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정 국정협의체 가동…9일 실무협의
성장률 1%대로 떨어졌는데 정치 불안 지속
민주당, 20조 이상 '슈퍼 추경' 필요성 제기
정부는 추경보다는 재정 조기 집행에 무게
정부·여당도 野 협조 필요…논의 과정 주목
[세종=뉴시스] 안호균 기자 = 정부와 여야가 12·3 비상계엄 이후 멈춰선 국정 현안들을 논의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우원식 국회의장,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여야정 최고위층 4인 체제의 국정협의회를 가동키로 한 것.
실무 협의를 시작한 여야정 국정협의회에선 경제와 민생 분야 정책 현안들이 주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최근 경기 위축에 대응하기 위해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본격적으로 나오고 있다.
먼저 추경 논의에 불을 붙인건 야당이다. 민주당 민생경제회복단은 지난 8일 열린 간담회에서 20조원 규모의 '슈퍼 추경' 편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1% 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경제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까지 고려하면 20조~25조원 규모의 경기 보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역점 정책인 지역화폐 예산을 비롯해 ▲민간 소비 지원 ▲소상공인 지원 ▲인공지능(AI)·반도체 등 산업 육성 ▲지역 균형발전 등을 위한 대규모 예산 편성이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국정협의체에 테이블에 추경을 올리겠다는 입장이다.
안도걸 민주당 의원은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현재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이 소상공인들"이라며 "소상공인들이 거의 질식 상태에 있기 때문에 (재정 투입을 통해) 매출을 늘려줄 필요가 있다. 민간 소비를 광범위하게 촉진시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안 의원은 "지역화폐를 (발행해) 할인하고, 그 비용을 국가가 일부 대는 것"이라며 "지난번 본예산 때는 우리가 1조원 정도 요구한 적이 있다. 이번에는 규모와 할인율을 어느 정도로 할지 논의가 돼야 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민간에서도 추경 편성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민주당이 4조1000억원을 감액한 예산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에 지역경제와 복지 등에 추가 지출할 재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지난 8일 내놓은 보고서에서 정부가 재정 여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최소한 5조8000억원의 추경을 편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또 경제 여건을 감안하면 더 적극적인 추경 편성도 고려할 필요도 있다고 짚었다.
정부도 경기 위축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하는 분위기다. 기획재정부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1.8%다. JP모건 등 일부 해외 기관에서는 성장률이 1.4%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계엄·탄핵 사태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 등 대내외 정치 변수가 우리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위험도 어느 때보다 큰 상황이다.
정부가 최 권한대행을 중심으로 환율 상승 등 여러 단기 리스크 요인에 대응하고 있지만 정치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에는 소비·투자 심리가 급격히 꺾여 우리 경제의 회복력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재정 당국 내에서는 야당의 주장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있다. 정부는 이미 상반기에 공공 예산의 70% 가량을 조기 집행해 경기 위축에 대응한다는 올해 재정 계획을 세웠다. 이 때문에 당장 대규모 추가 재정 투입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또 아직은 심각한 경기 침체가 나타났다고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경제 상황의 변동 등을 지켜본 뒤 추경을 편성해도 늦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여당은 추경 편성에 더 부정적이다. 지역화폐 예산 등이 조기 대선을 염두한 현금 살포에 가깝다는 인식이다.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지난 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무차별 현금 뿌리기식 낭비성 추경은 절대 안 된다"며 "결국 이들(민주당)의 요구는 또다시 지역화폐 예산 확보다. 잘못된 추경은 자칫 재정 건전성 악화로 이어져 국가신용등급 하락 등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 의장은 "지금 해야 할 일은 추경 편성이 아니라 정부의 2025년 경제정책 방향이 조속히 추진되고 예산 조기 집행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라며 "현시점에서 추경보다 급한 것은 민생 경제를 활성화하고 국가 미래 먹거리를 창출할 민생 법안의 조속한 처리"라고 강조했다.
다만 여야정이 추경을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밖에 없다는 시각도 있다.
정부와 여당도 반도체산업특별법, 국가기간전력망확충법, 고준위방폐물특별법, 해상풍력법 등 '미래 먹거리 4법', 밸류업 세제 지원,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 주요 정책의 국회 통과를 위해서는 야당의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정부가 제출했던 예산안에서 감액된 예비비(2조4000억원)와 국고채 이자(5000억원) 등을 위한 재원도 필요하다.
여야정은 9일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 이해식 당대표 비서실장, 국민의힘 김상훈 정책위의장, 강명구 비상대책위원장 비서실장, 조오섭 국회의장 비서실장, 방기선 국무조정실장, 김윤상 기재부 1차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첫 실무협의를 가졌다.
의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민주당은 추경안을, 정부와 여당은 역점 법안들을 제안했을 것으로 보인다. 여야는 각당 대표에게 논의 결과를 보고하고 추가 협의의 방향을 잡아 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