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의 매력은 따뜻한 인심과 정으로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하다는 점이다. 싱싱하고 질 좋은 농수산물을 저렴하게 판매, 가격경쟁력도 갖췄다는 평도 받는다.
5일장이 서는 날이면 인산인해를 이루던 시절도 있다. 그러나 현재는 대형 할인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에 손님을 빼앗겨 전통시장은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경쟁에 밀린 전통시장의 생존비결은 무엇일까.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과거부터 지역 주민들의 삶과 추억을 간직한 전통시장은 지금도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지역의 역사를 되짚어볼 때도 전통시장은 빼놓을 수 없다. 게다가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비중과 역할도 자못 크다.
뉴시스 전북본부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침체한 지역 경제를 살리고, 지역 주민들에게는 소소한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연중기획으로 월1회씩 10회에 걸쳐 우리 동네 전통시장을 찾아 소개한다.
[익산=뉴시스]이동민 기자 = 호남평야와 금강, 만경강의 중심지에 있는 곳 익산에는 전북에서 1등, 전국에서도 세 손가락에 꼽히는 규모를 자랑한다는 정기시장이 있다. 바로 익산 북부시장에서 열리는 '익산장'이다.
익산장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하나 있다. 1977년에 발생한 '이리역 폭발사고'다. 익산시가 이리시이던 1977년 11월 11일 이리역에서 다이너마이트와 뇌관 등 폭발물을 가득 실은 화물열차가 폭발해 약 1400명의 사상자와 78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후 이리시는 1995년 익산군과 통합하면서 '익산시'가 됐다. 익산군보다 큰 행정 구역인 이리시가 통합 당시 이름을 익산에게 내어줄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이리역 폭발사고'로 인한 '이리'의 부정적 인식 때문이라는 것이 익산 시민들의 설명이다. 어찌 됐든 지역의 이름이 바뀌면서 본래 '이리장'이던 시장의 이름도 '익산장'으로 정착하게 됐다.
금강과 만경강의 사이, 호남평야의 중심에 있는 익산은 지리적 특성 때문에 예로부터 시장이 발달한 지역이었다. 1770년 조선의 문물제도 전반에 걸쳐 기록한 '동국문헌비고'에는 18세기 당시 익산 읍내장, 회화장, 용안난포장, 함열 읍내장, 황등장, 여산 읍내장 등 6개의 시장이 섰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리장'이 처음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다. 당시 만경평야가 개발되면서 익산지역이 전국 최고의 곡창지대가 됐고 일제는 익산에서 나는 곡물과 이 지역에 운집하는 질 좋은 농산물을 수탈하기 위해 호남선, 군산선, 전라선 등 철도와 전주와 군산을 잇는 도로까지 설치했다.
편리해진 교통망 덕분에 익산지역의 시장은 점차 성장했고 이때 익산면에 위치한 이리장이 새롭게 익산의 중심 시장이 됐다. 이리장이 익산장이 된 오늘날에도 익산장은 성남 모란장, 동해 북평장과 함께 전국 3대 5일장으로 꼽힌다. 당연지사로 전북에서는 1등 정기시장이다.
익산장이 큰 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지리적으로 전주, 군산, 김제와 가까워 배후시장이 든든하고 김제, 익산에서 난 맛 좋고 질 좋은 농산물과 군산에서 잡힌 수산물을 쉽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익산장이 열리는 지난 19일 북부시장에서 만난 한 과일 상인은 "누가 정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이리장(익산장)이 전국에서 세 손가락에 꼽힌다는 것은 지금까지도 옳은 말일 것"이라면서 "장날만 되면 시장 가는 버스가 항상 가득 찬다"고 했다.
이 상인의 말처럼 이날 시장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노점과 손님이 가득했다. 시장을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파라솔과 쉴 새 없이 승객이 오가는 버스정류장을 보니 '익산장이 전국 3대 정기시장이 맞구나'라는 것을 실감케 했다.
싱싱한 채소와 과일, 신선한 수산물 등을 판매한다는 것은 다른 시장과 별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으나 150여 대의 차량을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과 깨끗한 화장실, 공연장 등은 다른 전통시장과 차별화된 지점이었다. 또 야외 시장뿐만 아니라 실내에도 장이 열려 보다 쾌적하게 장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작용했다.
시장 안쪽으로 들어서면 펼쳐지는 치킨, 어묵바 등 먹거리도 손님을 시장으로 이끄는 힘 중 하나다.
대형마트 대신 시장을 찾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손님 안정미(56)씨는 "시장보다 대형마트가 나은 점이 뭐가 있느냐"면서 "일단 시장은 재미가 있다. 상인들과 물건 값을 깎는 재미는 물론이고 길을 걸으며 맛난 음식을 하나씩 사먹는 재미도 있다. 이 소소한 재미가 내가 시장을 찾는 이유"라고 말했다.
낡은 파라솔과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매대, 억척스럽게 물건을 사라고 소리 지르는 상인의 모습은 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가끔씩 나는 생선의 비릿한 냄새와 한약재의 불편한 향도 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다.
불편한 매력 때문에 1980년대에 쓰던 필름카메라가 대세가 된 2023년. 먹거리와 볼거리 가득한 전통시장에서도 불편한 매력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