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대외비 '정책 참고자료' 문건 작성
정부 대응 조언…진보·보수단체 관계자 인용도
직무집행법상 '정보 수집'…정치개입·사찰 금지
전문가 "내용 상 위법 소지 없어…유출은 문제"
[서울=뉴시스]정진형 기자 = 경찰청이 이태원 압사 참사 직후 시민단체·와 여론 동향, 언론보도 기류를 수집하는 정보 문건을 작성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다. 다만 통상적인 경찰 업무의 일환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인데, 대외비 문건이 유출된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2일 SBS가 공개한 경찰의 '정책 참고자료' 문건을 보면 경찰청은 참사 이틀 뒤인 지난달 31일 관련 문건을 작성했다. 표제에 '특별취급'이라 적혀있고, 대외 공개, 타 기관으로의 전파, 복사 등을 할 수 없다고 명시돼있었다.
문건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정부 부담 요인에 관심 필요 ▲주요 단체 등 반발 분위기 ▲온라인 특이여론 등 5개 주제로 구성됐고 "빠른 사고 수습을 위해 장례비·치료비·보상금 관련 갈등 관리가 필요하다", "고위공직자의 부적절 언행·처신을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는 정부 대응 관련 조언이 담겼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 논란 처럼 집무실 이전에 따른 관저 문제와 연계해 미흡점을 찾으려는 시도가 이어질 것"이라는 구체적 전망도 담겼다.
주요 시민단체와 온라인·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여론, 언론보도 동향을 수집한 결과물도 문건에 포함됐다.
일부 진보성향 단체들을 적시해 이태원 참사를 "제2 세월호 참사로 규정해 정부를 압박한다는 계획"이라며 정권 퇴진운동 공세 움직임이 있다거나, 여성가족부 폐지 등 정책 비판에 참사 이슈를 활용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시민단체 관계자, 활동가들과 접촉해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도 있다. 진보단체 관계자를 인용해 "집회 시위에 대한 공권력 투입을 폄하하려는 분위기도 있다"고 전하거나, "촛불행동 집회 참석 인원 중 다수가 이태원에 합류했을 것"이라며 이들 단체 책임을 주장할 거라는 보수단체 활동가의 말을 옮기기도 했다.
언론 보도와 온라인 여론 동향과 관련해선 "정부의 안전관리가 미흡했다는 정부 책임론이 부각될 조짐"이라며 관련 보도량이 대폭 증가했고, MBC PD수첩 등 시사 프로그램들이 심층 보도를 준비 중이라고 적었다.
전문가들은 문건 내용상 대형 참사 직후 통상적인 정보 수집으로 규정에 반한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중요한 포인트는 사찰 정보를 수집했느냐인데 그런 형태는 아닌 것 같다"며 "어느 조직에서나 하나의 상황 평가는 작성할 수 있는 것이어서 특별히 위법 소지가 있지는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고 봤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내용을 봤을 때 사찰이라든지 대응을 위해 (특정 단체) 누굴 이용하자는 내용이 없고 전망과 가치평가가 들어있어서 특별한 문제가 있지는 않아 보인다"며 "경찰 직무와 관련해 작성할 수 있는 문건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상 경찰은 범죄·재난·공공갈등 등 공공안녕에 대한 위험의 예방과 대응을 위한 정보의 수집·작성·배포와 이에 수반되는 사실의 확인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단 대통령령인 '경찰관의 정보수집 및 처리 등에 관한 규정'을 통해 ▲정치 관여 ▲사생활 관련 정보 ▲상대의 명시적 의사에 반한 경우 등은 할 수 없다고 제한하고 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정보 수집은 경찰의 고유 기능이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경찰은 상황 정보를 수집하도록 돼있다"면서 "다만 이 문건이 외부로 유출된 게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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