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원전, 우리가 잘 짓는데 해체 경험도"…건설부터 해체까지

기사등록 2023/07/16 11:00:00

최종수정 2023/07/20 15:49:45

고리 1호기, 원전 해체 위한 사전 준비 중

계속 운전 앞둔 고리 2호기…운영허가 만료

새울3·4호기 건설 막바지…원전 수출 '순항'


[부산=뉴시스]고리 2호기 주제어실에서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 관계자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사진=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부산=뉴시스]고리 2호기 주제어실에서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 관계자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사진=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부산·울산=뉴시스]손차민 기자 =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우리나라가 원전은 정말 잘 짓습니다. 이제 짓는 것뿐 아니라 고리 1호기로 해체까지 직접 국내에서 할 수 있게 되면서 경험이 더 늘어나게 되는 거죠."

윤석열 정부가 원전 수출 재개를 위해 발로 뛰는 가운데, 원전 건설부터 재가동, 해체까지 전 주기 기술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지난 12일부터 이틀간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원자력본부와 울산 울주군 새울원자력본부를 찾아 원전 건설-운영-해체 현장을 살펴봤다. 첫날 고리원자력본부에서 만난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는 우리나라 첫 원전인 고리 발전소에 대한 자부심을 나타내며 이같이 말했다.

원전으로 들어가기 전 방사선 안전 교육을 받았다. 원전이 1급 국가보안시설인 만큼 가지고 왔던 노트북, 스마트폰 등은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신분증 제출, 안전화 착화, 견학 카드 작성 등의 사전 준비 절차도 복잡했다. 원전에 들어가는 기자 개인의 안전과 함께 원전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한 보안도 꼼꼼하게 살피고 나서야 비로소 들어설 수 있었다.

터빈 멈춰선 고리 1호기…'원전 해체' 위한 영구정지

고리 1호기로 향하는 도중 대형 크레인 높은 곳에 적힌 '대한민국 원전의 자존심 고리 제1발전소'란 문구가 눈에 띄었다. 고리 1발전소 어디서든 보일만 한 이 문구에 가장 먼저 이곳을 찾은 이유가 담겨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원전인 고리 1호기는 1977년 6월19일 최초 임계에 도달한 이후, 2007년 12월 계속 운전 허가를 받아 10년간 더 운행되다 2017년 6월18일 운영 40년 만에 영구정지됐다.

원전은 원자로 건물, 터빈건물, 컨트롤 타워인 주제어실, 그리고 보조건물로 이뤄져 있다. 보통 '원전' 하면 떠오르는 콘크리트로 된 둥근 돔 건물이 원자로 건물이다. 원자로 건물 옆에는 터빈 건물이 바로 붙어있다. 터빈 건물은 원자로에서 발생한 증기로 터빈을 회전시켜 전기를 생산하는 곳이다.

고리 1호기 터빈건물로 들어서니 땀이 쏟아졌다. 비가 오며 높아진 습도 탓에 에어컨이 없는 내부는 후덥지근했다.

연신 부채질하는 기자의 모습에 고리원자력본부 관계자는 "터빈이 돌고 있지 않아서 이건 더운 것도 아니다. 이전에 가동될 때는 말도 못 하게 뜨겁고 시끄러워서 터빈건물에서 이렇게 대화를 할 수조차 없었다"고 농담을 건넸다.

현재 고리 1호기는 2021년 5월14일 원전 해체를 위한 최종해체계획서(FDP)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하고 인허가 심사를 받는 중이다.

이미 해체를 위한 사전 작업이 진행된 터빈건물에는 원자로 시설에 대한 설명이 적힌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여느 박물관이나 홍보관 같은 분위기도 엿볼 수 있었는데, 작업 중인 직원이 보이지 않았던 이유가 컸다.

한수원 관계자는 "해체 승인이 나기까지 해체 작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은 '일시 멈춤' 상태"라고 설명했다.

고리 1호기 현장은 멈췄지만, 인허가 심사를 위한 물 밑 작업은 한창 진행 중이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서 계획서에 대한 상세 내용을 요구하면, 한수원은 이에 대해 보완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일각에서는 해체 인허가 심사가 오래 걸린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고리원자력본부 관계자는 "원전을 해체한 국내 사례가 없는 만큼 추진 속도에 대해 빠르다, 느리다라고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해체 승인이 결정되면 곧바로 해체에 돌입할 수 있도록 고리원자력본부는 사전 준비 중이다. 바로 옆에 고리 2호기가 붙어있는 만큼 고리 2호기의 안전 운영을 전제로 고리 1호기를 단독으로 '즉시 해체'할 계획이다.

즉시 해체를 통해 국내 기업들이 현장 경험과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 막 태동기에 들어선 글로벌 해체 시장을 빠르게 선점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또 즉시 해체는 해체 작업이 15년 정도로 소요 기간이 짧은 장점이 있다. 지연 해체는 원전의 방사능 수치가 자연적으로 감소할 때까지 기다려 해체하는 방식인데, 통상 60여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시 해체를 통해 부지 복원과 재활용이 더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관련법상 원전 해체는 부지 복원까지 포함한다. 원안위는 피폭되는 방사선량 한도가 연간 0.1mSv(밀리시버트) 이하면 브라운 필드 수준으로 복원됐다고 본다. 아직 해체 심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향후 어떤 시설이 들어설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고리 원전에서 평생을 일했다는 현장 직원들은 '어떤 것을 짓더라도 고리 원전의 역사적 의의가 담겨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부산=뉴시스]고리 1호기의 터빈룸에서 고리원자력본부 관계자에게 설명을 듣는 모습이다.(사진=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부산=뉴시스]고리 1호기의 터빈룸에서 고리원자력본부 관계자에게 설명을 듣는 모습이다.(사진=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운영허가 만료에 일시 멈춘 고리 2호기…'계속 운전' 속도

멈춰선 고리 1호기 터빈건물에는 작업자가 없었지만, 작업 중인 듯한 굉음은 들려왔다. 바로 옆 고리 2호기 터빈건물에서 나는 소리였다.

고리 2호기는 지난 4월8일 운영허가 기간이 만료되어 가동을 잠시 멈추고 계속 운전에 대한 절차를 진행 중이다.

계속 운전 준비로 분주한 고리 2호기 터빈건물을 지나 고리 2호기의 주제어실로 향했다. 원전을 사람으로 비유한다면 뇌에 해당하는 곳인 주제어실은 평상시 기준 4명이 근무를 하고 있다.

원전의 컨트롤타워인 만큼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곳이다. 실제로 고리 원전에서 평생을 근무했다는 모상영 제1발전소장 역시 일반인이 주제어실에 들어온 것을 처음 본다고 전했다. 주제어실에 일반인이 들어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고리 2호기가 가동을 중단한 이유가 크다.

지난해 4월 한수원은 주기적안전성평가보고서(PSR)를 제출하는 등 고리 2호기 계속 운전을 위한 절차를 추진해 왔다. 다만 통상적으로 계속 운전에 드는 기간(3~4년)을 고려했을 때, 중단 없이 재가동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골든 타임을 놓친 만큼 가동 중단은 불가피했다.

이날 주제어실 벽에는 원자력 출력과 발전기 출력이 써있는 장치가 있었다. 현재 정지 상태인 만큼 '원자력 출력 0%', '발전기 출력 0MW(메가와트)'라고 적혀있었다. 정상 운전 중일 때에는 '원자로 출력 100%', '발전기 출력 680㎿'가 표시되는데, 일반인이 보기는 어려운 장면이라고 한다.

분주하게 업무를 하는 근무자들 머리 위에는 수백개의 경보등이 있었는데, 흰색·주황색 경보등이 곳곳에 밝혀져 있었다. 경보등이 들어온 곳 그 아래에는 기기를 조작하지 못하도록 빨간 태그도 달려있었다. 원자로 가동은 멈췄지만, 사용후핵연료 냉각 기능 유지와 각종 기기 점검 등을 위한 정비 작업 중이라고 했다.

이어 고리 2호기의 사용후핵연료저장조로 이동했다. 원전을 들어설 때부터 안전화·안전모 등의 안전 장비를 갖춘 상태였지만, 여기서부터는 방사선 피폭으로부터 본격적인 보호가 필요하다.

방호 가운과 모자, 장갑, 양말을 갖추고 방사선을 측정하는 기기인 열형광선량계(TLD)와 자동선량계(ADR)를 하나씩 지참했다. 방사선이 감지될 경우 TLD에서 경고음이 곧바로 울린다.

꼼꼼하게 장비를 갖추니 피폭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왔다. 하지만 막상 눈앞에 있는 사용후핵연료저장조는 흡사 실내 낚시터 같았다. 가로 16.7m, 세로 7.9m, 높이 12.75m의 수조 안에 붕소가 섞인 물이 차 있었다. 이날 기준 붕소수의 온도는 29도라고 한다.

원자력 발전을 위해 농축한 우라늄을 튜브에 수백개씩 넣어 연료봉을 만든다. 이를 256개씩 묶은 게 바로 '연료다발'이다. 사용후핵연료저장조에 있는 격자 모양의 저장랙에는 이런 연료다발이 한개씩 꽂혀 있었다.

수조 안에는 고리 2호기가 지난 40년 동안 사용했던 869개의 연료다발이 한개씩 꽂혀 보관돼 있었다. 현재 포화율이 93.6%에 달하는 만큼 한수원은 격자 틀 간격을 줄일 계획이다. 격자 구조체의 구성 물질에 붕소를 넣어서 격자 간격을 줄인 조밀랙을 설치하면 사용후핵연료 저장량을 50% 정도 더 늘릴 수 있다.

1m 높이의 약해 보이는 울타리 하나로 수조와 분리되어 있어 저장조에 빠질 수 있다는 걱정도 들었다. 저장조 안에 사람이 빠질 경우에 관해 묻자 고리원자력본부 관계자는 "건져서 외부·내부 피폭 검사를 하게 된다"고 답했다. 오히려 안전모 등 이물질이 수조 안에 빠지는 걸 더 우려하는 모습에서 '사람에게는 안전한 곳'이란 점을 엿볼 수 있었다.

저장조 밖으로 나와 장비를 벗으며 확인한 주머니 속 ADR은 '0'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이후 소지품에 대한 방사능 측정을 하고, 기기에 들어가 전신에 대한 방사능 오염 검사를 했다. '깨끗합니다'란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려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부산=뉴시스]고리2호기 주제어실 모습이다. (사진=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부산=뉴시스]고리2호기 주제어실 모습이다. (사진=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한국형 수출 노형 'APR1400' 새울3·4호기 88% 건설 완료

오랜 역사를 지닌 고리 원전에 이어 가장 젊은 원전을 보러 지난 13일 새울원자력본부로 향했다. 새울 원전을 한눈에 보기 위해 새울 전망대에 올랐다.

고리원자력본부와는 울타리를 맞대고 있는 새울 원전은 한국형 원전인 'APR1400' 노형으로만 이루어진 특징이 있다. APR1400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출 노형이자, 지난해 폴란드 퐁트누프 지역의 원전 개발 협력의향서(LOI)를 체결한 노형이다.

새울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새울 3·4호기는 이미 88% 건설이 완료된 만큼, 외견상으로는 흔히 알려진 원전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새울 3호기는 내년 10월, 새울 4호기는 2025년 10월 준공을 목표하고 있다. 직원만 2400여명에 달하는데, 준공 시기를 맞추기 위해 막바지 작업으로 현장은 분주했다.

현재 새울 3호기는 지난달 상온 수압시험을 마쳤으며, 새울 4호기의 경우 지난해 12월 전원가압을 마친 상태다.

APR1400 노형은 국내 기술로 개발한 1400㎿의 신형 가압경수로로, 외국에서도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지난 2017년 9월 유럽 사업자요건(EUR) 인증심사를 통과했으며, 2018년 9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표준설계인증을 취득한 바 있다.

이전 노형들은 시간당 1000㎿를 생산해 왔는데, APR1400 노형은 설비용량을 1400㎿로 높였다. 설비 수명도 기존 40년에서 60년으로 늘렸으며, 원전에 필수적인 냉각수도 방파제 방식에서 해저터널로 바꿨다.

특히 안전 관련한 기능을 더욱 강화했다. 원자로 안전 정지와 유지를 위한 필수 기기의 내진성능을 0.3g(지진 규모 7.0)에서 0.5g(지진 규모 7.4)로 높였다. 항공기가 충돌해도 이상이 없도록 원자로 건물 벽체 두께도 122㎝에서 137㎝로 상향했다. 정전 사고를 대비해 비상디젤발전기와 대체 교류발전기 등 비상전원도 갖추고 있다.
[울산=뉴시스]새울 3, 4호기 전경이다.(사진=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울산=뉴시스]새울 3, 4호기 전경이다.(사진=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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