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100달러 돌파 눈앞에…치솟는 전기료·기름값
높은 체감물가에 위축되는 소비심리…인플레 우려 커져
[세종=뉴시스]손차민 기자 = 국제유가가 연일 최고가를 갈아치우며 물가를 끌어올리는 가운데 내수 경제에 경고등이 켜졌다. 특히 전기요금·휘발유 등 민생과 밀접한 품목이 가격 상승 압박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브렌트유는 배럴당 93.30달러, 두바이유는 93.23달러,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역시 89.63달러를 기록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전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로 치솟았던 국제유가는 지난해 7월 정점을 찍고 하락세에 들어선 바 있다. 소강상태였던 국제유가가 다시금 100달러 돌파를 목전에 둔 것이다.
들썩이는 유가에 고개 드는 물가
물가를 끌어올리는 건 공공요금이다. 지난달 전기·가스·수도요금은 1년 전보다 21.1%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가 기여도를 보면 전기·가스·수도요금이 물가에 0.71%포인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드러났다. 소비자물가 오름폭인 3.4% 중 0.71%포인트를 공공요금이 끌어올린 셈이다.
물가 밀어 올리는 전기요금…상승 압력도 커져
이에 부담이 커진 건 한국전력공사다. 한전이 최근 9개 분기 연속 쌓은 누적 적자는 47조원을 넘어섰다. 한전 적자의 배경에는 발전사에 전기를 비싸게 사 와서 싸게 파는 '역마진' 구조가 있다. 국제유가 오름세를 전기요금에 반영하지 못한 부담을 한전 적자로 메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유가가 오르자,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필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통상 국제유가의 오름세는 최소 3개월에서 최대 반년의 시차를 두고 전력 도매가격을 밀어 올린다. 김동철 신임 한전 사장은 지난 20일 열린 취임식에서 "최근 국제유가와 환율이 다시 급등하는 상황에서 전기요금 정상화는 더더욱 반드시 필요하다"며 요금 인상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유류세 인하 조치로 버티지만…급등하는 '기름값'
휘발유·경유 가격이 급등할 조짐이 나타나자 정부는 다음달 말까지인 유류세 한시적 인하 조치에 대해 연장할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유류세율은 휘발유 25%, 경유 37% 인하가 적용 중이다. 휘발유 유류세는 ℓ당 615원으로, 인하 전 탄력세율인 ℓ당 820원보다 205원 낮다.
국제유가가 상승하는 가운데 유류세 인하 조치가 종료될 경우 휘발유 가격이 2000원을 훌쩍 넘길 가능성도 나온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 조치를 통해 간신히 기름값 오름세를 막고 있지만, 세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높아진 체감물가에 소비심리 위축…물가 상승은 '이제부터'
국민 생활과 밀접한 품목 가격이 급등하며 체감물가 상승률이 실질물가 오름세보다 더 크게 나타난 것이다. 이에 소비심리는 빠르게 위축하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는 전달보다 0.1포인트 내리며 6개월 만에 하락으로 전환했다.
물가에 반영되는 시차를 고려하면 인플레이션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소비자물가의 선행지표인 생산자물가는 국제유가 상승의 영향을 받아 들썩이고 있다. 지난달 생산자물가는 전월보다 0.9% 올랐는데, 두달 연속 상승한 것이다. 생산자물가 오름세에 영향을 준 건 석탄 및 석유제품이 11.3%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고유가에 전 세계 물가가 요동치며 수입물가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지난달 수입물가는 전월 대비 4.4% 올랐다. 지난해 3월 7.6% 오른 이후 17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수입물가가 오르자 무역적자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이에 생산자물가에 수입 물가를 결합한 국내공급자물가는 전월 대비 1.4% 상승했다. 국제유가 추이가 원재료(5.1%)부터 중간재(0.9%), 최종재(1.2%)에 모두 영향을 미친 탓이다.
정부도 경기 둔화를 우려하는 모양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번달 경제동향에서 대내외 경기 불확실성이 높아진 요인으로 국제유가 상승을 꼽았다. KDI는 "국제유가 상승으로 인해 소비자물가 상승세가 확대되면서 경기 부진이 완화되는 흐름을 일부 제약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