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입 없이 추적 어려운' 마약 수사…"위장수사 도입 시급"[서민 울리는 민생범죄⑳]

기사등록 2025/07/09 06:00:00

최종수정 2025/07/09 07:52:24

비대면 기반 마약 거래 확산…중간책 차단 한계

신분 위조 없이 조직 침투 어려운 현행법

경찰 "공급망 끊으려면 ‘위장수사’ 제도화 불가피"

[서울=뉴시스]서울 서초경찰서는 지난 5월 국가정보원과의 공조수사를 통해 합성마약의 일종인 '메페드론'을 국내에서 유통한 외국인 마약조직을 적발하고, 총책·판매책·운반책 등 5명을 검거했다. 사진은 경찰이 외국인 마약 조직의 은닉처를 수색하며 증거물을 확보하고 있는 모습. (사진=서초경찰서 제공)
[서울=뉴시스]서울 서초경찰서는 지난 5월 국가정보원과의 공조수사를 통해 합성마약의 일종인 '메페드론'을 국내에서 유통한 외국인 마약조직을 적발하고, 총책·판매책·운반책 등 5명을 검거했다. 사진은 경찰이 외국인 마약 조직의 은닉처를 수색하며 증거물을 확보하고 있는 모습. (사진=서초경찰서 제공)



-고물가와 경기 침체가 겹치며 서민들의 생활고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민생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서민의 삶에 고통을 주고 있다.

대출 규제 강화로 금융 소외계층의 자금난이 극심해지면서 불법 사금융 피해가 급증하고 서민의 주거안전을 위협하는 전세사기 피해도 늘어나고 있다. 우리 사회에 깊숙이 파고든 보이스피싱은 최근 기술의 발전과 함께 더욱 진화해 피해자들은 더욱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뉴시스는 서민다중피해범죄 피해 실태와 대안을 짚어보는 시리즈를 기획했다.

글 싣는 순서 ▲불법사금융 덫(1부) ▲전세사기 늪(2부) ▲보이스피싱 지옥(3부) ▲마약 디스토피아(4부) ▲민생범죄 전문가 진단(5부) 〈편집자 주〉

[서울=뉴시스]최은수 기자 = [서민 울리는 민생범죄] 마약 디스토피아(4부)

국내 마약 수사는 유통이 이뤄진 뒤에야 단속이 시작되는 구조다. 조직 내부에 침투하거나, 위장 신분으로 판매·중개 과정을 포착하는 '위장 수사'는 아직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아 수사 현장에서 사실상 활용하기 어렵다.

비대면·익명성을 앞세운 마약 유통이 확산되면서 하선(下線) 피의자에서 수사가 끊기는 구조적 한계가 반복되고 있다. 경찰에서는 수사관이 가짜 신분으로 조직에 잠입해 중간 유통선을 끊을 수 있는 위장수사 제도화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간 유통고리 차단 막막…"총책 추적 어려운 구조"

국내 마약 유통은 '투약자-던지기책(드로퍼)-수거책-중간관리책-총책' 구조로 이어진다. 현재로서는 드로퍼나 수거책을 먼저 검거한 뒤 이들의 진술이나 휴대전화, 폐쇄회로(CC)TV 기록을 토대로 수사선을 추적하는 것이 주된 방식이다.

하지만 피의자가 진술을 거부하거나, 디지털 증거 확보에 실패하면 수사는 더 나아가지 못하고 종료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에 위장수사로 조직에 잠입해 실거래 장면을 확보할 수 있다면 이러한 수사 공백을 줄일 수 있다는 게 경찰 관계자의 주장이다.

김종찬 서울 서초경찰서 마약수사팀 팀장(경감)은 "CCTV는 30일 이내로 삭제되기 때문에 기한 안에 단서를 찾지 못하면 사실상 수사가 무너진다"며 "단서를 확보해도 현행 제도에서는 조직 내부로 들어가 추가 증거를 확보하거나 중간책을 사전에 차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위장된 신분으로 조직에 침투하거나 판매·중개를 시도하면 신분 위조, 문서죄 등 위법 소지가 따르게 된다"며 "최근 텔레그램을 통해 마약 조직이 고액 아르바이트로 위장한 모집을 하며 신분증, 등·초본 제출을 요구하는 일이 많은데, 여기에 수사관이 잠입하려면 가짜 신분을 써야 하기 때문에 현재로선 공식적인 수사가 불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위장수사의 법적 근거가 모호한 상황에서 '기회제공형 함정수사'가 자칫 위법 수사로 비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가짜 신분을 만들거나 위조 문서를 사용하는 위장수사는 문서죄와 같은 형사 책임이 따를 수 있어서다.

경찰은 범죄 조직원으로 유통과정의 중간단계에 직접 참여해 해외 밀수조직과 국내 판매 유통망을 동시에 특정할 수 있어야 조직 전체를 해체할 수 있다고 본다. 위장수사 없이는 이런 접근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다는 것이다.
국제탁송화물에 숨겨 밀반입한 마약을 '던지기 수법'으로 판매하는 모습. (사진=경기남부경찰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국제탁송화물에 숨겨 밀반입한 마약을 '던지기 수법'으로 판매하는 모습. (사진=경기남부경찰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텔레그램·가상자산 활용 급증…경찰 "잠입 없인 추적 한계"

최근 마약류 범죄는 텔레그램 등 보안 메신저와 다크웹, 가상자산을 기반으로 은밀하고 지능화된 방식으로 유통되고 있다. 특히 비대면·익명 거래가 급증하면서 하선 피의자 검거에 그치는 구조적 한계가 반복되고 있다.

경찰청은 마약수사 특성에 맞는 위장수사 제도를 연내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개최된 '마약류 범죄 위장수사 도입' 학술 세미나에서 "마약류 범죄는 피해 신고가 적은 암수 범죄로서 위장수사 도입 시 예방과 검거 두 영역에서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위장수사 제도는 성범죄 분야에서 먼저 도입돼 일정 성과를 낸 바 있다. 경찰은 2021년부터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 수사에 위장수사를 활용해 성착취물의 제작·유통·알선에 가담한 범죄자들을 조직 내부에서 직접 검거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제도 시행 이후 약 3년 간 500건이 넘는 위장수사가 진행돼 1400여명의 피의자가 입건됐다.

현재 국회에는 마약 수사에 위장수사 기법을 도입하는 내용의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3건 발의된 상태로, 모두 소관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로 회부돼 법안 심사가 진행 중이다.

세 법안 모두 일정한 조건 아래 수사 목적의 위장 구매·판매, 조직 침투를 가능하도록 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허위 신분 사용 등 위법 소지가 큰 행위는 법원 허가를 통해 통제하고, 종료 시 국회·경찰위원회 보고 등 사후 통제를 명시한 점이 골자다.

경찰은 위장수사가 단속 수단에 그치지 않고 구조 단절을 막기 위한 수사 기법이라고 강조한다. 경찰 관계자는 "위장수사가 도입되면 중간 유통 단계에 침투해 상선과 하선을 동시에 검거하고, 마약류를 압수해 사전 예방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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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입 없이 추적 어려운' 마약 수사…"위장수사 도입 시급"[서민 울리는 민생범죄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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