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9주기 전국 각지서 추모 발길 이어져
목포 신항 선체 앞 꽃송이·노란 리본 다는 추모객
맹골수도 바라보는 팽목항서도 답답함·한숨 여전
"안전 시스템 정비·진상 규명으로 슬픔 승화해야"
[광주=뉴시스]이영주 김혜인 기자 = "안타까운 참사를 막기 위해서 세월호가 남긴 교훈을 잊어선 안 됩니다."
세월호 참사 9주기인 16일 오후 세월호 선체가 거치된 전남 목포시 목포 신항만엔 또다시 노란 추모 물결이 일었다.
항만 입구에서부터 선체까지 향하는 300여m길목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추모객의 행렬이 이어졌다.
추모객들은 길이 146m, 폭 22m 커다란 세월호를 눈 앞에서 마주하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고개를 떨궜다.
9년이 흘러 벌겋게 녹이 슨 세월호 앞엔 샛노란 프리지아 꽃송이가 놓여있었다.
철조망엔 건 지 얼마 안 된 듯한 노란 리본들이 바람에 나부꼈다.
한 중년 여성은 "젊은 청춘들이 꽃도 못 피고 안타까워서 어쩌나"라면서 탄식했다.
가족·지인 단위로 삼삼오오 모인 추모객들은 노란 옷을 입고 오거나 옷에 추모 배지를 달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한 아이는 챙겨온 노란 리본 스티커를 철조망에 조심스레 붙였다. 또다른 추모객은 노란 리본 고리를 단 뒤 손을 모으고 희생자를 위한 기도를 했다.
리본엔 '친구들아 좋은 곳으로 가서 푹 쉬어, 잊지 않을게', '기억하겠습니다. 안전 사회 건설'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한 부모는 어린 자녀에게 "네가 태어나기 전에, 어른들이 잘못해서 형·누나들이 배 안에서 하늘나라로 갔어"라고 설명했다. 자녀는 얼굴을 찡그린 채 슬그머니 아빠의 손을 잡으면서 "형·누나가 얼마나 무서웠을까요"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9주기인 16일 오후 세월호 선체가 거치된 전남 목포시 목포 신항만엔 또다시 노란 추모 물결이 일었다.
항만 입구에서부터 선체까지 향하는 300여m길목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추모객의 행렬이 이어졌다.
추모객들은 길이 146m, 폭 22m 커다란 세월호를 눈 앞에서 마주하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고개를 떨궜다.
9년이 흘러 벌겋게 녹이 슨 세월호 앞엔 샛노란 프리지아 꽃송이가 놓여있었다.
철조망엔 건 지 얼마 안 된 듯한 노란 리본들이 바람에 나부꼈다.
한 중년 여성은 "젊은 청춘들이 꽃도 못 피고 안타까워서 어쩌나"라면서 탄식했다.
가족·지인 단위로 삼삼오오 모인 추모객들은 노란 옷을 입고 오거나 옷에 추모 배지를 달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한 아이는 챙겨온 노란 리본 스티커를 철조망에 조심스레 붙였다. 또다른 추모객은 노란 리본 고리를 단 뒤 손을 모으고 희생자를 위한 기도를 했다.
리본엔 '친구들아 좋은 곳으로 가서 푹 쉬어, 잊지 않을게', '기억하겠습니다. 안전 사회 건설'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한 부모는 어린 자녀에게 "네가 태어나기 전에, 어른들이 잘못해서 형·누나들이 배 안에서 하늘나라로 갔어"라고 설명했다. 자녀는 얼굴을 찡그린 채 슬그머니 아빠의 손을 잡으면서 "형·누나가 얼마나 무서웠을까요"라고 말했다.
같은 시각 참사 희생자와 가족 사이 마지막 이별 장소였던 진도군 팽목항에서도 처연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방파제에서 추모객들을 가장 먼저 맞는 대형 노란 리본 조형물은 흐르는 세월동안 곳곳의 도색이 벗겨지고 녹이 슬었다.
참사 해역인 진도군 동거차도 맹골수도 방향으로 줄줄이 늘어선 노란 리본들도 끝 단이 헤지고 빛이 바랜 채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다만 9년째 방파제에서 바닷바람을 맞고 있는 노란 깃발에는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담긴 검정 글씨가 여전히 선명했다.
추모객들은 팽목항의 부름에 화답하는 듯 저마다 노란 옷을 입고 오거나 노란 꽃을 들고 왔다.
부모의 손을 꼭 잡고 팽목항 방파제를 걷던 한 아이는 주머니에서 노란 천 조각을 꺼내더니 늘어선 노란 리본 곁으로 다가갔다.
고사리 손에 쥐어진 노란 천 조각은 여러차례 서툰 매듭 끝에 어느새 어엿한 리본이 됐다.
상복처럼 검정 옷을 차려 입은 한 추모객은 맹골수도 방향을 한동안 바라보더니 이내 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다.
추모객이 몰아쉰 깊은 한숨 소리는 깃발이 바닷바람에 나부껴 펄럭이는 소리에 묻혔다.
방파제 끝 빨간 등대 앞에는 추모객들이 두고 간 하얗고 노란 꽃들이 쌓여있었다.
이날 팽목항을 5년 만에 찾은 채모(45·여)씨는 마당에서 심어 기르던 황매화를 잘라다 등대 앞에 헌화했다.
'오는 동안 꽃이 시들면 어쩌나' 걱정했던 그는 비교적 온전한 모습으로 꽃을 바칠 수 있어 다행이라며 안도했다.
채씨는 "5년 만에 찾는 팽목항이라 미안한 마음에 꽃을 가지고 왔다.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 약속을 저버린 것 같아 몹시 불편했다"며 "슬픔을 달래려고 찾아온 팽목항에서 슬픔을 얻어가는 느낌이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9년 동안 슬픔을 승화시킬 수 없었던 것은 미흡한 진상규명과 답답한 후속절차 때문이 아닐까"라며 "팽목항을 찾는 모두가 슬픔을 풀고갈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채씨의 당부처럼 시민들은 참사 9주기가 되도록 진척되지 않은 참사 원인 규명에 다시한번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경기도민 김단홍(45·여)씨는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침몰 원인을 밝히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며 "국가 참사인 만큼 재발 방지를 위해 철저한 원인 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중배(57)씨도 "청춘들이 억울하게 죽은 지 9년이 흘렀지만 침몰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까지 제대로 해결된 것이 하나도 없다"며 "여·야가 힘을 합쳐 원인규명·재발방지를 위한 입법에 힘써야 한다"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가 정쟁·조롱의 대상이 되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목포신항에 세월호 추모 공간을 만든 송정미(56·여)씨는 "국가는 세월호가 국가적인 참사인 만큼 여야 대립, 차별·왜곡 대상이 되지 않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고 희생자 가족에 대한 트라우마 치유 지원 등을 계속 해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