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아바타' 꼬리표 떼며 보수 입지 굳혀
공천 물갈이 실패에 '삐걱'…원톱 한계론까지
"절반의 성공…외연 확대 실패, 찻잔 속 태풍"
"한동훈이라서 이 정도 버틴 것 아닌가" 평가도
[서울=뉴시스] 이승재 하지현 김경록 이현주 수습 기자 = 취임 100일을 맞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당 안팎의 평가는 엇갈린다. 여당 사령탑에 오른 73년생 젊은 비정치인에게 거는 기대가 그만큼 컸던 탓이다. 특히, 공천 과정에서 기존 '영남당'의 틀을 깨는 강도 높은 물갈이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많다. 4·10 총선에서 한 위원장 '원보이스'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말도 나온다.
반면 우려했던 수직적 당정관계에서는 일부 성과를 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논란 국면에서 대통령실과 다른 목소리를 내며 사퇴 요구까지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자리를 지켜냈기 때문이다. 총선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과 다른 노선을 걸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인 거다. 한 위원장 행보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조만간 받게 될 첫 성적표에 그의 정치 운명이 달렸다.
한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6일 총선을 지휘할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공식 임명됐다.
당시 당내에는 걱정과 기대가 공존했다. 총선을 100일가량 남겨둔 상황에서 여론 지형이 여당에 불리했던 탓이다. 대통령 지지율은 30%대에 머물렀고, 각종 여론조사도 '정권 심판론'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였다. 실제로 한 위원장은 당시 상황을 '9회 말 2아웃'에 빗대기도 했다.
이를 뒤집고자 전면에 내세운 게 '운동권 세대교체론'이다. 나아가 비대위원들을 20대와 40대 위주로 배치하면서 젊고 참신하게 새판을 짜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첫 시험대는 김건희 여사 명품백 논란이었다. 1월 중순께 '갈등 촉발자' 김경율 비대위원을 중심으로 김 여사의 사과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다. 이후 대통령실은 비대위원장직 사퇴를 요구했고, 한 위원장은 이를 거절했다.
이 과정에서 윤·한 갈등이 확산됐다. '김 여사 리스크'와 관련된 한 위원장의 발언은 윤 대통령과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이라는 해석까지 붙기 시작했다.
이러한 갈등이 정면 충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충남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함께 살피면서 화해 무드를 조성했다. 이후 함께 대통령 전용열차를 타고 서울로 복귀하면서 갈등은 봉합 수순으로 넘어갔다.
결과적으로 윤·한 갈등은 한 위원장 입장에서 남는 장사였다. '윤석열 아바타' 꼬리표 떼기에 일정 부분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각종 여론조사에서 긍정 평가가 치솟기 시작했다. 이재명 대표의 대항마로 여권 차기 대선 주자의 입지도 굳혀갔다.
한 비윤계 재선 의원은 통화에서 "당정 관계에서 당의 역할을 부각시키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준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어려운 상황에서 성과를 낸 것"이라고 전했다.
공천 국면도 야당과 비교해서는 비교적 큰 내홍 없이 넘어갔다. 하지만 이 조용한 공천이 결국에는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시스템 공천을 내세우기는 했지만, 현역 교체율은 35%로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3선 이상 중진 32명 가운데 공천을 받지 못한 의원은 7명뿐이다.
비대위가 들어서기 전 '인요한 혁신위원회'가 활동할 시기만 해도 영남·중진 의원을 향한 강한 희생 요구가 있었다. 공천 과정에서 큰 폭의 물갈이가 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뚜껑을 열고 보니 친윤계 대부분이 살아남은 '무감동 공천'만 남았다.
일각에서는 쌍특검법(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대장동 50억 클럽) 재표결 '이탈표'를 우려해 컷오프(공천 배제) 시점이 뒤로 밀렸고, 이 과정에서 원하는 수준의 물갈이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한 초선 의원은 "출발은 좋았지만 공천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러한 분위기는 당 지지율로 이어졌고, '수도권 위기론'이 재차 불거졌다. 여기에 이종섭 주호주 대사와 황상무 전 수석 논란 등 용산발 리스크가 더해지면서 '정권 심판론'은 더욱 부각됐다. 조국혁신당은 돌풍을 일으켰고 '범야권 200석론'까지 제기됐다.
지난달 말 총선 공식 선거운동 전후로는 한동훈 원톱 한계론까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책임론이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선대위 관계자는 "남은 기간 열심히 해야겠지만 상황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게 딱히 있지는 않다"며 "좋은 성적표를 받지 못하면 한 위원장의 선택지도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다른 비윤계 초선 의원은 "사령관이 얼마 전부터 대통령에게 쓴소리한 것을 싹 거두고 총선 패배의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며 "이길 생각보다는 전당대회를 준비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비판했다.
정치평론가들도 한 위원장의 100일에 대해서는 엇갈린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절반의 성공"이라며 "보수 진영 내에서 인지도와 입지를 굳히는 데는 성공했지만 외연 확대는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정권 심판론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 중도 표심을 확 얻을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 않나. 찻잔 속 태풍인 것"이라고 부연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정당을 바꿔 달라는 요구에 부응하고자 한 위원장이 왔다고 본다면 지난 100일은 기대한 만큼 성공적이지 못했다"며 "당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21대 국회의원 선거와 (인물이) 별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야당은 윤석열 심판론을 말할 수 있지만, 집권당은 그러면 안 된다"며 "집권당이 이재명과 조국 심판을 내세워 정권 심판을 물타기 하려는 전략은 자충수"라고 꼬집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나름대로 잘했다. 촌철살인 발언으로 정치 감각도 충분히 보여줬고 정치적 판단도 뛰어났다"며 "그래도 한동훈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버티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