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 만에 민수용도…난방비 폭탄에 사전 대비
"우선 가스부터"…냉방비 우려에 전기는 미뤄져
한전 "더이상 특단의 대책 없어…미루면 안 돼"
[세종=뉴시스]이승주 기자 = 가스요금이 상업용과 도시가스발전용은 물론 각 가정에서 쓰는 민수용까지 모두 올랐다. 지난해 5월 인상한 뒤 1년여 만이다. 가스 수요가 많은 겨울이 오기 전 인상한 뒤 미리 '요금폭탄' 우려에 대비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다만 전기요금은 동결했다. 가스요금과 동시에 올리면 서민 부담이 커질 것을 우려해 인상을 유보한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한국전력 누적 적자가 42조원을 넘어선 만큼 더이상 미루면 회사채 발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6일 가스공사에 따르면 다음달 1일 기준 도시가스 주택용 도매요금을 메가줄(MJ)당 1.41원 인상된다. 일반용 도매요금 인상은 MJ당 1.3원이다. 서울시 4인 가구 기준 월 가스요금이 약 3770원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가스공사는 지난 1일 상업용과 도시가스발전용의 가스요금을 인상했다. 업무난방용 가스요금은 MJ당 21.1676원에서 21.7381원으로 늘었고, 산업용 가스요금은 하절기 기준 MJ당 18.6305원에서 19.201원으로 인상됐다. 도시가스발전용 가스요금도 원료비가 열병합용 기준 MJ당 17.6042원에서 18.1747원으로 오르면서 약간 늘었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가 기획재정부와 요금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민수용은 논의를 끝내지 못해, 결국 동결한 바 있다.
민수용 도매요금은 지난해 5월 인상된 이후 이달까지 1년 넘게 동결됐다. 이에 지난 1분기 기준 민수용 도시가스 미수금이 역대 최대치인 14조1997억원으로 불어났다. 이를 떠안은 가스공사는 결국 지난해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D(미흡)를 받았다. 이대로는 공사 민수용 미수금이 연말께 14조원까지 불어날 것이란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오자, 서둘러 인상을 결정한 것으로 에상된다.
앞서 최연혜 가스공사 사장은 "현재 하루 평균 이자가 47억원에 달하는 만큼 가스요금 인상이 시급하다"며 "우리 직원 1년 인건비가 복리후생을 합쳐도 4000억원이고, 전 직원이 30년을 무임금으로 일해도 12조원"이라며 "(미수금 해소가) 자구노력 만으로 풀 수 없는 문제"라고 호소했다.
무엇보다 인상해야 한다면 난방비 수요가 늘어나는 겨울철 전에 해야 한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가스요금 인상 뒤 대책을 세우지 못한 상태에서 겨울철을 맞은 서민들과 소상공인 등이 '요금 폭탄'으로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이에 겨울철 전에 인상한 뒤 난방 사용이 증가하기 전 대비책을 세우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가스공사는 '요금 폭탄' 우려가 재현되지 않도록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을 확대할 방침이다. 사회복지시설과 저소득 가구를 대상으로 시행한 '열효율 개선사업' 대상자도 적극 발굴할 계획이다. 이는 노후 건물의 보일러와 단열재, 창호를 교체하는 사업이다.
공사는 지원 대상을 내년부터 오는 2027년까지 2350개로 10배 확대할 방침이다. 이번 사업 확대로 취약층 난방비가 절감될 것으로 기대했다. 동절기인 10~3월에 취약층 난방비는 가구 당 약 10% 절감될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 가스요금 인상으로 가스공사는 한숨 돌리게 됐지만, 문제는 한국전력이다. 한전은 가스공사보다 적자가 더 심각하다. 그럼에도 이번에 인상을 유보한 배경은 서민 부담을 우려한 것으로 예상된다. 여름철 전력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가스요금과 함께 올리면, 최근 조금씩 안정세를 찾고 있는 물가가 다시 오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게다가 한전이 꾸준히 추진한 재무구조 개선 노력으로 적자가 다소 해소된 데다, 당분간 국제유가 등도 크게 오르지 않을 것이란 판단도 반영됐다.
산업부에서 에너지 분야를 총괄하는 최남호 2차관은 "국제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은 석유가격 만큼 내려가지 않아, 가스공사는 아직도 근본적인 적자구조를 탈피 못했다"며 "반면 한전은 분기별 흑자로 전환됐고, 국제 유가도 어느 정도 안정세를 찾는 중"이라고 말한 바 있다. 상대적으로 더 시급한 가스요금부터 인상하고 전기요금은 그 이후에 검토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다만 한전의 흑자 전환은 분기 기준일 뿐 이미 누적 기준 적자가 40조원을 넘어선 상태다. 한달 이자로만 100억원 넘게 내고 있어, 송전선로 등 필요한 시설 투자에 타격이 생길 수 있다. 연말께 회사채 발행까지 어려워질 수 있어 더 이상 인상을 미루면 안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김동철 한전 사장은 "지난 2년 7조9000억원 규모의 재정건전화를 추진하고 임금반납과 희망퇴직도 이행 중이다. 지난해 말에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자회사 중간배당까지 썼다"며 "더 이상 (요금 인상을 제외하고) 특단의 대책이 남아있지 않다"고 우려했다.
이어 "폭증하는 전력수요에 대비해 전력망 투자와 정전고장 예방에 필요한 전력설비에 재원조달도 막막한 상황"이라며 "이대로 적자가 쌓이면 한전은 물론 전력산업을 지탱하는 협력업체와 에너지 혁신기업 생태계의 동반 부실이 우려된다. 국가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