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마지막 산성 '거제 수정산성' 사적 됐다

기사등록 2025/10/30 09:41:07

최종수정 2025/10/30 10:52:25

조정 지원 없이 거제도민들 힘 만으로 쌓아

신라 남방 진출 역사 알수 있는 학술적 가치

[거제=뉴시스]19일 국가 사적으로 지정 예고된 경남 거제시 거제면 동산리와 서상리 경계에 있는 '거제 수정산성'.(사진=경남도 제공) 2025.08.19. photo@newsis.com
[거제=뉴시스]19일 국가 사적으로 지정 예고된 경남 거제시 거제면 동산리와 서상리 경계에 있는 '거제 수정산성'.(사진=경남도 제공) 2025.08.1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수지 기자 = 국가유산청이  '거제 수정산성(巨濟 水晶山城)'을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했다고 30일 밝혔다.

'거제 수정산성'은 서문 밖 큰 바위에 새겨진 '옥산금성-동치십이년계유삼월일설-(玉山金城-同治十二年癸酉三月日設-)'이라는 명문에 '옥산금성(玉山金城)'이라 불린 기록이 있다.

'통제영계록(統制營啓錄)'과 '거제군읍지(巨濟郡邑誌)' 등 문헌에 '수정산성(水晶山城)'으로 기록된 점을 고려해 산성 명칭이 이번에 '거제 수정산성'으로 지정됐다.

이 산성은 수정산에 있는 테뫼식(산의 정상부를 중심으로 성벽을 둘러쌓은 형태) 석축산성이다. 성벽 전체 둘레는 약 450m이다.

11차례 시·발굴조사를 통해 삼국시대 신라의 초축 성벽에 수·개축된 고려·조선시대 성벽이 확인됐다. 이는 성곽 축조기술 변천과정을 잘 보여준다.
 
가장 마지막으로 성벽이 축성된 것은 성내에 건립된 '수정산성축성기(水晶山城築城記)' 비석을 통해 고종 10년인 1873년임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축성 관련 기록이 1871년 김해 분산성을 끝으로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 점으로 보아, 기록을 통해 축성 시기를 파악할 수 있는 우리나라 산성 중 가장 늦은 시기 산성이라 할 수 있다.

국가유산청은 당시(1873년) 외세 침입에 대비해 조정의 지원 없이 거제부사 송희승과 거제도민들의 힘 만으로 쌓았다는 점에서 희소성과 상징성은 물론 그 역사적 가치가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성내에서 조사된 건물지와 동서문지의 양호한 잔존 양상은 조선후기 성곽 구조와 축조 수법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다.
[서울=뉴시스] 거제 수정산성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5.10.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거제 수정산성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5.10.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1호 건물지는 온돌이 확인되지 않고 장식기와가 사용돼 관사 등 특수목적 건물로 보인다. 영남지역에 석회 산지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고급 재료였던 석회가 다량 사용된 점으로 미뤄 중요한 건물로 추정된다.

수정산성의 초축 성벽에서 확인되는 성돌(가늘고 긴 직사각형 모양으로 다듬는 세장방형 가공), 성벽( 한 켜에서는 돌의 높이가 동일하고, 매 켜마다 수평줄눈이 일직선으로 연속되게 쌓는 바른층쌓기), 성문과 기저부, 층단식 원형집수시설 등의 축성기법을 통해 최초 축성시기를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로 추정된다.

당시 신라가 남해 지역으로 진출해 방어체계를 구축해 가는 과정과 그 시점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크다.

이외에도, 수정산성이 있는 수정산 정상부에서 거제평야를 비롯하여 서남쪽 해안선과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어 경관적 가치도 우수하다.

국가유산청은 낸달 11일 거제 농업개발원에서 거제시와 사적 지정 기념행사를 연다.

이 행사는 식전 공연(대북 공연), 사적 지정 경과보고, 감사패 전달, 관리단체 지정서 교부 등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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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마지막 산성 '거제 수정산성' 사적 됐다

기사등록 2025/10/30 09:41:07 최초수정 2025/10/30 10: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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