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 "제작한 사람이 있으면 범의(犯意)가 명확한데, 지금 사건은 기계가 자동으로 (사진을) 변환해 주는 개념이잖아요. 컴퓨터 프로그램을 처벌할 수는 없어요."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불법합성물이 텔레그램을 기반으로 제작·유포되는 상황에 대해 한 수사 관계자가 한 푸념 섞인 말이다.
당국은 딥페이크 확산에 비상이 걸렸다. 경찰청은 딥페이크 제작부터 유포까지 추적·검거해 피의자를 발본색원하겠다고 선언했다. 경찰은 참여 인원만 22만명에 달하는 불법합성물 제작 텔레그램 채널에 대해 내사에 착수한 상태다.
하지만 법인격이 없는 봇(Bot·불법합성물 제작 프로그램)이 한 행위를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어떤 혐의를 적용할지 등 수사 계획 수립부터 난항을 겪고 있어 이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새롭게 나타난 범죄 양태에 관련 법규도, 관련 사례도 적어 수사에 어려움이 있다. 원칙적으로 딥페이크 성범죄는 지난 2020년 개정된 성폭력처벌법의 적용을 받는다. 허위영상물을 제작·반포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하지만 합성물 생성자인 봇 자체는 법인격이 없는 탓에 징벌할 수 없다. 일선 경찰도 실제로 이 같은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수사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봇 프로그램이 껴서 법리검토를 일반 사건보다 더 많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범의가 명확한 의뢰자와 제작자와 달리 텔레그램 채널에 탑재된 나체 사진 합성 '봇 프로그램'은 법인격이 없는 기계적 도구라 범의가 희석된 상황이라는 것이다.
합성물을 생성하는 봇만큼이나 생성을 의뢰한 인물을 어떻게 처벌할지도 골치 아픈 문제다.
범죄에 사용된 플랫폼인 텔레그램의 협조 없이 의뢰자들을 수사하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언론을 통해 드러난 이용자만 40만명에 이르는 상황에서 연루자를 모두 특정해 처벌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설령 신원을 특정하더라도 유포할 목적 없이 개인 보관용이었다고 발뺌하면 사실상 처벌도 곤란하다.
현행법상 성착취방을 꾸린 텔레그램 채널 운영자도 처벌하기 쉽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운영자가 이를 방조했다고 볼 수는 있어도 직접 합성물을 제작해 배포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가해자를 누구로 볼 것인지,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 법리적 과제가 산적한 가운데 무수한 피해자가 양산되고 있다.
이제는 AI가 악용됐을 때 그 결과에 대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불 보듯 뻔한 미래를 앞두고 이를 방기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이제까지 AI와 관련해 기존 법의 범위에서 관련 규제를 적용해 왔지만, 앞으로는 기존의 법적·사회적 관행으로 다루기 어려운 다양한 문제가 쏟아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처벌이 능사는 아니다. 범죄 행위에 손쉽게 가담할 수 있는 환경 자체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벌어지는 반인륜적인 범죄가 확산하고, 그 속에 노출되는 피해자를 줄이려면 우리 사회는 이미 발생한 범행을 엄벌하고 피해자를 보듬을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아물지 않은 상처를 남겨두고 건강한 새 살이 돋기를 바랄 수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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