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에 명분 얻어…배당·자사주에 이사 선임까지
[서울=뉴시스]우연수 기자 = 행동주의 펀드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정기 주주총회 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찻잔 속 태풍'에 그쳤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정부의 '밸류업' 정책으로 행동주의가 더 힘을 받을 수 있다는 환경이 조성됐단 분석이 나온다. 다만 단기 이익만 추구하는 식의 주주환원 확대나 과도한 경영 개입이 기업의 장기 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 태광산업, JB금융지주 등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행동주의 펀드의 타깃이 됐다.
영국계 자산운용사인 시티오브런던 등 5개 행동주의 펀드 연합은 삼성물산에 5000억원 자사주 매입, 보통주 4500원, 우선주 4550원씩 배당을 요구하는 주주 제안을 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태광산업에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임을 요구했으며, 얼라인파트너스는 JB금융지주에 신규 사회이사 선임 및 비상임이사 증원을 제안했다.
행동주의 펀드는 적은 지분율로 기업에 사장 선임, 지배구조, 배당·자사주 소각 등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은 소액주주뿐 아니라 국민연금, 그리고 주인없는 기업의 최대주주에게까지 손을 내밀어 주총 표대결을 준비하고 잇다.
찻잔 속 태풍에 그쳤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행동주의 펀드들이 주총 판에서 보다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부의 '밸류업' 정책과 시장의 주주 환원 확대 요구 등에 명분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상장사들이 자발적으로 기업 가치를 제고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고안하고 있다. 주주 환원 확대, 주주와의 소통 강화 등 밸류업정책의 취지는 행동주의 펀드가 요구하는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업들도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를 무시할 수만은 없어진 상황이다. 기업 가치 제고 노력 등에 시장 관심이 높아진데다 소유 분산 기업의 최대주주, 국민연금까지 주주 환원 확대나 건전한 지배구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KT&G 주주총회에서 고배를 마신 플래쉬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FCP)의 경우 올해는 KT&G 경영진 견제에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앞서 FCP는 집중투표제(다수의 이사직에 대해 주주가 그 자릿수만큼 복수의 투표권을 특정 이사에게 집중해 행사할 수 있는 제도)를 관철시켰다. 또 KT&G가 올해 주총 때 거버넌스 개선 안건과 주주 환원 확대 안건을 대거 상정하기로 한 것도 지난해부터 이어진 행동주의 펀드 영향이 없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대주주 기업은행이 FCP와 문제의식을 같이 하고 있는 점도 유리한 대목이다. FCP는 사장 후보자를 선정하는 지배구조위원회와 사장후보추천위원회가 모두 백복인 사장 재임 시절 선임된 사외이사로 100% 채워졌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는데, 기업은행도 이번 주총에서 사외이사를 추천한다. FCP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다만 행동주의 펀드의 지나친 요구가 기업 경영활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도 여전한다.
자사주 100%를 소각하라는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의 요구와 달리 금호석유화학은 향후 3년 간 자사주 50%를 분할 소각하겠다고 밝혔다. 금호석유화학은 "나머지 50% 자기주식은 석유화학 산업의 불황기에 대비하기 위해 보유해야 한다"며 "자본조달의 여러 선택지 확보는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기업가치에 더욱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경영권 분쟁으로 주가가 급변동하는 경우에는 주주 피해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행동주의 펀드가 타깃으로 하는 종목의 주가가 단기 급등한 뒤 조정받는 일이 반복되면서다. 또 기업의 장기 성장성 등은 뒷전이고 단기 주가 차익만 챙기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팽배하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업에 감시 기능을 핟고 소액주주 의견을 반영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무리한 주주 환원만 요구하는 사례는 오히려 기업 가치 제고에 좋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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