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장벽에 생활 어려워"…'각자도생' 내몰리는 20만 유학생

기사등록 2024/10/08 05:00:00

'코리안 드림' 품고 유학…한국어 난관 해결 못 해 울상

올해 유학생 20만 명 돌파…교육부, 30만 명 유치 목표

"강의자료 참고가 최선…유학생끼리만 어울릴 수밖에"

유학생 수용 역량부터 점검해야…"언어 교육 확대 필요"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지난 8월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린 2024년 여름 학위수여식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4.08.23. bjko@newsis.com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지난 8월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린 2024년 여름 학위수여식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4.08.23.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 #. 튀르키예 유학생 기젬(26)은 '코리안 드림'을 품고 2022년 겨울 한국에 왔다. 1년 6개월의 어학당 과정을 수료한 기젬씨는 서울 소재 한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이내 언어 장벽에 부딪혔다.

아직 생소한 전공 단어가 많은데도 한국인 전공생들과 같이 한국어로 수업을 듣고 평가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기젬은 "한국어로 진행되는 21학점의 수업을 듣고 보고서를 작성하려면 어려운 점이 많지만 학교 차원의 지원은 크게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한국어 실력을 빠르게 향상하기 위해 한국어 수업을 듣고 학위를 받을 수 있는 한국어 트랙을 택했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영어 트랙을 택할 것을 그랬다"며 "유학생 친구들이 모이면 다들 (언어장벽으로 인해) 학교생활이 어렵다는 고민을 토로한다"고 털어놨다.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와 대학은 감소하는 학령인구를 대체하기 위해 유학생의 양적 증가에 집중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의 유학생들은 언어 장벽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유학생 수 늘리기에 골몰하면서도 한국에서 유학하는 학생의 언어 장벽 해소 등 학업적 성과를 뒷받침하는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우리나라 외국인 유학생 수는 20만8962명으로 처음으로 20만명을 넘어섰다. 이는 지난해 유학생 18만1842명보다 15% 늘어난 수준이다. 외국인 유학생 수는 2016년 처음 10만명에 도달한 후 매년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8월 유학생 30만 명을 2027년까지 유치해 세계 10대 유학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유학생 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스터디 코리아 300K)'을 발표한 바 있다. 지난달 초에는 사회관계장관회의를 열어 1주년 점검 결과를 발표하는 동시에 추진 의지를 재확인했다.

몽골 유학생 타난 에르덴(25)은 "전공을 한국어로 배우다 보니 수업을 따라잡기 어려웠다"면서 "딱히 도움받을 곳도 없어서 수업 전 교수님이 올린 강의자료를 보고 준비하는 것이 최선이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인 학생들과 교류하고 싶은 마음에 한국어 트랙을 선택한 유학생들이 도움받을 곳 없이 각자도생에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한국 학생들에게 '짐'이 될 수밖에 없는 현재 상황에서는 한국 학생과 어울릴 수 있는 환경 자체가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언어 장벽을 맞닥뜨린 유학생들은 학업 과정에서 유학생 공동체에 고립되고 있다. 한국인 대학생들이 조별 과제(팀플)에서 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유학생을 꺼리는 상황이 빈번해지자 아예 해당 강의 교수나 강사가 나서 내·외국인을 분리해 조를 꾸리는 경우도 흔하게 발생한다.

기젬은 "(조별 과제는) 한국 학생과 접촉면을 넓힐 기회인데, 소통이 어려우니 유학생들도 같은 언어권끼리만 끼리끼리 몰려다니며 대화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며 "그마저도 (한국인 학생들과) 똑같이 평가받기 때문에 유학생 조는 두 배로 노력해야 한다"고 울상을 지었다.

독일 유학생 클라라(21)도 "유학생들은 기존 대인관계 안에 갇혀 한국인들과 접촉하고 친구를 사귀기가 어렵다. 그 결과 도움을 요청할 상대도 마땅치 않다"면서 "우리 같은 유학생을 위한 학교 차원의 지원도 별로 없는 것 같다"고 푸념했다.

학교에 유학생을 위한 한국어 교양 수업이 마련돼 있지만 수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기젬은 "한국어 교양 수업은 모든 외국인을 상대로 짜여있어 수준에 맞는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다"며 "보통 한국어를 정말 못하거나 학점이 부족한 유학생들이 수강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무래도 유학 경험이 있는 교수나 강사가 많다보니 우리도 언어장벽을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면서 "사람마다 가진 능력과 놓인 환경이 다르니 조금은 배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지난 8월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린 2024년 여름 학위수여식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4.08.23. bjko@newsis.com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지난 8월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린 2024년 여름 학위수여식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4.08.23. [email protected]

정부와 대학들이 유학생 유치에 공을 들이는 만큼 이들의 성공적인 유학 생활을 위한 정책을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형대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대학마다 나름의 철학이나 가치 지향에 따라 다양한 차원의 수준별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며 "무작정 유학생부터 유치할 것이 아니라 대학이 유학생을 수용할 역량이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유학생을 위한 논문 작성법 강좌, 멘토링 등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교육 당국이 유학생이 특히 어려움을 느끼는 언어 부문에서 교육을 확대하고 학업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한국어능력시험(TOPIK) 점수가 높다 한들 한국 학생들도 이해가 어려운 강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유학생은 많지 않다"면서 "오히려 영어트랙을 확대해 유학생을 유치하는 것이 대학의 국제화 측면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학생 확대 정책을 추진하는 교육 당국이 이미 한국 땅을 밟은 이들의 학업 질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따른다.

이 교수는 "한국에 있는 외국인 유학생의 국적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아시아지역 출신이며 자비 유학이 90% 이상"이라며 "상당한 거액을 들여 한국에 왔는데 정작 교육 주체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의 한 대학 관계자는 "학교 측은 입학 이후에도 (유학생들이) 한국어 실력을 높일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다"면서 "아직은 개선할 부분은 있는 것은 맞지만 10년 전과 비교해서 언어(한국어) 장벽이 높이가 조금은 낮아졌음을 체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만 학생들의 한국어 실력을 검증하고 한국어 실력 향상을 유도하기 위해서 한국어능력시험(TOPIK) 등을 현재보다 더 자주 시행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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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장벽에 생활 어려워"…'각자도생' 내몰리는 20만 유학생

기사등록 2024/10/08 05:00:00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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