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가야고분군' 600년을 이어온 가야 고대문명의 역사를 간직한 고분군 7개로 이뤄진 연속 유산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17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제45차 회의를 열어 가야 고분군의 세계유산목록 등재를 최종 결정했다. 위원회는 가야 고분군에 대해 "주변국과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독특한 체계를 유지하며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인정된다"고 평가했다.
가야고분군은 1~6세기 중엽 한반도 남부에 존재한 고대 문명 가야의 역사를 담은 ▲전북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경남 김해 대성동 고분군▲경남 함안 말이산 고분군▲경남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경남 고성 송학동 고분군▲경남 합천 옥전 고분군으로 이뤄져 있다.
한반도에는 가야 관련 고분군 780여 개가 분포하고 있다. 중앙집권화된 국가체계를 이루지 않고 공존했던 가야의 각 정치체는 지역마다 크고 작은 고분군을 조성했다. 고분군은 기원전후부터 대가야가 멸망하는 562년까지 지속적으로 조성됐다.
이들 고분군에 축조된 고분은 수십 만기에 달한다. 가야고분군은 사라진 가야문명을 복원할 수 있는 대표 유적으로 입지, 경관, 묘제 변화, 부장유물을 통해 가야 사회 구조와 변천과정을 보여준다.
가야고분군 형성기인 1~2세기에 조성된 고분 군집과 부장유물은 가야의 성립 모습을 보여준다. 지배층과 피지배층 고분은 입지가 구분되지 않고 혼재됐다. 지배층 고분은 목관 하부에 유물을 부장하는 별도 공간이 설치되기도 했다.
3~4세기는 왕과 지배층 고분으로 이뤄진 중심고분군이 출현한 시기다. 왕의 묘는 구릉 정상부 능선을 따라 줄지어 축조된 특징이 있다.
목곽묘 안에는 교역으로 수입해온 물건 등 많은 유물들이 부장됐다. 이는 피장자의 부를 과시하거나 사후 안락을 염원하는 사상이 반영됐다. 고분 입지, 규모, 부장유물에서 가야사회 계층구조를 엿볼 수 있다. 이 시기 대표 고분군은 김해 대성동고분군이다.
5세기는 가야 각지에서 정치체 성장과 중심고분군 확산이 이뤄진 시기다. 특히 고분군 축조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흙과 돌을 활용해 봉분을 높게 쌓아올린 고총이 등장했다. 왕과 상위지배층 무덤인 고총은 능선 정상부를 따라 줄지어 축조됐다.
왕과 지배층 고분에는 장신구나 무기류 등 신분을 상징하는 고급 물품이 부장됐다. 순장자들을 각종 생활용품과 함께 묻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작은 무덤은 유물이 적고 순장자가 확인되지 않는다. 이 시기 고분 입지와 규모, 부장유물은 가야사회 계층분화가 가속화됐음을 알려 준다.
5세기 후반에는 고령 지산동고분군에 별도 왕릉 묘역이 조성됐다. 순장자기 40명 넘게 묻힌 고총도 등장했다. 왕릉급 고총 출현은 대가야가 가야의 주도세력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왕릉급 고총 축조와 묘역 분리 현상은 가야가 고대국가로 발전해가고 있던 증거라 할 수 있다.
6세기 중엽인 562년 가야는 고대국가로 성장하지 못한 채 대가야를 끝으로 신라에 의해 멸망했다.
가야 문명사를 보여주는 고분군이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한국은 문화 14건, 자연 2건 등 총 16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자연유산은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과 한국의 갯벌이 있다. 문화유산으로는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창덕궁, 화성, 경주역사유적지구,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 조선왕릉,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 남한산성, 백제역사 유적지구,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한국의 서원 등이 있다. 이번에 등재된 가야고분군은 문화유산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