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도 이건 못 하겠죠?"…'멍때리기' 달인들 한강 집결[서울해요]

기사등록 2023/05/21 09:00:00

최종수정 2023/05/21 09:07:16

오늘 4시 잠수교서 '멍때리기 대회' 개최

90분 간 안정적 심박수로 멍때려야 우승

[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강 잠수교에서 열린 '2022 한강 멍때리기 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경연에 열중하고 있다. 2022.09.18. kgb@newsis.com
[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강 잠수교에서 열린 '2022 한강 멍때리기 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경연에 열중하고 있다. 2022.09.1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권혁진 기자 = '사람은 많지만 다들 별다른 활동은 하지 않는다. 그저 자리에서 무념무상을 유지할 뿐이다. 생산적이라는 낌새가 감지되면 그대로 '탈락'이다.'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는 것에 자신 있는 자들이 한강에 집결한다. 이른바 '멍때리기의 달인'을 뽑는 '2023 한강 멍때리기 대회'가 21일 오후 4시 한강 잠수교에서 열린다.

한강 멍때리기의 시작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부 지역에서 멍때리기 대회가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서울시 한강사업본부는 '아예 우리가 판을 깔아주자'고 나섰다.

한강사업본부 관계자는 "일상에 지치고 힘든 분들이 휴식을 위해 한강을 자주 찾으시니 우리가 (대회를) 하면 어울리겠다고 생각해 시작했다"고 말했다. 대회를 창시한 기획자 웁쓰양과 협의도 무탈하게 끝났다.

2016년 1회 대회부터 큰 화제가 됐다. 1위는 가수 크러쉬. 크러쉬는 무표정한 얼굴로 끝까지 자리를 지켜 당당히 정상에 올랐다. 강 넘어 아파트 창문의 개수를 세면서 시간을 보낸 것이 우승의 비결이었다. 2019년에는 미국 출신 리 라디 씨가 대회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우승자로 이름을 남겼다.

각종 방송 프로그램과 입소문을 타면서 멍때리기의 인기는 해를 거듭할수록 치솟았다. 코로나19가 비교적 잠잠해진 지난해 9월 진행된 대회에는 50팀 선발에 3800명이 몰려 접수를 조기 마감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작년 우승자는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팬이었다. "응원하는 팀이 받을 수 없는 등수를 받은 거 같은데 이것으로 만족한다", "한화 경기를 보면 자동으로 멍 때리게 되는데 그렇게 10년을 갈고 닦다보니 그냥 한화 경기 본다는 생각으로 멍때렸다"는 말은 지금도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웃픈' 소감으로 통한다.

규칙은 단순하면서도 엄격하다. 대회가 열리는 90분 동안 참가자들은 말을 할 수 없다. 의사 표시는 미리 배포하는 카드로만 가능하다. 빨간카드(졸릴 때 마사지), 파랑카드(목마를 때 물), 노랑카드(더울 때 부채질), 검정카드(기타 불편사항)를 집어 들면 대기하던 진행 요원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멍때리기에 실패하면 '퇴장 카드'를 받고 즉시 경기장 밖으로 끌려 나간다.
[서울=뉴시스]2022 한강 멍때리기 대회 참가자가 사연을 적고 있다.(사진=서울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2022 한강 멍때리기 대회 참가자가 사연을 적고 있다.(사진=서울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우승자는 심박수 그래프와 현장 시민투표로 선정한다. 참가자들이 착용한 암밴드형 심박 측정기를 15분마다 확인해 그린 심박수 그래프를 바탕으로 점수를 부여하고, 대회를 관람한 시민의 투표 점수를 합산하는 방식이다. 올해는 그룹 운동 모니터링 시스템에 적용되는 암밴드형 심박 측정기를 활용해 더욱 정확한 평가가 이뤄진다.

한강사업본부는 신청 사연들을 면밀히 검토한 끝에 올해 출전할 최종 70팀을 추렸다. 자주포 엔지니어, 사육사, 응급구조사, 축구선수, 의사, 교사, 소방관 등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도전장을 던졌다.

연령대별 비율은 20대가 37%(26명)로 가장 높고 30대 36%(25명), 40대 13%(9명), 50대와 20대 미만이 각각 6%(4명), 60대 이상이 3%(2명) 순으로 나타났다.

한 영상 디자이너는 챗GPT가 본인의 업무에도 많이 사용돼 걱정된다며 AI는 할 수 없는 멍때리기로 마음을 가다듬고 싶다고 적어 45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뚫어냈다.

한강 멍때리기 대회는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뒤처지거나 무가치한 것이라는 통념을 지운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이처럼 때로는 뇌와 마음에 휴식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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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도 이건 못 하겠죠?"…'멍때리기' 달인들 한강 집결[서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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