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률, 노래로 지은 클래시컬 로드무비…서동욱과 '산책'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겨울밤에 꿈처럼 어렴풋하겠지만 / 잊을 순 없겠지 낯익은 노래처럼 / 바래진 수첩 속에 넌 웃고 있겠지"(전람회 '첫사랑' 중) 

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KSPO DOME·옛 체조경기장). 두 시간 넘게 정련된 구성으로 정제된 슬픔을 막연하게 공유하던 싱어송라이터 김동률과 1만 관객들이 훌쩍이기 시작한 건, 앙코르 첫 곡으로 듀오 '전람회'의 '첫사랑'이 흘러나오면서부터다. 이 곡 막바지에 '사랑하는 나의 벗, 동욱이를 보내며'라는 문구와 함께 서동욱의 사진이 화면에 등장하는 순간, 공연장은 먹먹해졌다.

그리고 "이젠 버틸 수 없다고 / 휑한 웃음으로 내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았지만…"으로 시작하는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 마지막곡으로 흘러나오자, 모두의 기억은 본작이 됐다. 별다른 멘트 없이 노래로, 콘서트로 담백하게 절친한 친구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방식이 김동률다웠다.

우리는 부재하는 존재의 부축을 받아 걸어간다. '첫사랑'과 이날 내내 고상지 콰르텟이 연주한 '졸업'을 비롯 '여행' 'J'S 바(Bar)' '새' '취중진담' 등 전람회 노래가 울려 퍼질 때마다, 그걸 느꼈다. 그런데 그 무형의 감각이 부지불식 간에 구체화될 때, 위로의 물성은 정확했다. 변곡점이 많은 인생의 길을 누군가 함께 '산책'하고 있다는 안도감은 대단하다.

이처럼 지난 8~10일·13~16일 총 7일간 케이스포돔에서 열린 '2025 김동률 콘서트 -산책'은 음악으로 닦아놓은 클래시컬한 '로드무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고전(古典)'이라 불러도 절대 과하지 않는 '대중음악계 반석(磐石)'에 오른 김동률의 곡들 덕분이었다.

김동률의 콘서트엔 오페라의 서곡에 해당하는 근사한 오프닝이 있다. 2년 전 콘서트 '멜로디(Melody)'처럼 '더 콘서트'를 시작으로, '사랑한다는 말'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로 이어지는 흐름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김동률이 "역대급으로 대중적인 세트리스트"라고 자신했던 2년 전에 비해 이번 '산책'은 덜 대중적이기는 했다. 하지만 '겨울잠' '고백' '옛 얘기지만' '내 사람' '하소연' '망각' '산책' '희망' 등 품격 있는 발라드가 연이어졌다. 자신이 작곡한 보아의 '옆사람'도 불렀다.

공연 내내 곳곳에 공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특히 인터미션에서 2부 시작까지 이어진 뮤지컬 대목이 그 중 하나였다. 1996년을 풍미한 김동률이 작사·작곡한 김원준의 '쇼'를 고상진 콰르텟이 편곡해 들려준 걸 시작으로 '시작' '동화' '모험' '황금가면'으로 이어지는 대목은 짧은 뮤지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뮤지컬을 원래 좋아하는 김동률은 뮤지컬 넘버 작법을 뮤지컬스런 어법으로 자신의 화법에 담아내는데 일품이었다. '황금가면' 모양의 컨페티(confetti)가 흩뿌려지는 순간, 쇼의 완결편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이 부분의 무대는 아날로그 풍의 작화로 만들어, 콘서트라는 물성의 따뜻함이 무엇인지도 증험케 했다. 

특히 '황금가면'에선 댄서들의 군무 사이에서 포인트를 주는 동작을 선보였는데, 김동률은 "안무가님이 거절하기는 힘들고 시도해보면 따라할 수 있는 수준의 안무를 짜서 보내주셨다. 춤으로 인해 콘서트의 다른 것들이 묻힐까 걱정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빛의 마법사로 불리는 김동률답게 조명 연출도 탁월했다. 특히 '새'를 부를 때는 마치 새가 푸드득 날개짓을 하고 날아가는 걸 형상한 것처럼,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빛을 사선 모양으로 빚어내 감탄을 불렀다. 노래의 감정선을 스크린 속 다양한 효과로 연출해낸 아트 디렉터 겸 뮤직비디오 감독 룸펜스와 호흡도 일품이었다.

반복적인 페달 톤의 피아노 코드 위로 공감각을 확장시켜주는 스트링, 김동률이 로망을 품고 있는 브라스 섹션의 웅장함, 펑키한 기타와 베이스 라인 여기에 화사한 코러스도 공연의 완성도를 높였다. 무대 위엔 김동률이 자랑스러워하는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이 세세하게 조형돼 있었다. 지난 번에 이어 이번에도 하프까지 포함된 오케스트라를 대중음악 공연에서 볼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무대엔 밴드 7명, 브라스 6명, 코러스 8명, 김동률과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온 지휘자 이지원을 포함한 오케스트라 24명, 고상지 콰르텟 4명, 안무팀 8명(안무가 채현원은 무대 위 제외) 등 무려 57명이 올라갔다.

김동률은 2004년 압도적인 웅장감의 콘서트 '초대'를 만들 때 다시는 이 같은 공연은 못 만들 거라고 생각해 DVD까지 제작했다고 했다. 그런데 여전히 그에 못지 않은, 그 이상의 공연들을 매번 만들어낸다. 

김동률은 매번 공을 들여, 4~5년마다 콘서트를 열어왔다. 그렇게 하다가는 어느 새 환갑이 될까 걱정됐다고 너스레를 떨었으나 주변 사람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경험을 한 뒤 감히 추정하건대, 팬들을 포함 아끼는 이들을 좀 더 자주 만나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다음 달 18일이 서동욱 1주기이다.

김동률은 이번에도 시대를 타지 않는 유행가의 곡절(曲節·악곡의 마디)엔 곡절(曲折·복잡한 사정이나 까닭)이 녹아 있어 끊임없이 계승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올드팬뿐 아니라 젊은 팬들이 계속 공연에 유입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김동률은 오래 전부터 자신의 콘서트를 찾아준 팬들 중심으로 세트리스트를 짠다고 털어놨다. 히트곡만 그러모아 천편일률적인 공연은 하고 싶지 않다는 다짐이다.

이건 일종의 음악과 사람에 대한 믿음이다. 김동률의 노래와 콘서트가 오래되고 새로운 이유다. 그 뮤지션에 에 그 팬이라고 팬들은 김동률의 부탁처럼, 공연 내내 거의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하지 않은 성숙한 팬문화도 보여줬다. 7회 공연에 7만명이 운집했는데, 대부분의 팬들이 그랬다. 케이스포돔에서 한 번에 7회 공연한 건 김동률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마음의 산책이 필요할 땐 김동률의 음악을 듣는다. 학창시절부터 함께 해온 그의 노래들엔 청자들의 인생 역정이 녹아 있다. 납득할 수 없는 이별을 납득 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추억이 배인 노래의 힘이다. 노래가 계속 울려 퍼지는 한 부재도 존재다. "내 마음속으로 스러져가는 너의 기억이 다시 찾아와 생각이 나겠지 / 너무 커버린 내 미래의 그 꿈들 속으로 잊혀져 가는 나의 기억이 /  다시 생각날까 많은 날이 지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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