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배속 기능' 4년째 미도입…주요 OTT와는 다른 행보
스낵 컬처에 익숙한 청년 세대 수요 반영 못했다는 지적 있어
창작자는 반대…'무빙' 강풀 "디즈니+는 배속 기능 없어 좋아"
[서울=뉴시스]윤정민 기자 = #평소에 넷플릭스 콘텐츠를 시청하던 직장인 김모(29)씨. 드라마 '무빙'을 재밌게 봤다는 친구 권유로 디즈니플러스에 가입했다. 김씨가 볼 수 있는 '무빙' 회차는 총 13회분. 김씨는 약 9시간에 달하는 분량을 다 보기에 벅차다는 생각에 배속 기능을 찾았다. 하지만 김씨는 디즈니플러스 플랫폼 어디서도 배속 기능을 찾을 수 없었다. 디즈니플러스가 애초에 배속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상 콘텐츠 정속 시청에 익숙하지 않던 김씨는 결국 디즈니플러스 배속 기능을 비공식적으로 지원하는 크롬 확장 프로그램 설치까지 나서야 했다.
숏폼 콘텐츠에 익숙한 청년 세대는 빨리 보기를 선호한다. 인터넷 강의도 빠르게 시청하고 유튜브 영상도 광고 시청 등 불필요한 부분을 빠르게 넘긴다. 언제 어디서나 짧은 시간에 콘텐츠를 쉽게 즐길 수 있는 '자투리 문화(스낵 컬처)'가 하나의 문화 소비 트렌드인 만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계에서도 배속 기능이 플랫폼 주요 기능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1일 기준 디즈니플러스,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왓챠, 쿠팡플레이 등 국내에 서비스 중인 주요 OTT 가운데 배속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 OTT는 디즈니플러스가 유일하다.
"1.5배 빠르게 보면 창작자 의도 공감 불가" vs "다양한 소비 패턴 보장해야"
창작자 입장에서는 전반적으로 배속 기능을 반기지 않는 편이다. 빠른 속도로 시청하면 창작자가 의도했던 콘텐츠 작품성을 그대로 전달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넷플릭스가 지난 2019년 배속 기능을 테스트한다고 밝혔을 때 일부 할리우드 영화 감독들에게 비판받기도 했다.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 '인크레터블' 등 영화를 만든 브래드 버드 감독은 트위터를 통해 "이미 피를 흘리고 있는 영화계에 또다시 칼을 댄 것"이라고 말했다. 앤트맨 시리즈에 참여한 페이튼 리드 감독도 트위터에서 "(배속 기능 도입은) 끔찍한 생각이다. 나와 내가 아는 모든 감독은 이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드라마 '무빙'과 원작 웹툰을 집필했던 강풀 작가도 배속 기능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 작가는 지난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저는 디즈니+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게, 다른 OTT나 유튜브에서 1.5배속이 되는 게 싫다. 디즈니는 안 된다"며 "집에서 OTT 8개를 구독해서 다 본다. 가끔 1.5배속으로 보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일부 OTT 이용자도 창작자 입장에 동의하는 의견을 냈다.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를 구독하는 한모(26)씨는 "대사 하나하나에 감정이 실려 있고 어떤 배경에는 작가 의도가 담겨있는 만큼 영화, 드라마를 정속도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디즈니플러스 배속 기능 미탑재에 불만을 지닌 이용자도 적지 않다. 넷플릭스, 티빙 콘텐츠를 주로 1.25~1.5배로 설정해 놓고 시청한다는 최모(29)씨는 "특별히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다양한 소비 패턴을 보장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최근 디즈니플러스를 구독했다는 최씨는 결국 '무빙'을 빨리 보기 위해 한 개발자가 만든 크롬 확장프로그램을 이용했다고 전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디즈니플러스가 고객센터 등에서 일부 구독자로부터 분명 배속 기능 탑재를 개선사항으로 요구받았을 것이라며 의도적으로 기술을 도입하지 않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콘텐츠 본연의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뜻이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측은 배속 기능을 도입하지 않은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가운데 향후 도입 계획도 현재로서는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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