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윤정민 기자 = '우리 아이 나쁜 친구 스마트폰, 법으로 절교시킬까?'
2013년 고등학생 윤정민이 한 기자 직무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쓴 실습 기사 제목이다. 당시에도 일부 청소년이 스마트폰으로 오랫동안 게임하거나 동영상을 시청하는 등 스마트폰에 과몰입하는 현상이 사회 이슈였다. 이에 일부 학부모가 자녀의 스마트폰 사용을 통제하기 어렵다며 스마트폰 사용 금지 입법을 해 달라는 바람을 기사에 담았다.
기자를 꿈꾸던 한 학생의 인생 첫 기사. 기자가 된 지금 가끔 이 기사를 볼 때마다 부끄러운 감정이 든다. 스마트폰 역기능도 있지만 정보 전달 등 순기능도 있을뿐더러 특정 사회 문제를 막는데 규제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과몰입을 막기 위해 법으로 금지하는 일도 비현실적인 대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호주 의회가 최근 16세 미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이 통과된 것. 부모 등 보호자 동의 관계 없이 SNS 이용 자체를 금지한 세계 최초 사례다. 이르면 내년 말부터 법 효력이 시작할 전망이다.
청소년 SNS 사용 금지법이 통과될 수 있던 데는 올해 초 발생한 청소년 폭력·혐오 사건 영향이 컸다. 지난 4월 호주 시드니 한 교회에서 16세 소년이 주교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사건이 있었다. 호주 현지 외신에 따르면 이 소년은 극단주의 단체에 속해 있었는데 이 단체가 SNS를 통해 활동하며 세력을 확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SNS가 허위조작정보(가짜뉴스)와 같은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만드는 '확증편향'에 빠지도록 한다는 점 등 SNS 역기능은 분명 있다. 특히 청소년이 성인보다 SNS 역기능에 더 많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도 공감한다. 학계에서도 자기 정체성과 가치관이 완전하게 형성되지 않은 미성년자의 경우 SNS로 인한 부작용과 위협에 취약할 수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호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청소년 SNS 과몰입은 사회 문제 중 하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지난해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청소년 2명 중 1명(47.7%)이 SNS 이용 조절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다.
이에 우리 국회에서도 청소년 SNS 이용을 제한하는 입법안이 잇달아 발의됐다. 한 의원은 16세 미만 청소년의 SNS 일별 이용 한도를 설정할 수 있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또 다른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SNS 기업이 14세 미만의 회원가입 신청을 거부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을 담았다.
과연 법이 청소년을 SNS 해악(?)에서 보호할 수 있을까. 호주 실험 결과에 따라 다른 국가에서도 진행 중인 SNS 규제 흐름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실험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으나 기자는 실패로 끝날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싶다.
우선 우리나라가 과거 시행했던 게임 셧다운제처럼 SNS 금지법 역시 의문을 제기하는 이가 많다. 정부는 청소년 온라인 게임 과몰입을 막기 위해 수면권 보장 등을 명목으로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인터넷 게임을 할 수 없도록 했다.
하지만 청소년이 부모 명의 계정으로 게임을 하거나 가상사설망(VPN) 등을 활용해 규제를 회피하는 사례가 잇달아 나왔다. 청소년 자유권을 침해한다는 지적도 나오자 도입 10년 만인 지난 2022년 1월에 폐지됐다. SNS 금지도 마찬가지로 청소년이 규제를 피하려는 사례가 재현될 수 있는 만큼 정책 성공 가능성에 의문이 든다.
어떤 SNS 서비스를 금지범위로 정할 지부터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도 실패 예상 이유로 꼽고 싶다. 모든 SNS를 규제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 특정 플랫폼을 골라 규제할 가능성이 크다. 호주 정부도 금지할 SNS 예시를 들었는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은 포함하면서도 유튜브, 왓츠앱은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튜브의 경우 창작·교육 목적으로 활용되고 왓츠앱은 메신저 앱이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유튜브도 가짜뉴스 주요 유통창구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이에 호주가 금지한 SNS가 입법 취지에 맞게 설정됐는지 의문이 든다. 만약 우리나라도 호주처럼 SNS 금지 예외 대상에 유튜브, 카카오톡을 두면 플랫폼 간 형평성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청소년 SNS 과몰입 문제를 지켜만 볼 수 없는 법. 플랫폼 기업이 청소년의 SNS 과몰입을 제어할 장치를 도입하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라 본다.
이미 메타(인스타그램), 구글(유튜브), 바이트댄스(틱톡) 등 플랫폼 기업은 청소년 SNS 과몰입 또는 이용 부작용을 막기 위해 자율 규제책을 내놓고 있다.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은 내년 1월부터 국내 19세 미만 이용자 계정을 자동으로 비공개 형태로 전환할 예정이다. 보호자는 자녀의 과도한 앱 이용을 막도록 일별로 앱 사용시간을 제한할 수 있다.
청소년 스스로 SNS 이용을 조절할 수 있도록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가 절실하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올바른 SNS 사용법 등을 학교 의무교육으로 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대안이 효과를 보이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강경책으로 자칫 청소년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보다 SNS를 자율적으로 통제하는 법을 천천히 깨우치도록 돕는 게 장기적으로 올바른 인터넷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해법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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