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죄인 된다"…'尹방어권' 의결 인권위 내홍

기사등록 2025/02/12 14:55:11

최종수정 2025/02/12 16:02:24

野 위원들 "통과 예측 못했다"…상정 말리는 직원들에 위원장은 '격노'

무리한 의결 절차 강행…"현장에서 제출된 안건, 심의 기회도 없었다"

위원·직원 "반대의견 통해 의견 개진할 것…함께 인권위 지켜주길 바라"

[서울=뉴시스] 박주성 기자 = 국가인권위원회 원민경(왼쪽부터) 비상임위원, 남규선 상임위원, 소라미 비상임위원이 11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세 위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위헌·위법적인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의결의 철회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2025.02.11. park7691@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주성 기자 = 국가인권위원회 원민경(왼쪽부터) 비상임위원, 남규선 상임위원, 소라미 비상임위원이 11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세 위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위헌·위법적인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의결의 철회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2025.02.1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 "본 위원은 위원회 위원으로서 결정문과 상임위, 전원위에서 발언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간 이런 기자회견을 자청하거나, 회견에 나온다거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어제 의결은 매우 부당하고 잘못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11일, 남규선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안창호 위원장)가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방어권 보장 권고안을 수정 의결한 데 대한 후폭풍이 거세다. 안건 의결에 반대한 남규선 상임위원과 원민경·소라미 비상임위원은 전날(11일) 서울 중구 인권위 10층에서 이례적으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안건 철회와 안창호 인권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윤 대통령 방어권 의결을 둘러싸고 내부 갈등이 격화하는 모양새다.

위원들이 성명서를 낭독하자 지켜보던 인권위 직원들은 "직원들이 지지한다. 힘내라"고 박수갈채를 보냈다. 국가 공무원 신분인 인권위 직원 50여명은 카메라 앞에 나서 10초 간 대신 고개를 숙였다. "너무나도 큰 심려를 끼쳐 인권위 구성원 일원으로서 국민께 사과하는 시간을 갖겠다"는 이유였다.

앞서 인권위는 지난 10일 제2차 전원위원회를 열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방어권 보장 안건'이라 불리는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을 공개 심의한 뒤 수정 의결했다. 김용원 상임위원 주도로 지난달 발의된 이 안건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심리에 있어 방어권을 보장할 것을 헌법재판소에 권고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구체적으로 당초 안건에 담겼던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소추안 철회와 신속 심리 권고는 삭제됐지만 ▲헌법재판소에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시 형사소송에 준하는 엄격한 적법절차원칙을 준수하고 ▲수사기관과 재판부는 계엄 선포 관련자들에 대해 불구속 수사·재판 원칙을 유념하며 ▲헌법재판소에 박성재 법무부 장관에 대해 탄핵소추 남용 여부를 적극 심리해 남용이 인정되는 경우 조속히 각하함이 타당하다고 권고하는 내용이 담겼다.

안건은 재적 인원 10명 중 찬성 6명(안창호·강정혜·김용원·이충상·이한별·한석훈), 반대 4명(김용직·남규선·소라미·원민경)으로 통과됐다. 남규선·원민경·소라미 인권위원과 인권위 직원들의 발언 내용을 토대로 의결 전후 인권위 상황을 재구성해봤다.

野 위원들 "통과 예측 못했다"…상정 말리는 직원들에 위원장은 '격노'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1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국가인권위원회 2차 전원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02.10. (공동취재)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1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국가인권위원회 2차 전원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02.10. (공동취재) [email protected]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연 위원들은 안건 통과를 예측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 초 안건 발의 당시 남규선 상임위원은 안창호 위원장을 포함한 위원들의 의견을 물었지만, 당시 안창호 위원장과 이충상 상임위원(여당 추천)은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남규선 상임위원은 "(당시) 안창호 위원장 의견도 '동의하지 않는다'였고, 또 이 내용을 (상정해) 처리할 의사가 없는 것처럼 말하셨다"고 말했다. 원미경 위원도 "안창호 위원장까지 안건에 동의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보탰다.

안창호 위원장이 이 안건을 상정하지 않을 것처럼 말하다 졸속으로 상정, 기습적으로 찬성표까지 던지며 의결을 적극 주도했다는 설명이다.

이충상 상임위원의 찬성표도 예상하지 못했다. 남규선 상임위원은 "이충상 상임위원도 반대 의견을 말씀했었다"며 "국회에 출석해서도 '단호히 거부한다'고 반대 의사를 밝힌 바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충상 상임위원은 지난달 17일 국회운영위원회 현안질의에 참석, '윤석열 방어권 보장 안건에 동의하지 않느냐'는 취지의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그렇다. 주문안 등 여러가지 내용에 찬성할 수 없어서 공동발의를 전면 거부했다"고 말했다.

직원들도 제1차 전원위원회의 사흘 전인 지난달 10일, 안창호 위원장을 직접 찾아가 안건 상정을 막아달라 읍소했다. 하지만 안 위원장은 불쾌감을 표하며 "상정을 거부할 명분이 없다"고 밝혔다.

박대훈 인권위노조 수석부지부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인권위 직원 20여명이 용기를 내 안창호 위원장에게 면담 신청을 했다. '안건을 상정하면 역사의 죄인이 된다'고 간곡히 부탁하는 순간 (안 위원장은) 굉장히 격노했다"며 "안 위원장은 직원들이 우려하는 건 알고 있지만 거부할 명분이 없다며 안건 상정 의지를 밝혔다"고 말했다.

무리한 의결 강행…"현장에서 제출된 안건, 심의 기회도 없었다"

[서울=뉴시스] 박주성 기자 = 국가인권위원회 남규선 상임위원이 11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세 위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위헌·위법적인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의결의 철회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2025.02.11. park7691@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주성 기자 = 국가인권위원회 남규선 상임위원이 11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세 위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위헌·위법적인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의결의 철회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2025.02.11. [email protected]

의결까지 이른 과정에도 절차적 문제가 있었단 지적도 제기됐다. 남규선 상임위원은 "현장에서 제출된 안건이었다"며 "위원들이 심의를 해야 하는데 그럴 기회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충상 상임위원이 회의 이전 2인 이상의 동의를 받아 미리 안내돼야 하는 안건을 절차 없이 상정했고, 또 다수 위원이 한 위원(강정혜 비상임위원 지칭)을 상대로 대답을 강권했던 절차가 부당한 점은 없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소라미 위원은 부연했다.

무리한 강행의 배경으로 위원들은 이충상 상임위원의 사임을 꼽았다. 이충상 상임위원이 다음 전원위부터는 참석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전 위원들이 인지하고 있던 상황에서, 다수 의견 성립으로 의안이 통과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날이었던 셈이라는 설명이다.

소라미 위원은 "10일 처리되지 않으면 이 의안은 통과할 수 없다고 다수 위원들이 공감대를 형성했던 것 같다"며 "무리하게 상정하지 말고 다음 전원위에서 통과시키자고 했는데, 그런 이유 때문에 끝까지 강행해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반대의견 통해 의견 개진할 것…함께 인권위 지켜주길 바라"

[서울=뉴시스] 박주성 기자 = 국가인권위원회 문정호 전국공무원노조 국가인권위 지부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11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호소문을 낭독하기 전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이날 호소문에는 인권위원장과 몇몇 위원들이 합을 맞춰 윤석열 대통령의 반헙법적 비상계엄 선포를 옹호하고 대통령 지키기에 급급했다며 인권위가 지향해왔던 인권의 가치를 지켜내는 데 온 힘을 쏟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2025.02.11. park7691@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주성 기자 = 국가인권위원회 문정호 전국공무원노조 국가인권위 지부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11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호소문을 낭독하기 전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이날 호소문에는 인권위원장과 몇몇 위원들이 합을 맞춰 윤석열 대통령의 반헙법적 비상계엄 선포를 옹호하고 대통령 지키기에 급급했다며 인권위가 지향해왔던 인권의 가치를 지켜내는 데 온 힘을 쏟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2025.02.11. [email protected]

인권위원들과 직원들은 "새로운 인권위를 만들어가겠다"며 인권위 정상화와 신뢰 회복 의지를 다졌다. 위원들은 오는 17일 낮 시한인 반대의견 제출로 의견을 개진해 나갈 방침이다.

위원들은 안건에 담긴 내용이 인권위의 권한 범위를 넘어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독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인권위법 제30조는 재판 독립성 보장을 위해 국회의 입법과 법원·헌법재판소의 재판을 인권위 조사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데, 수사·재판 기관을 상대로 무죄추정원칙과 불구속재판(수사) 원칙 준수를 권고한다는 내용은 월권의 소지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인권 보호와 향상 필요성'이 존재하는 경우 관계 국가기관을 상대로 권고 또는 의견 표명을 할 수 있도록 인권위법 제25조와 제28조가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도, 이같은 필요성을 확인할 수 없다고 위원들은 강조했다.

현재 재판과 수사 절차에서 윤 대통령의 형사상 방어권이 침해됐다거나 적법 절차의 원칙이 위배됐다는 사실이 확인된 바 없다는 이유에서다.

남규선 상임위원은 "인권위의 본질인 독립성 저해하는 결정이기에 그 점을 비롯해 결정의 부당함에 대해 의견을 밝힐 계획"이라며 "결과는 바꿀 수 없지만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미경 위원도 떨리는 목소리로 "앞으로 안창호 위원장의 이런 행보를 그대로 지켜보지는 않을 것"이라며 "국민 여러분도 인권위가 안창호 위원장과 김용원, 이충상, 이한별, 한석훈, 강정혜 위원에 의해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시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이들 6명에 의한 인권위는 어제 사망했지만 10일 의결 직후부터 다시 새로운 인권위가 탄생할 것으로 저는 믿는다"고 덧붙였다.

인권위 직원들도 힘을 보탰다. 호소문에서 직원들은 "20년 넘는 세월 동안 인권위가 지향해 왔던 인권위 가치를 지켜내는데 온 힘을 쏟겠다"며 "직원들은 변호사 조력을 받을 처지가 안 되는 이들, 부당한 차별을 받아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인권위 본연의 일을 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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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죄인 된다"…'尹방어권' 의결 인권위 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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