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미혼남녀 템플스테이 '나는 절로' 5기
친숙한 '불교' 이미지에 70대 1 경쟁률 기록
저출생 대책 일환…주거·일가정 양립 등 지적
여섯 커플 매칭 성공…역대 최고 성사 비율
[서울=뉴시스]정유선 기자 = "오늘은 혼자 왔지만 내일은 꼭 둘이 돼서 돌아가고 싶은 직녀 9호입니다. MBTI는 ESTJ.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걸 좋아합니다. 여행 브이로그를 하고 있는데 일대일로 대화할 때 유튜브 채널 알려드릴게요!"
"제 장점은 첫째 목소리가 좋다, 둘째는 호불호가 강하지 않아서 어떤 제안을 해도 오케이하는 성격이란 점입니다. 나머지 98개 장점은 앞으로 만나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월칠석을 하루 앞둔 지난 9일, 강원도 양양 낙산사로 30대 미혼남녀 스무명(여자 10명, 남자 10명)이 모였다. 체감온도 32도의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더위였지만 젊은이들의 얼굴엔 짜증이 아닌 기대감이 떠올라 있었다.
이들이 한데 모인 건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이 주최한 '나는 절로' 5기에 지원, 당첨되면서다. '나는 절로'는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하는 1박2일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으로 보건복지부가 저출생 대책의 일환으로 지원하고 있다. 칠월칠석 특집에 걸맞게 여자들에겐 직녀, 남자들에겐 견우라는 호칭과 함께 각각 1~10번의 번호가 부여됐다.
이번 기수엔 총 1510명이 접수해 남자는 70.1대 1, 여자는 77.3대 1이란 역대급 경쟁률을 기록했다. 선정 기준은 마지막 연애 기간, 나이, 직업, 사는 곳 등 다양하지만 무엇보다 '간절함'을 중요하게 봤다고 주최 측은 밝혔다.
참가자들에 따르면 견우 5호는 지원서를 길게 써서 눈에 띄는 전략으로 승부를 봤다. 견우 9호는 오점을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 "맞춤법과 띄어쓰기 검사를 돌리는" 정성을 기울였다고 한다. 낙산사 입성을 위해 입사 지원서를 쓸 때에 버금가는 공을 들인 셈이다.
본격 프로그램의 시작인 자기소개 순서가 되자 참가자들은 수줍음을 무릅쓰고 일어나 자신의 장점, 취미, 이상형 등을 소개했다. 1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지각색의 매력이 드러났다.
"MBTI는 ISTJ인데, T와 F의 비율차가 근소하기 때문에 공감하는 데 별 문제는 없다"(견우1호), "성격이 발랄한 편이니 내 인생이 무료하다 싶으면 절 택하시면 된다"(직녀3호), "술담배를 안 하기 때문에 술 약속으로 걱정은 안하셔도 된다"(견우 6호)며 매력을 발산하는 이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이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이들이 밝힌 지원 동기 중 하나는 믿을 만한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운 환경에 있다는 점이었다. 일 끝나고 운동 좀 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저물어 있는 건 흔한 직장인의 일상이다. 그런 점에서 사람 만날 기회를 주는 '나는 절로'와 같은 프로그램이 반가웠다고 참가자들은 입을 모았다.
차분하면서도 여유로운 분위기의 불교 이미지도 지원을 이끌었다. 직녀 10호는 "템플스테이를 몇 번 했는데 자연 속에서 내면에 대해 고민하고 여유를 찾는 절의 '추구미(지향점)'가 저랑 잘 맞았다. 여기 지원하시는 분도 저랑 잘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불교는 최근 '뉴진스님' 등으로 젊은 세대들에게 '힙한 종교'로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다만 이러한 만남이 결혼과 출산으로까지 이어지리란 보장은 없다는 게 참가자들의 시각이다. 이들은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선 육아휴직을 보다 더 자유롭게 쓸 수 있고 경력 단절이 되지 않도록 하는 등의 제도적 뒷받침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안정적인 가정의 전제가 되는 주거에 대한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어진 레크리에이션, 경내 투어를 통해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게임 중엔 정해진 짝꿍에게 열중하며 호감을 키워가는 남녀가 있는가 하면, 눈 앞에 상대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저 멀리 있는 이성을 곁눈질로 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참가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대화였다.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기엔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저녁공양을 하면서, 차담을 나누면서 마음을 확인했다. 아침부터 쉴 틈없이 이어진 스케줄에도 견우와 직녀들은 내 짝을 찾으리란 열정으로 눈을 반짝이며 대화에 열중했다. 밤 11시가 훌쩍 넘은 시간까지 도란도란 이어지는 대화 속 낙산사는 잠들 줄을 몰랐다.
'소원 성취'로 유명한다는 낙산사의 영험한 기운이 작용한 것일까. 이번 5기에선 최종 여섯 커플이 탄생해 성사 비율(60%)로 따지면 역대 최고 성과를 올렸다. 견우와 직녀를 이어주는 사랑의 오작교가 되어주겠다는 재단의 포부가 절반 이상 달성된 셈이다.
커플들의 후기를 들어보면 다수는 이미 낙산사행 버스에서 인연이 정해졌다고 한다. 옆자리에 앉은 이와 1시간 반 동안 대화를 하며 자연스레 마음이 기운 것이다. 견우 5호와 최종 매칭된 직녀 8호는 "버스에서부터 잘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레크리에이션을 할 때 보니 승부욕이 있는 점까지 같았다"며 "(견우5호는) 나의 남자 버전인 것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적극적 구애로 사랑을 쟁취한 사례도 있다. 자기소개 시간 견우 6호에 끌림을 느낀 직녀 4호는 용기를 내 먼저 다가갔다. 견우 6호는 "쉽지 않았을텐데 대화를 하면서 많이 표현을 해주셨다"며 "마지막 차담 시간에 빨리 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1박2일간 제 짝을 찾지 못한 사람들도 마냥 상심할 필요는 없다. 매칭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끼리 서로 주변 사람을 소개시켜주기로 하는 등 아름다운 우정을 얻었기 때문이다.
연말엔 나는 절로 총동창회도 있다고 하니 또 다른 기회를 노려볼 수도 있다. 어딘가에 있을 나만의 견우, 직녀 찾기는 끝나지 않았다.
견우9호는 "제가 첫날에 너무 긴장을 많이 해서 제대로 어필을 못한 것 같다. 연말 동창회 때 준비를 열심히 해서 한번 더 노력해보는 걸로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