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도 조심해야"…약물운전 형사처벌 기준 마련 필요

기사등록 2025/06/10 15:35:59

수면제·감기약도 형사처벌 대상 될 수 있어

경찰 "정상 운전 가능했는지가 핵심"

[서울=뉴시스] 이경규. (사진=SBS TV '경이로운 습관' 제공) 2024.12.2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경규. (사진=SBS TV '경이로운 습관' 제공) 2024.12.2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최은수 기자 = 처방약 복용 후 운전대를 잡았다가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약물 운전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과 전문가들은 "의사의 처방이 있다고 해서 법적 면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운전자 스스로의 인식 개선과 제도적 보완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방송인 이경규(64)가 약물운전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논란이 일었다.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이경규는 지난 8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건물에서 주차요원의 착오로 인해 본인 차량과 같은 차종의 다른 차량을 몰고 인근 사무실까지 이동했다. 이에 차량 소유주의 절도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고, 현장에서 실시한 음주 측정은 음성이었지만 약물 간이 검사에서는 양성 반응이 나타났다.

이에 대해 이경규 측은 "오해에서 비롯된 해프닝"이라며 "10년째 복용 중인 공황장애 치료약 성분, 즉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처방받아 복용한 약물이 간이검사에서 검출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처방약도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전날 개최된 정례 브리핑에서 "검출된 성분이 운전 능력에 영향을 줬는지, 정상적인 운전이 가능한 상태였는지에 따라 처벌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고 밝혔다.

도로교통법 제45조는 "약물의 영향으로 정상적으로 운전하지 못할 우려가 있을 경우 운전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에 따르면 약물의 영향으로 정상운전이 곤란한 상태에서 운전해 타인에게 상해를 입힐 경우 1년 이상 1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사망사고 시에는 무기징역 또는 3년 이상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처방약 복용 후 교통사고로 이어지는 사례는 반복되고 있다. 지난 3월 서울의 한 이면도로에서 수면제를 복용한 50대 남성이 오토바이를 들이받은 뒤 현장을 이탈하려다 안전난간을 들이받는 사고가 있었다. 출동한 경찰은 음주와 마약 모두 음성 반응이 나오자 추가 조사를 진행했고, 해당 운전자가 수면제를 복용한 상태에서 사고를 낸 사실이 드러났다. 운전자는 사고 사실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인지 기능이 저하된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1월에도 서울 강남에서 20대 무면허 여성이 8중 추돌사고를 내 구속 기소됐다. 사고 당시 음주나 마약은 아니었지만 경찰 조사에서 불면증으로 인해 신경안정제를 복용했다고 진술했다. 이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감정 결과, 해당 약물 성분이 검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청에 따르면 약물 운전으로 인한 운전면허 취소 건수가 2015년 53건에서 2024년 134건으로 10년 사이 2배 이상(15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경일 변호사(법무법인 엘앤엘, 교통 전문)는 "약물운전은 약을 먹었다고 무조건 처벌받는 것이 아니라, 그 약물이 실제로 운전능력을 저해했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고 발생 여부, 운전 형태, 블랙박스나 폐쇄회로(CC)TV 영상, 주변 신고 내용 등 행동과 정황이 함께 판단 기준이 된다"며 "같은 약물이라도 처벌 여부는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음주운전과 달리 약물운전은 혈중 농도 같은 수치 기준이 없고 약물 종류나 용량이 너무 다양해 법적 해석이 엇갈릴 수 있다”며 “의사나 약사가 복약 지도 시 운전금지에 대해 법적 고지 의무를 지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찰도 현장에서의 단속에는 한계가 있다고 토로한다. 음주운전은 5초면 측정이 가능하지만, 약물 간이시약 검사는 최소 15분이 소요되고, 정밀검사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까지 수 주가 걸릴 수 있다. 경찰은 운전자의 약물 복용 이력도 실시간으로 조회할 수 없어, 현장 대응이 어렵다는 전언이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에서 40대 남성이 약물 운전으로 한차례 교통사고를 낸 뒤 경찰의 검사 요구에 불응하고 다시 차를 몰다가 두 번째 사고를 일으킨 일이 있었다. 해당 남성은 현재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후 국회는 지난 5월 약물 검사 거부 시 5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전문가들은 "의사의 처방 여부와 무관하게 운전능력을 해칠 수 있는 약물을 복용한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는 것은 '잠재적 흉기 운전'"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공황장애, 불면증, 감기약 등 일상에서 흔히 복용하는 약들이 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료계의 복약지도 강화와 국민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범진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는 "공황장애약, 수면제, 일부 감기약 등은 졸음이나 인지 저하를 유발하는 성분이 많고 실제 간이검사에서 검출 가능성도 높다"며 "운전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약물을 복용한 경우 일정 시간 이상 운전을 피하도록 하는 등의 기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이 교수는 "해외에서는 복용 후 24시간 내 운전을 금지하는 규정을 두기도 한다"며 "우리도 약물종류별 기준 마련과 함께 ‘약물운전 금지’에 대한 홍보 캠페인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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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2025/06/10 15:35:59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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