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필요하면 유엔 대북 제재 논의"
상임이사국 러시아, 제재 어기면 '자기부정'
상임이사국 자격론 거세질 듯…유엔 형해화 우려
[서울=뉴시스] 남빛나라 기자 = 북한과 러시아 간 정상회담이 임박한 가운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 제재가 논의될지 주목된다. 상임이사국 중 하나인 러시아가 북한과의 무기 거래를 통해 유엔 제재를 정면으로 거스르면 국제질서를 흔드는 행위가 돼 파장이 작지 않을 전망이다.
러시아 매체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12일(현지시간) "필요하다면 북한과 유엔 대북 제제에 관해 논의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기존 제재를 완전히 무시하겠다는 의미라고 단언할 순 없지만, 안보리 제재에 반발해온 북한과 손 잡고 대북 제재 시스템에서 이탈하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안보리는 북한과의 무기거래와 군사 기술 지원을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상임이사국이 안보리 제재를 어기는 '자기부정'을 하면서까지 북한과 무기거래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국제사회의 우군 없이 2년째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러시아는 북한이 가진 탄약 등 재래식 무기가 절실하다.
러시아는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과 더불어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다. 안보리에서 안건이 통과되려면 상임이사국 5개국을 포함한 9개국이 찬성해야 하며 상임이사국 중 한 나라도 반대하면 안된다.
안보리가 2006년부터 2017년까지 모두 9차례의 결의안을 채택해 현재의 대북 제재 틀을 만드는 데는 러시아의 동의가 있었단 의미다.
안보리는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직후 대북 제재 결의를 채택하고 제재 이행을 감시할 대북제재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이후에도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6차까지 시행하며 도발을 지속했다.
2017년 12월 안보리는 ICIBM 화성-15형 첫 시험발사에 대응해 대북제재 결의 2397호를 채택했다. 이를 통해 ▲정유제품 공급량 감축 ▲원유 공급량 연간 400만배럴 상한선 설정 ▲해외파견 북한 노동자 귀환 등 강수를 뒀다.
북한이 또 도발하면 대북 유류 공급을 제한하는 추가 조치를 하도록 하는 '트리거'(trigger·방아쇠) 조항도 마련했다.
지난해 5월 안보리는 북한의 ICBM 시험발사 이후 이 트리거 조항을 근거로 추가 제재 결의안을 표결에 부쳤지만 중러 반대로 무산됐다.
중러는 2021년 10월 안보리에 대북제재 완화 결의안을 제출했다. 이후 줄곧 추가 대북 제재에 거부 입장을 고수해 6년째 제재는커녕 유엔 차원의 공동성명조차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상임이사국인 중러가 안보리를 무력화했다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안보리에서 북한 대변인을 자처하는 것과, 북한과 무기거래를 하고 북한의 대북 제재 완화 시도에 적극 공조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러시아가 상임이사국 자격이 있냐는 국제사회 비난 여론이 거세지면서 국제 평화·안보 질서를 규정하는 안보리의 존립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북중러를 제외한 한미일, 유럽 국가들은 연쇄적으로 대북 독자제재에 나서는 방식으로 뭉칠 것으로 예상된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국제법에 준하는 결의안을 좌지우지 하는 위치와 권한을 위임받았다"며 "그런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안보리를 통과한 결의안을 대놓고 무력화 한다면 상임이사국으로서의 존재 이유가 없어져 심각한 도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일은 이미 독자 혹은 유엔을 통한 다자 제재를 통해 북한과의 사실상 거의 모든 거래를 금지하고 있단 점에서 독자제재 실효성은 낮다. 다만 유럽도 독자제재에 동참하면 북한은 한미일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유럽국가가 합쳐진 거대한 안보협력 체제에 맞서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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