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초 산·학·관 협력 어르신 급식제공
도시락 신청만으로 건강관리까지 한번에
"최종 목표, 미래 어르신 급식 기준 될 것"
[부산=뉴시스]이동민 기자 = 부산시 부산진구의 한 단독주택에 홀로 거주하는 80대 여성 A씨. 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해 제때 끼니를 챙기기 힘든 그이지만 점심식사만큼은 '온마을 사랑채'로부터 도시락을 받아 온전한 한 끼를 해결한다.
겉보기엔 일상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시락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 도시락에 들어간 밥과 국, 5가지 반찬들은 A씨의 영양 상태, 식습관, 기호 등을 고려해 선별된 식재료로 만들어진다. A씨는 원할 경우 매 6주간의 맞춤형 도시락 식사 후 관할 보건소에서 건강 상태를 점검받을 수 있다.
온마을 사랑채는 노인 맞춤형 식사와 영양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영리 가게로, 동의과학대 산학협력단 학교 기업인 '지역사회통합 돌봄식사 서비스지원센터'(지역돌봄센터)와 부산진구청, 식자재 공급을 담당하는 풀무원식품의 자회사 '푸드머스'가 합심해 운영하고 있다.
산·학·관이 함께 어르신들을 위한 맞춤형 급식 제공을 하는 곳은 온마을 사랑채가 전국에서 처음이다.
온마을 사랑채에서는 지역돌봄센터장인 이상주 동의과학대 간호학과 교수가 전반적인 운영을 맡고 있으며, 한진숙 동의과학대 호텔조리영양학부 교수가 어르신 식사 서비스와 관련한 자문을 맡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2012년부터 부산진구 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를 운영해오고 있다.
이 교수는 온마을 사랑채를 연 계기에 대해 "어르신들을 위한 급식 사업은 주변에 흔하지만 정작 어르신들의 식습관과 영양상태를 고려해 제공되는 경우는 없었다"라면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으면서도 영양학적으로 체계가 잡힌 도시락을 제공하며 건강 상태를 꾸준히 확인할 방안을 연구해 온마을 사랑채를 열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온마을 사랑채는 2019년 3월부터 1년여간 어르신들의 건강과 식생활 특성에 관한 연구와 사전 조사 과정 등을 진행했다. 이후 2020년 7월 부산진구 범전동에 1호점을, 이듬해 11월 초읍동 부산어린이대공원 인근에 2호점을 개소했다.
이 교수는 "1호점은 부산진구에 거주하는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도시락 배달 서비스를 중심으로, 2호점은 어르신들이 직접 방문해 건강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두 곳에 총 12명이 근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도시락 신청만으로 식습관 개선·건강관리까지 한번에
온마을 사랑채만의 맞춤형 도시락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질까.
부산진구에 거주하는 만 65세 이상 어르신 중 지역사회 통합돌봄 사업 대상으로 식사 영양 관리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전화 예약 후 사전 영양 검사를 거쳐 온마을 사랑채 영양사와 직접 상담을 할 수 있다. 검사 항목은 BMI(Body Mass Index·체질량 지수), 허약수준, 식사빈도 등으로 구성된다.
온마을사랑채 직원들은 상담 내용을 종합해 총 6주 단위 식단표를 바탕으로 풀무원 푸드머스로부터 공수한 식재료를 조리해 하나의 도시락을 만든다.
도시락은 크게 ▲밥, 감자, 고구마, 빵 등 주식(에너지 급원) ▲고기, 생선, 달걀(단백질 급원) ▲채소, 과일, 해조류(비타민, 무기질, 식이섬유소 급원) 등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밥의 형태, 반찬의 크기, 음식의 익힘 정도까지 고려해 하나의 맞춤형 도시락으로 만들어진다. 개개인 특성에 맞춰 필요한 영양성분을 고려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평소 좋지 못한 식습관까지 개선할 수 있다.
온마을 사랑채 영양사로 근무 중인 김지현 팀장은 "다량의 단백질을 섭취해야 하지만 치아가 좋지 않은 어르신의 경우 상대적으로 질긴 돼지고기 대신 살이 부드러운 생선으로 대체한다"며 "당뇨가 있는 어르신에겐 당 함량이 적은 음식 위주로 제공된다"고 설명했다.
도시락은 평일 오전 10시마다 배달원을 통해 약 200여 가구에 직접 전달된다. 토요일에 식사해야 할 도시락은 금요일에 함께 배달된다. 여기에 과일과 음료, 유산균 식품 등 간식도 함께 제공된다.
배달원들은 도시락이 상온에 오래 두지 않도록 직접 냉장고에 보관해주면서 어르신들의 일상생활도 함께 확인하는 역할도 한다.
한 달 기준 총 24끼의 도시락 가격은 22만5000원. 간식을 포함해 매 끼당 약 9000원꼴이다. 한 교수는 "도시락 하나에 들어가는 식자재비가 매끼당 가격에 근접하는 수준이다. 그만큼 엄선된 재료로 도시락을 만들려 한다"라면서 "소득 분위에 따라 월 5만원으로도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식사를 제공받은 어르신들은 건강모니터링 서비스도 함께 받는다. 어르신들은 6주간 도시락을 식사한 뒤 관할 보건소에 방문해 식사 전후 건강 이상 여부를 확인한다.
◇"온마을 사랑채, 미래 고령층을 위한 급식의 기준 될 것"
개인마다 가진 건강 상태를 고려해 맞춤형 도시락을 만드는 과정에는 온마을 사랑채 구성원들의 고민이 담겨 있다.
한 교수는 "어린이들을 위한 식단은 다양한 영양식을 골고루 주기만 하면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식사는 각종 건강 상태와 질환 여부 등을 고려해 식단을 짜야 하므로 상대적으로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라며 고충을 털어냈다.
그러면서 "어르신들이 치아가 안 좋다고 죽 등 묽은 음식만을 드시는 걸 원한다는 건 우리만의 착각이다"라면서 "어르신들도 무언가를 씹어서 먹길 원한다. 이러한 저작 욕구를 충족시키면서도 소화가 잘 되는 반찬을 넣고자 식재료의 익힘 정도와 양을 얼마나 넣을 지 연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거듭된 연구와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식단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해 식사량을 늘리면서도 적정량의 체중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두고 식단을 짜게 됐다"라고 부연했다.
온마을 사랑채는 산·학·관이 함께 어르신들을 위한 맞춤형 도시락을 제공하는 점을 인정받아 지난해 행정안전부의 '주민 생활 혁신사례 확산 지원사업'에서 우수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모범사례로 손꼽힌 온마을 사랑채는 타 지자체에서도 노하우를 전수받고자 많이들 찾아온다. 한 교수는 "현재까지 전남 영광, 전북 부안, 대전 유성구 등 지자체 20여 곳에서 온마을 사랑채의 서비스를 벤치마킹하러 왔다"라면서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건강 상담, 도시락을 만들기까지 진행하는 과정 등 우리가 쌓아 온 노하우를 최대한 전수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 교수는 전북 부안에 노하우를 전수한 일화를 들려주면서 "부안의 경우 상주하는 전문 영양사가 없어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식단을 짜는 과정을 알려줬다"면서 "지금도 온마을 사랑채에서 일하는 영양사가 원격으로 식단 관련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온마을 사랑채의 향후 목표에 대해 한 교수와 이 교수는 "미래 고령층을 위한 급식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교수는 "고령층을 위한 급식 사업이 단순한 식사 제공의 차원을 넘어 균형 잡힌 식사를 꾸준히 제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라면서 "온마을 사랑채를 운영하며 쌓아 온 노하우를 전국 방방곡곡에 확산시켜 보다 바람직한 급식 제공 문화를 자리 잡게 하는 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라고 자신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