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시장에 국민연금 들어오나…"기금형 도입 가능성"

[서울=뉴시스] 조현아 기자 = 금융권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국회 입법화 과정에서 번번이 무산됐던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왔다. 논란의 중심에 놓인 국민연금의 퇴직연금 시장 참여 여부와 무관하게 기금형 제도가 도입되면 퇴직연금 시장 내 경쟁 심화로 수익률 경쟁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11일 하나금융연구소 주윤신 연구위원이 작성한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에 따른 영향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총 428조원으로 2016년 146조원에서 282조원 불어났다. 세부적으로 확정급여형(DB) 215조원, 확정기여형(DC) 114조원, 개인형(IRP) 99조원 등이다.

퇴직연금 시장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지만, 지난 10년간 연평균 수익률이 2%대에 머물면서 노후보장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현행 퇴직연금 제도는 회사나 근로자가 직접 민간 금융기관과 계약해 자금 운용 상품을 선택하는 '계약형'이 대부분이다. DB형은 회사가 민간 금융기관과 계약해 자금을 운용하는 제도이고, DC형과 IRP는 근로자와 개인 가입자가 직접 민간 금융기관과 계약해 운용하는 형태다.

투자 정보와 전문지식이 부족한 회사나 근로자들이 안정적으로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선택하다보니 수익률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정치권 등을 중심으로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방안이 추진됐으나 현재 퇴직연금 사업자인 은행과 증권, 보험 등 금융권의 반발로 번번이 무산됐다. 국회에서는 지난해 8월과 11월 퇴직연금제도에 기금형을 도입하는 내용의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기금형은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중개조직이 자금을 관리·투자하는 제도다.

올 초 발표된 정부의 '2025년 경제정책방향'에도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내용이 포함되면서 관련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주 연구위원은 "당초 개정안에는 퇴직연금 기금 운용을 담당하는 수탁법인을 비영리법인으로 한정했으나, 최근 공적.민간기관 등이 모두 참여하는 형태의 제도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며 "국민연금의 개혁 지연으로 퇴직연금 등 사적연금의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관련 법률안을 발의한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과 정부도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어 기금형 퇴직연금의 입법화 가능성이 확대됐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기금형 퇴직연금 시장 참여 여부를 둘러싼 논의는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금융권에서는 퇴직연금 시장에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기관이 진입하는 것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공·사적 시장에 모두 진출할 경우 연금시장에 과도한 영향력을 미칠 뿐 아니라 운용업계 자체가 고사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지난해 10월 은행연합회와 금융투자협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등은 정부에 국민연금 참여에 반대하는 공동 의견서를 제출하고 공동 대응을 준비 중이다.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되면 시장 내 수익률 경쟁은 불붙을 것으로 전망됐다. 은행 등 기존 사업자의 수수료 수익은 일부 감소하고, 운용 역량이 우수한 금융사를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2023년 기준 퇴직연금 사업자의 수수료 수익 규모는 1조4000억원으로 이 중 은행이 64%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 연구위원은 "기존 퇴직연금 사업이 거래 관계, 마케팅 역량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향후 수익률이 가장 중요한 경쟁 요소로 부각될 것"이라며 "국민연금의 퇴직연금 시장 참여가 확정될 경우 기존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위축되고 국민연금 중심으로 시장구조가 재편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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