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사회주의 국가서 어떻게"…오세훈이 中서 정신 번쩍 든 사연

기사등록 2024/08/16 09:16:55

오세훈, 중국 충칭 지하철 시설물 보고 충격

베이징서는 과감한 정원 조성 정책에 놀라

중국 발전상에 놀라며 서울시정 각오 다져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1일까지 중국 충칭시와 베이징시를 차례로 둘러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오 시장은 지난달 29일(한국시간) 충칭시에서 전철을 직접 타본 뒤 승강장에 설치된 승객 쉼터를 높이 평가했다. 승강장에 냉난방이 가능한 쉼터가 설치된 것을 본 그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어떻게 저런 서비스가 나오지"라며 "(중국) 서부 쪽 개발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늦다고 했는데 와서 보니까 정신이 번쩍 난다"고 발언했다.

경직돼 있을 것이라 여겼던 중국 교통 행정이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베이징시에서는 정원 조성 정책에 높은 점수를 매겼다.

오 시장은 지난달 31일 베이징 시내 녹지 공원을 방문한 뒤 "감동이 물밀 듯이 밀려오는 공원"이라며 "서울시민보다도 훨씬 더 높은 삶의 질의 공간이 펼쳐지는데 정말 한마디로 기가 막혔다. 저것보다 더 잘 꾸밀 수는 없다"고 극찬했다.

베이징시는 시내 어디든 500m만 걸으면 공원을 즐길 수 있게 하는 파격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정원도시 서울' 정책을 추진 중인 오 시장으로서는 베이징이 부러울 법했다.

실제로 이번 오 시장 출장에 동행해 중국 충칭시와 베이징시를 차례로 둘러보면서 거듭 든 생각은 '큰일이다. 한국이 이런 중국을 상대로 경쟁을 할 수 있을까'였다. 수년 전 방문했던 당시보다 중국은 거의 모든 부문에서 몇 단계 향상된 역량을 자랑했기 때문이었다.

충칭시의 야경은 백미였다. 해가 지자 충칭시 장강역 절벽 군사요새를 개조한 홍야동(洪崖洞)을 중심으로 치안시먼·동수이먼대교와 충칭대극장 등 양쯔강 주변 건물과 각종 건축물에 화려한 조명이 켜졌다. 말 그대로 불야성을 만드는 조명이 강변을 수놓으면서 거대한 미디어 파사드 작품이 눈앞에 펼쳐졌다.

한국이라면 이 정도 센 조명을 켤 경우 인근 주민이 빛 공해를 호소하며 강하게 반발했겠지만 중국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체주의적, 권위주의적 체제에 적응된 중국 인민은 공산당과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순응하는 게 습관이 돼 있다.

야경 명소를 만들겠다는 충칭시 당국의 구상에 대들 수 있는 인민은 찾기 어렵다. 오히려 충청 주민들은 매일 홍야동 앞에서 인산인해를 이루며 상하이를 넘어 중국 최고의 야경 명소가 생긴 것을 자축하고 있었다.

이처럼 중국 행정가들은 주민 반발을 걱정할 필요 없이 마음먹은 대로 사업을 추진한다. 반대 여론이라는 걸림돌이 없으니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더 파격적인 성과를 단기간에 잡음 없이 낼 수 있다. 드넓은 영토가 중국 엘리트들에게는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거대한 캔버스나 마찬가지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희생하는 대신 경제적 과실을 따먹는 전형적인 중국식 발전 방식인 셈이다.

중국 출장 중 인상적이었던 다른 공간은 베이징 시내에 있는 SKP-S였다.

2019년 문을 연 SKP-S는 창의적이고 미래적이며 공상과학(SF)적인 쇼핑 공간이다. SKP-S는 베이징을 대표하는 럭셔리 백화점인 SKP(Shin Kong Place)가 맞은편에 새로 지은 시설이다.

한국의 크리에이티브 그룹 '젠틀몬스터'가 만든 SKP-S는 실험적인 조형물들을 각층에 배치하고 있다. 우주복을 입고 체스를 두는 유인원들, 우주선 내부를 닮은 매장, 중국의 인공위성과 우주선, 움직이는 펭귄 무리 모형 등이 방문객의 이목을 끈다.

세계 유명 의류 브랜드들은 SKP-S만을 위한 매장을 설계했다. 전 세계에서 단 한 곳밖에 없는 매장이라는 상징성이 SKP-S를 찾는 중국인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SKP-S는 '복제품의 천국'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중국이 몸소 보여주는 시위라 할 수 있다. 그간 선진국을 추격하는 데 몰두했던 중국이 이제부터는 창의성을 바탕으로 다른 나라들이 못하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겠다는 일종의 선언을 한 셈이다.

SKP-S를 비롯해 중국은 더 위협적인 새로운 무기들을 갖춰가고 있다.

중국 로봇 산업을 이끄는 '베이징 휴머노이드 로봇 혁신센터', 창업기업의 산실인 '중관촌 창업거리'는 첨단 산업 육성을 위한 중국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중국 5대 제약기지 중 하나인 '충칭다디생명과학단지'는 다른 나라들은 감행하기 어려운 과감한 대규모 투자를 이미 추진 중이다.

중국은 첨단 분야에서는 규제를 신경 쓰지 말고 일단 시도하라는 '선허용 후규제' 방침을 일관되게 적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실패를 발판 삼은 중국 신생기업들이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기업 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이고 창업한 지 10년 이하인 비상장 스타트업 기업을 뜻하는 유니콘 기업은 미국에 이어 중국에 가장 많이 있다.

해외 시장 없이 내수만으로도 글로벌 수준 대기업을 언제든 키워낼 수 있는 거대한 소비 시장을 갖춘 중국은 정부 계획에 따라 힘을 실어주며 신생 기업을 육성하고 있다. 지원 규모는 한국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고 파격적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사실상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비교 우위가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인 대부분이 이미 한국을 능가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에 위험 요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계획 경제 본연의 한계로 인한 부자연스러운 자원 배분으로 부동산 업계에서부터 부실이 드러나고 있다. 경기 변동을 예상하지 못한 무차별적인 부동산 투자 끝에 부동산 업체들의 부실 채권이 급증하고 있다. 베이징 시내에는 비어 있는 사무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부동산 위기가 중국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미중 간 체제 경쟁 속에 미국을 비롯한 자유주의 진영이 중국을 고립시키면서 중국 경제의 어려움이 점차 커지고 있다.

이 와중에 중국이 고속 성장 시대 역시 마감되는 모양새다. 알리바바 이후 세계적인 대기업이 배출되지 않고 있으며 1인당 국내총생산은 1만2000달러 수준에서 정체하고 있다. 3만2000달러 수준인 한국에 비해 1인당 국내총생산이 더 낮은 시점에서 고도 성장을 사실상 마무리하면서 향후 중국이 성장 둔화에 따른 각종 부작용에 시달릴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아직 선진국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공중도덕 역시 문제점이다. 이번 출장 과정에서 공공장소에서의 탈의와 실내 흡연 등을 빈번히 확인할 수 있었다. 노상 방뇨도 여전했다. 공항 서비스 역시 다른 나라에 비해 부족한 측면이 있다. 공항 검색대에서 성추행에 가까울 정도로 몸 곳곳을 더듬는 신체검사 방식은 한국 취재진을 당황하게 했다.

여전히 여러 영역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꽌시(關系)'도 중국 사회의 공정성을 저해하고 있다. 공산당 고위직이나 국가유공자와 인맥으로 얽힌 사람이 중국 사회에서 각광 받고 이들이 특혜를 누리는 일이 아직도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중국 사회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상적인 감시와 통제는 전체주의 사회의 면모를 드러낸다.

위챗 등 메신저 대화 내용은 당국에 의해 검열을 당하고 있다. 중국 도시에 있는 도로에서는 차 안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찍기 위한 플래시가 몇 초 간격으로 터진다.

알리페이 등은 중국 인민의 소비 생활을 고스란히 당국에 제공한다. 중국 당국은 신도시 광고를 할 때 '우리는 CCTV로 당신 아이의 등하교 장면을 모두 확인한다'며 이를 장점으로 소개한다. 개인정보와 인권에 관한 인식이 낮은 중국에서는 절대 다수 인민이 상시적인 감시를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 실정이다.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는 자유롭게 베이징시 거리를 다니지 못한다고 한다. 서슬 퍼런 공안이 베이징 시내를 물 샐 틈 없이 감시하며 사회적 약자들이 외국인 눈에 띄는 것을 차단한다. 이처럼 약자에 대한 인권 침해가 일상적으로 벌어지지만 이를 문제 삼는 언론은 외신을 제외하면 없다시피 하다. 시진핑 주석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두려워해야 하는 공포 정치가 펼쳐지는 상황에서 관영 언론들은 시 주석과 공산당을 비판하는 기사를 감히 쓸 수가 없다.

폐쇄적인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중국의 매력도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중국을 찾는 한국인이 갈수록 줄고 있다. 지난 1분기 인천과 베이징을 오가는 항공편을 이용한 전체 여객 수는 14만9165명으로 코로나19 확산 전인 2019년 1분기 당시 27만1568명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중국을 경유하는 여행객의 비자 면제 기간을 늘리는 등 자구책을 마련했지만 중국을 찾는 외국인 수는 아직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처럼 중국에 위험 요소가 있지만 앞으로도 한국의 강력한 경쟁국이 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국 정부와 기업 등이 위기의식을 갖고 국제적 흐름과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해야만 중국과의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을 수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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