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뉴시스] 김동영 기자 = 아파트와 빌라 등 주택 2700여채를 차명으로 보유하고, 100억원대 전세 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된 이른바 ‘건축왕’으로 불리는 건축업자에게 피해를 입어 극단적 선택을 한 30대 남성의 추모제가 열렸다.
6일 오후 7시께 인천 미추홀구 수도권 전철 1호선 주안역 앞에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대책위원회’는 전세사기 피해자 A(30대)씨의 추모제를 열었다. 추모제에는 주안역을 통해 퇴근길에 오른 많은 시민들이 잠시 발걸음을 멈춰 A씨의 넋을 기렸다.
추모제 현장에 마련된 게시판에는 ‘피해 해결만이 고인에게 드리는 마지막 선물이 될 것입니다.’, ‘고통없는 곳에서 편히 쉬소서’라는 고인의 명복을 바라는 문구가 담긴 메모지도 붙어있었다.
김병렬 대책위 부위원장은 추모사를 통해 "고인께서도 미추홀구 전세사기에 당하셨고 개인의 어려우신 상황에서도 저희 대책위에 참여하셔서 많은 노력과 도움을 주시며 함께하셨다”고 A씨를 떠올렸다.
이어 “같은 처지에 놓인 분들을 위해 고인의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먼저 다가가 대화를 해 주셨고, 정부의 정책 개선을 위한 토론회 등에서도 적극적인 의사 반영 등을 위해 많은 준비와 노력을 해줬다”며 “물론 아직 저희와 고인께서 요구하는 정책에 대한 반영은 멀기만 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앞서 나서주시던 모습에 크게 감명을 받았으며, 이를 가슴 속에 새기고 기억하고 있다”며 “저희가 가야 할 길이 멀게만 느껴지는게 현실이긴 하나 고인이 말씀하신 부분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여 더 많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길 바라는 고인의 유지를 끝까지 지킬 수 있게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날 대책위는 ‘피해세입자 삶을 파탄 낸 악덕범죄인 남모씨 일당 엄중처벌하라’, ‘미추홀구 전세사기 주범 및 공범 반드시 구속하라’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민들에게 피해를 호소하기도 했다.
이들은 ”피해자들을 위한 재발방지 대책과 진상 규명 그리고 피해자들이 거주 지원을 할 수 있도록 거주지를 긴급하게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다.
인천 미추홀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오후 5시40분께 인천 미추홀구 모 빌라에서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유서에 “전세사기피해대책위에서 많은 위로를 얻었지만 더는 못 버티겠다. 자신이 없어. 뭔가 나라는 제대로 된 대책도 없고… 이게 계기가 되서 더 좋은 빠른 대책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그는 미추홀구의 모 빌라에서 지난 2021년 10월부터 보증금 7000만원의 전세계약을 체결 후 홀로 거주하고 있었다. A씨는 지난해 11월께 전세사기 사실을 인지한 이후 2022년 12월부터 대책위에서 활동해왔다.
A씨가 거주하고 있는 빌라는 전세계약 이전인 2011년부터 이미 근저당이 설정돼 있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최근 최우선 변제대상에서 제외돼 보증금 전체를 돌려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대출연장도 은행으로부터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크게 느끼고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대책위는 유가족 측과 장례절차, 추모를 위한 공론화 방식 등을 논의했으나 장례절차를 비공개로 진행하고 싶어 하는 유가족의 뜻에 따라 장례절차와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은 비공개하기로 결정했다.
한편 이른바 건축왕으로 불리는 B(62)씨는 지난해 1∼7월 인천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 163채의 세입자로부터 전세 보증금 126억원을 가로챈 혐의 등을 받아 최근 경찰에 구속됐다.
그는 인천 미추홀구 일대에 다수의 주택을 보유하면서 자금 경색 등으로 임의경매가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공인중개사 등 공범들에게 전세 계약을 체결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B씨는 인천을 중심으로 2700여세대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주택의 상당수는 직접 시공한 공공주택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