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지상전 앞서 주민에 "남부 이동" 통보
주민들, 이동 거부…1948년 강제 이주 트라우마
"살던 곳 돌아갈 권리 보호 등 인도적 방법 필요"
[서울=뉴시스] 이혜원 기자 =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 지상전에 앞서 민간인들에게 가자 지구 남부로 이동하라고 한 가운데,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죽어도 집에서 죽겠다"며 피란을 거부하고 있다.
23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가자 지구 북부 주민 수십만명이 '실향 트라우마'로 인해 이스라엘군 공습에도 떠나길 거부하며 집, 병원, 교회 등에서 대피 중이다.
실향 트라우마는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인 정체성 핵심이다. 가자 지구 주민 210만명 중 170만명 이상이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당시 현재 이스라엘 영토인 고향에서 쫓겨나 피난 온 난민 후손이다.
전쟁으로 72만명 이상이 난민이 됐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이 사건을 '재앙'(Nakba)으로 부른다.
당시 전쟁으로 현재 이스라엘 남부 영토인 고향에서 가자 지구 북부로 강제 이주된 한 가족은 "죽으면 죽는 거다. 더는 상관없다"며 피란을 거부하고 있다. 이들은 이곳을 떠나면 식량이나 거처를 찾지 못하거나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걱정한다.
이스라엘은 지난 7일 하마스의 '알아크사 홍수' 기습 작전 이후 대대적인 보복에 나섰다. 보름 넘게 가자 지구를 공습하고 있으며, 지상전을 위해 예비군을 역대 최대 규모인 약 36만명 소집했다.
지상군 투입에 앞서 이스라엘 군은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가자 지구 남부로 이동하라고 통보했지만, 주민들은 남부로 떠나면 이집트나 다른 나라로 강제 이주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가자 지구 남부도 폭격으로부터 안전한 건 아니다. 이스라엘 군은 가자 지구 남부도 공습 중이다.
이스라엘은 남부에 민간인을 위한 '안전지대'를 만들고 전쟁이 끝난 뒤 가자 지구를 점령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주민들은 믿지 못 한다는 입장이다.
가자시티 주민인 이야드 쇼바키(45)는 WSJ에 "1948년 이주는 이렇게 시작됐다"며 "그때 사람들은 '그래, 1~2주 후에 다시 돌아올 거야'라고 말했지만 결코 그렇게 못 했다"고 했다.
하마스가 운영하는 가자 지구 보건부는 이스라엘 공습으로 가자 지구에서 4600명 이상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가자 지구 주택부 자료를 인용한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가자 지구 전체 주택 중 42%가 파괴됐거나 파손됐다.
주민들은 가자 지구 봉쇄로 전기나 수도가 끊긴 채 생활하고 있다. 통신망은 열악하고 의료 시스템은 붕괴됐다.
컬럼비아 대학의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중동 역사학자 라시드 칼리디는 "(1948년 강제 이주에 이은) 2차 이주는 가자 지구 안에서든 밖으로든 저항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국제 인권감시기구 휴먼라이츠워치의 난민 및 이주민 권리 연구원 나디아 하드만은 "보다 인도적인 방법이 필요하다"며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갈 권리를 보호하면서 적절한 법적 지위와 보호를 받을 경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