 윤석열의 기본권 옹호를 내세워 반역사적 결정을 주도했다"며 안창호 위원장과 김용원 상임위원의 동반 사퇴를 촉구했다.

인권연구자들도 나섰다. 지난달 26일 발표된 인권연구자 성명은 '인권위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결정'이라는 표현으로 윤석열 방어권 안건을 규정하며, "더 이상 안창호 체제 하에서 인권위 정상화를 기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미 지난 1월 방어권 안건 상정 당시 발의자인 인권위원 일부와 안창호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한 데 이어,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퇴진 요구가 거듭 공식화된 셈이다.

계엄 1년을 맞은 지금, 인권위는 국내 정치·사회적 논란을 넘어 특검 수사와 국제 인권기구의 감시 대상이 돼 있다.

내란 사건을 수사하는 조은석 특별검사팀은 인권위의 윤석열 방어권 의결 과정의 위법성을 따지기 위해 찬·반 양측 위원들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 중이다. 특검은 전원위 안건 상정 및 결정문 작성 절차, 주문 의결 과정의 위법성 여부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국제무대에서도 경고등이 켜졌다.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간리)은 한국 인권위에 대한 특별심사를 개시하며 독립성 약화 우려를 제기했다.

인권위는 국가인권기구 최고 단계인 A등급을 유지했지만, 간리는 대통령 탄핵 등 정치적 불안정 상황에서도 인권과 민주주의·법치주의 원칙을 지키고, 독립성과 자율성을 강화하라는 조건을 함께 달았다.

홍성수 교수는 "간리가 이런 문구를 굳이 덧붙인 것은 한국 인권위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고 상황이 심각하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인권위 행보가 국제사회로부터 주의 대상이 됐다는 분석이다.

계엄 사태 이후 정부는 계엄 연루 공직자를 점검하고 헌정 질서를 복원한다는 명분 아래 각 부처에 '헌법존중 정부혁신 TF' 구성을 권고했다. 인권위처럼 헌법상 독립기구는 자율적으로 참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계엄 사태에서 시민의 인권을 지켜야 할 기관이자, 계엄과 관련된 인권침해를 점검해야 할 인권위가 이 논의의 중심에 서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인권위의 선택은 달랐다. 지난달 24일 전원위에서 인권위 내부에 헌법존중 TF를 두지 않기로 의결한 것이다. 윤석열 방어권 안건에 찬성해 이미 내란 특검에 고발된 위원들이 발의와 의결을 주도했다.

김용원 상임위원은 '헌법파괴 TF'라며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날을 세웠다. 계엄을 청산하기 위한 TF가 오히려 '공무원 인권 침해'라는 논리였다.

계엄 사태에 대한 내부 책임 성찰과 연루 의혹 공직자 점검이라는 역할에서 한발 물러선 데다, 윤석열 방어권 안건에 찬성했던 위원들이 스스로를 잠재적 조사 대상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점도 논란을 키우고 있다.

권김현영 소장은 "인권이라고 하는 보편적 가치를 진영 이해와 무관하게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가, 오히려 특정 진영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그 결과 공통상식으로서 인권이 정치로부터 독립적이며 믿을 수 있는 가치 체제라는 점이 무색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인권위가 가장 먼저 마주해야 할 과제는 인적 쇄신과 본래 소명의 회복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권김현영 소장은 "인권 가치를 우리 사회에서 지켜내기 위해 애써온 사람들 입장에선 안창호 위원장이 인권위 파행의 출발점인 인물"이라며 "위원장을 비롯해 파행을 야기한 인사들의 사퇴 등 인적쇄신 없이는 정상화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홍성수 교수 역시 "정파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위법에 규정된 최소한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냐가 핵심인데 지금의 인권위원장은 그 법적 요건에도 맞지 않는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윤석열 정부 임기 동안 인권위가 성소수자와 여성, 장애인 등 취약계층 인권 의제에서 사실상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권김현영 소장은 변희수 재단 설립 심사 등 성소수자 권리와 군 내 성폭력 등 주요 인권 현안이 계속 미뤄진 점을, 홍성수 교수는 차별금지법 제정 등 핵심 과제가 사실상 멈춘 점을 지적했다.

인권위가 다시 본연의 역할로 돌아올 수 있을지,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인권기구로서 중심에 설 수 있을지가 추후 판단 기준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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