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지연 실손보험금' 기준 강화…치료문턱도 높아지나

기사등록 2023/05/29 09:01:00

최종수정 2023/05/29 09:18:04

보험사 "민간치료사는 무면허 의료행위"

의료계 "의사지휘로 이뤄지는 치료행위"

재판부 "다양한 영역발달 증진 치료행위"

[서울=뉴시스] 서울시의 놀이치료 지원 모습. (사진=서울시 제공) 2021.06.2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서울시의 놀이치료 지원 모습. (사진=서울시 제공) 2021.06.2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현대해상이 '민간자격증을 취득한 치료사'의 발달지연 아동 대상 놀이·미술·음악치료 등을 실손보험금 청구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의료계에서 조기 진단과 치료가 중요한 발달지연 아동의 치료 문턱이 높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9일 보험업계와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현대해상은 민간자격증을 취득한 미술·음악·놀이 치료사 등의 치료 행위의 경우 실손보험금 청구 대상이 아니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달지연 아동 치료기관들에 발송했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민간 치료사는 의료기사법상 의료기사(의사의 지도 아래 진료나 의·화학적 검사에 종사)에 포함되지 않아 발달지연 아동을 치료하는 것은 무면허 의료행위"라면서 "보험금 지급 심사를 강화해 작업치료사의 놀이·미술·음악 치료에 대해서만 실손보험금을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의료기사법상 의료기사는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치과기공사, 치과위생사다. 놀이, 미술, 음악치료 같은 신경발달중재치료는 작업치료사의 업무다.

"실손보험금 지급 심사를 강화한 것은 보험금 자체의 지급을 중단하거나 줄이려는 목적이 아닌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게 현대해상 측 입장이다.

문제는 발달지연 아동의 부모들이 주로 찾는 발달센터에서 근무하는 미술, 놀이, 인지 등 치료사들은 국가자격증이 개설돼 있지 않아 학회 등에서 발급하는 민간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중은 약 70%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에서는 민간 치료사들이 복지관, 병원 부설 발달센터 등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치료행위가 실손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면 발달지연 아동이 치료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발달지연은 자칫 발달장애로 이어질 수 있어 조기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 하지만 민간 치료사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실손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면 보호자는 치료를 받기 위해 고가의 치료비를 부담해야 한다. 발달지연 치료는 보통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다. 치료시간이 길어지면 비용이 그만큼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발달센터는 작업·언어·인지·놀이·감각통합·미술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기관별로 차이가 있지만, 일대일 치료비로는 보통 시간당 6~10만 원 가량이 들어간다. 복지관은 대학병원이나 발달센터보다 비용이 절반 가량 저렴해 부모들의 선호도가 높지만, 2년 이상 대기자 명단에 올려놓고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병원 소아정신과 전문의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 3년 이상 대기해야 한다.

[서울=뉴시스]언어 치료 지원 현장. (사진= 뉴시스DB) 2020.12.07.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언어 치료 지원 현장. (사진= 뉴시스DB) 2020.12.07. [email protected].
의료계에서는 민간 치료사의 발달지연 아동 대상 미술·음악·놀이 치료를 치료행위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국내 대학병원을 비롯한 모든 의료기관에서 의사의 언어발달·신경발달중재치료 지휘 하에 언어재활사, 미술심리치료사, 놀이치료사 등이 발달지연 아동을 치료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원도 미술심리치료사를 비롯해 언어재활사, 학교심리사, 사회복지사 등의 치료행위를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2016년 현대해상이 소아청소년과전문의, 미술심리치료사, 언어재활사, 학교심리사, 사회복지사 등 9명을 상대로 제기한 약 3억9000만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1심(2019년)과 2심(2020년) 모두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현대해상은 "피소된 의원에서 제공되고 있는 언어치료, 행동치료는 일반 심리상담센터나 복지센터에서 언어치료사 또는 행동치료사 등의 자격증을 보유한 사람들에 의해 제공되는 상담서비스 등과 다르지 않아 전문 의료인에 의해 시행되는 의료행위(법정 비급여)라고 볼 수 없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발달장애 또는 발달지연 아동들을 상대로 언어와 의사소통, 사회성 등의 다양한 영역의 발달을 증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의학적 전문지식을 기초로 한 경험과 기능으로 시행된 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치료 프로그램의 목적과 일정, 프로그램이 의사인 피고 A의 진찰과 검사에 따라 개시·종결되고 A의 지시와 감독 아래 진행되는 점, 프로그램의 구성, A의 진료비 청구 내역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발달지연 아동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려면 국가의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치료센터를 확충해 치료비 부담을 낮추는 것은 물론 치료사를 국가자격증을 통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발달지연·장애 영유아를 위한 국가 지원 강화'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장애인 관련 정책공약이기도 하다.

김향희 연세대 의대 재활의학교실 교수는 "국가 자격이나 국가인증자격으로 이미 제도화된 일부 자격들도 한걸음 더 나아가 특성화된 전문자격증으로 세분화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체계적인 교육제도를 바탕으로 한 국가자격제도로 진정한 전문가를 양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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