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 약점인 이민 문제 질문 나오자 트럼프 허영심 자극
"지친 청중들 유세장 일찍 떠난다" 공격에 자제력 상실
폭주하는 모습 지켜보다 "나 지지하는 공화당원 많다" 일격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10일(현지시각)의 미 대선 토론회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을 잘 아는 사람이 고안한 도발을 함으로써 불리한 주제에 대한 토론을 유리하게 이끌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해리스는 트럼프가 자신에게 유리한 주제를 다루게 된 것으로 믿게 만들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기울이고, 과장되게 새눈을 뜨고 약하게 미소를 짓고, 심지어는 손에 턱을 괸 채 곤혹스럽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런데 트럼프가 비참해졌다.
사회자 질문은 트럼프가 자신 있어 하는 분야에 대해 한 것이었다. 해리스의 약점인 이민자 문제로 공격하면 해리스가 자신은 바이든 대통령과 다르다고 변명하느라 쩔쩔매야 했다.
그런데 트럼프가 다른 문제에 꽂혔다. 바로 유세 군중이었다. 이어 고양이었다.
해리스가 트럼프가 길을 잃게 만들었다. 트럼프가 의회의 국경 통제 강화 법안을 무산시켰다고 비난했다. 이어 선거 캠프의 트럼프 연구자들이 고안한 말들을 꺼냈다. 트럼프의 허영심을 자극한 것이다.
시청자들을 향해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겠다”며 도발을 시작했다. “재미있는 일들이 많은 도널드 트럼프의 유세에 가보시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해리스는 이죽거리면서 트럼프가 풍력발전기가 고래들을 죽인다고 한 일, 양들의 침묵에 나오는 연쇄 살인마 한니발 렉터를 거듭 칭찬한 일 등을 거론했다. 트럼프가 새눈을 뜨고 해리스를 노려봤다.
“재미있는 일이 한 가지 더 있다.” 해리스가 말을 잇자 트럼프의 머리가 진자처럼 흔들렸다. “지쳐서 지루해진 청중들이 유세장을 일찍 떠나기 시작한다.”
트럼프가 눈을 부릅뜨는 순간 해리스가 “그가 여러분들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절대 듣지 못할 것”이라며 말을 마쳤다.
그러자 트럼프가 트럼프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첫 대선 때부터 토론회에서 종횡무진해온 트럼프라면 거침이 없었을 것이다. 일식을 맨 눈으로 쳐다보는 무모한 사람이니 말이다.
트럼프는 그러나 이날 밤 숨을 토끼 굴을 찾지 못해 헤맸다. 해리스가 건 시비에 길을 잃었다. 그로선 도저히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리 참모들이 진정하라고 뜯어 말렸더라도 말이다.
토론 사회자 데이비드 뮤어가 트럼프에게 해리스가 제기한 이민규제 강화법에 대해 질문하면서 본 주제로 돌아가도록 애를 썼지만 트럼프는 안중에도 없었다.
“우선, 유세 문제부터 답하겠다…”
그 순간 해리스가 다시 턱에 손을 굈다.
트럼프가 “최대의 유세를 하고 있다. 정치 역사상 가장 믿기 어려운 유세들”이라며 유세 청중이 많다고 변명하고 “해리스 유세에는 사람들이 없다. 갈 이유가 없지 않나. 가는 사람들도 해리스가 돈을 주고 버스로 실어 나르는 사람들”이라고 음모론을 제기했다.
이어 오하이오 주에서 아이티 이민자들이 “개를 잡아먹는다! 이민 온 사람들이 고양이를 잡아먹는다!”며 목청을 높였다.
해리스가 머리를 뒤로 젖히면서 두 손을 꼭 잡아 회심의 몸짓을 했다. 뮤어 사회자가 반박하자 트럼프가 쏘아봤다.
“TV에서 봤다. TV에서 ‘내 개를 납치해 요리해 먹었다!’고 말하는 걸 봤다.”
해리스가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면서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웃기도 했다.
원하는 걸 모두 얻은 해리스가 분위기를 진정시키려는 듯 “극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빌 클린턴이나 트럼프 같은 후보였다면 재치 있고 무자비한 말을 쏟아내겠지만 해리스는 자제했다.
대신 해리스는 빨간 천을 흔드는 투우사처럼 트럼프를 자극하려고 준비한 말들을 꺼냈다.
트럼프의 숙적인 리즈 체니 전 하원의원과 같이 자신을 지지하는 공화당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시청자들이 궁금할 것이라고 했다.
고개를 하늘로 쳐든 트럼프가 자신 없어하는 표정으로 억지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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