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환경 열악한데…주1회 30분씩 화장실 청소까지 요구
채용절차법, 30인 이상 사업장 근로조건 불리한 변경 금지
화장실 청소 역시 30분 연장근로…이에 대한 임금 지불해야
청년층 중소기업 기피 지속…정부·지자체, 환경개선제도 운영
[서울=뉴시스] 고홍주 기자 = #. 오랫동안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던 30대 A씨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해 수험생활을 끝내고 경기도의 한 소기업에 경리로 취업했다. 면접 후 곧바로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고 첫 출근한 사무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낡은 건물에 엘리베이터 없이 4층까지 올라가야 했고, 남녀공용에 딱 1칸씩 있는 화장실은 한번도 청소하지 않았을 것 같은 모습에 악취가 풍겼다. 설상가상으로 채용공고나 근로계약서에는 있지도 않았던 '화장실 청소'까지 해야 했다. 새로 여직원이 왔으니 주1회 30분 일찍 와 화장실 청소를 해달라는 것이다. 면접 때 회사 대신 근처 카페에서 보자고 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A씨는 "취업했다며 좋아하는 부모님 때문에 1달만 참고 다녀보자고 다짐했지만 매일 아침이 절망스럽다"며 "처음부터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을 갈 수 없으니 받아주는 데를 가자고 생각하면서 눈을 낮췄는데, 이런 곳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른바 'MZ세대(1980년대 초반생~2000년대 초반생)'에게 근로환경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어차피 일을 하는 곳인데 화장실 같은 부수적인 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겠냐 할 수도 있지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화장실 때문에 출근 첫날 퇴사했다는 글들이 드물지 않게 올라올 정도로 오랜 논쟁 거리다.
그렇다면 A씨는 근무조건이 취업공고와 다르다는 이유로 '구제'를 받을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가능은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우선 우리나라는 지난 2014년 기업의 채용 절차에서 구직자들이 피해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을 제정했다.
채용절차법 제4조는 '거짓 채용광고 등의 금지'를 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채용광고의 내용을 구직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해서는 안 되고, 채용한 후 정당한 사유 없이 채용광고에서 제시한 근로조건을 구직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해서도 안 된다. 이를 어길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문제는 채용절차법이 상시 근로자 30인 이상의 기업에만 적용된다는 점이다. A씨의 회사가 30인 미만이라면 이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또 열악한 화장실과 화장실 청소를 '근로조건을 불리하게 변경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단, 만일 A씨에게 주1회 화장실 청소를 이유로 30분 일찍 출근하게 했다면 이에 대한 임금은 지급해야 한다. 이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도 마찬가지다. 5인 미만 사업장은 통상 연장근로나 휴일근로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가산수당'에 대한 것일 뿐 근로 자체에 대한 대가는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런 문제 때문에 청년들의 중소기업 기피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종사자 300이나 미만 중소기업 취업자 중 39세 이하 청년층은 전체 30.9%에 그쳤다. 반면 60세 이상은 24.0%, 50대는 23.8%로 절반 가까이가 5,60대 중장년층이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2018년 청년층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년층의 중소기업 취업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이 중소기업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열악한 환경(29.3%)'인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지원과 정책을 묻는 질문에는 '근무·작업환경 개선(56.2%)'이 가장 높은 응답을 차지했을 정도다.
정부와 각 지자체는 이러한 중소기업의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여러 지원제도를 두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도약보장패키지' 사업이 대표적이다. 기업 특성별로 채용절차부터 근로조건, 근무환경 분석 등을 통해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으로, 지난해 전국적으로 확대돼 기업과 구직자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시범사업에 참여했던 한 업체는 진단을 통해 신규 입사자들의 이직을 유발하는 장거리 현장 교육 기간을 단축하고, 여성 근로자 전용 탈의실·화장실을 설치하는 등 작업환경을 개선해 일손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지자체들도 근로환경이 열악한 중소기업의 구인난 해결을 위해 화장실 등 복지시설 개·보수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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