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주요 국가통계 작성 및 활용실태' 중간 발표
비정규직 급증 통계 나오자 청와대 개입 정황
'병행조사 효과 최대 50만' 가이드라인 제시
[서울=뉴시스] 남빛나라 기자 = 15일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가 핵심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을 띄우기 위해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를 가공했다고 밝혔다. 통계를 낼 때 통상적이지 않은 가중값을 부여하는 등 일종의 꼼수를 써서 소득 격차를 축소하고 가계소득을 증가시켰다는 게 감사원 판단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소득을 분기별로 공표하는 가계동향조사 통계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변경됐다.
감사원은 통계청이 2018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 소득 5분위 배율(상위 20% 소득을 하위 20%로 나눈 값)을 낮출 수 있는 계산법을 골라 적용했다고 봤다. 소득 5분위 배율은 빈부 격차를 보여주는 지표로, 이 값이 클수록 소득분배 불평등 정도가 높다.
통계청은 2017년 2분기 가계동향조사 공표를 준비하던 중 2010년 이후 꾸준히 증가 추세이던 가계소득이 감소한다고 나타나자 전년 동기 대비 증가하도록 조정했다. 가계소득이 상대적으로 높은 '취업자가 있는 가구'의 소득에 '취업자가중값'이란 새 가중값을 추가로 곱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표본설계 담당부서가 가중값이 불안정하단 이유로 반대했지만 통계작성 부서가 "관여 말라"며 강행했다고 한다.
감사원은 그해 3분기, 4분기에도 비슷한 방법으로 통계 왜곡이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2018년 1분기 5분위 배율이 2003년 이후 최악인 6.01로 나오자 통계청은 2017년 2분기부터 임의 적용해온 취업자 가중값을 빼고 다시 계산해 5.95로 공표했다.
하향 조정한 이 수치를 두고도 최저임금 인상 및 소주성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셌다.
이에 소주성 주창자인 당시 홍장표 경제수석은 발표 당일 날인 5월24일 통계청에 "통계자료를 다 들고 들어오라"고 지시했다. 가지고 올 자료도 미리 보내라고 했다. 통계자료 제출에 앞서 거쳐야 하는 통계자료제공심의위원회의 승인은 이뤄지지 않았다.
홍 수석은 노동연구원 소속 연구원에게 자료를 따로 주고 '가구' 단위가 아닌 '개인' 근로소득 증감을 분석하라고 요청했다.
홍 수석은 이를 바탕으로 '개인 근로소득이 하위 10%를 제외하고 모두 증가했으며, 저임금 근로자의 증가율이 더 높단 점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개인 근로소득 불평등이 개선됐다'고 5월29일 가계소득동향 점검회의에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이는 연도별(2016~2018년) 증감률만 계산된 단순 비교로 내린 억지 결론에 가까웠다는 게 감사원 시각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석 달 후 신임 통계청장으로 임명된 강신욱 보건사회연구소(보사연) 연구실장이 이 논리를 만드는 데 관여했다.
보고를 받은 문 대통령은 이틀 후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최저임금으로 저임금 근로자 임금이 크게 늘었고, 이는 최저임금 증가의 긍정적 성과이고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말했다.
이 발언 근거를 두고 청와대와 통계청 설명이 엇갈리며 논란이 빚어졌다. 그러자 홍 수석은 황수경 통계청장에게 '노동연구원이란 국책연구기관이 통계청에서 자료를 받아 분석했다'고 사실과 다르게 설명하도록 지시했다. 통계청은 실제로 이 같은 내용의 보도자료를 기자단에 배포했다.
청와대 경제수석실은 2분기 조사 결과 공표 3일 전인 2018년 8월20일 통계청 관계자들을 불러 2분기 수치 역시 악화 추세란 점을 파악했다. 홍 수석이 경질되고 신임 경제수석으로 윤종원 전 기업은행장이 2달 전 임명된 상황이었다.
경제수석실은 보도자료에서 논쟁이 될 만한 문구를 삭제하라고 지시하는 등 관여했다.
통계청은 청와대가 원하는 방향으로 보도자료를 수정한 후 청와대에 다시 보고하고 황수경 청장에게는 수정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8월23일 그대로 발표했다.
사흘 뒤인 8월26일 문 대통령은 황 청장을 경질했다. 대통령의 통계청장 경질은 이례적이란 점에서, '정부 맞춤형 통계' 주문에 응하지 못한 황 청장이 대통령 눈 밖에 났다는 해석이 나왔다.
황 청장은 이임식에서 "통계가 정치적 도구가 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는 뼈 있는 말을 남겼다.
다만 감사원 관계자는 "(황 청장) 경질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따로 확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용분야에선 청와대가 황덕순 당시 일자리수석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급증 원인을 '병행조사 효과' 탓으로 몰아갔다고 봤다.
2019년 경제활동인구 조사에서 비정규직이 전년보다 86만7000명 급증했단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문 대통령 대선 공약인 '비정규직 제로(0)'와 전면 배치되는 흐름이었다.
병행조사는 고용예상기간을 묻는 질문을 추가하는 조사 방식이다. 이 질문을 받고 새삼 고용 기간에 대해 고민하게 된 응답자가 스스로를 '기간제 근로자'로 잘못 인식해 과거 포착되지 않은 기간제 근로자가 대폭 추가됐다는 게 이른바 '병행조사 효과'다.
일자리수석실은 기간제가 79만5000명 증가한 여파로 비정규직이 늘었다는 통계청 설명에 '통계결과 발표 시 어떤 방식으로든 병행조사 효과를 설명하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통계청은 검증을 거치지 않고 청와대에 병행효과 추정치가 23만2000명~36만8000명이라고 보고했고, 경제수석실은 "최소, 최대가 30만에서 50만이지요?"라며 원하는 숫자를 사실상 제시했다.
재차 비슷한 요구가 이어진 후 통계청은 청와대 지침에 맞춰 병행효과를 '35만명~50만명'으로 상향 조정해 발표했다. 보도자료에 "전년 대비 시 해석상 오해 소지가 있다"는 문구는 청와대를 거쳐 "전년 대비 단순비교 불가"란 더 단호한 표현으로 바뀌었다.
감사원은 "병행효과가 실제로 존재했는지 알려면 응답자와 면접을 통해 자신을 비기간제로 오인했는지 확인해야 하지만 이런 검토가 부재했다"고 지적했다.
최달영 감사원 제1사무차장은 이날 감사원에서 '주요 국가통계 작성 및 활용실태' 중간 발표 브리핑을 열고 범죄혐의가 파악된 전 정부 관계자 22명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정책실장 4명(장하성·김수현·김상조·이호승) 전부와 홍장표 전 경제수석, 황덕순 전 일자리수석,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강신욱 전 통계청장 등이 대상자에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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