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육과정 수정·보완' 요청한 교육부…사실상 지시?

기사등록 2022/09/19 21:05:03

최종수정 2022/09/19 21:13:41

교육과정 개정 시작부터 '국민참여' 형식 채택

정책연구도 "국가 우세하면 교육과정 도구화"

'역사' 논란되자 "연구진에 수정·보완 요청해"

"본질 아닌 싸움…마무리 단계에 지나친 개입"

[서울=뉴시스] 김명원 기자 =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에 대한 국민의 주요 의견 공개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2.09.19. kmx1105@newsis.com
[서울=뉴시스] 김명원 기자 =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에 대한 국민의 주요 의견 공개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2.09.19. [email protected]
[세종=뉴시스]김정현 김경록 기자 = '자유'·'남침' 등과 같은 표현이 빠져 논란이 된 새 역사 교육과정 개발진(정책연구진)에게 교육부가 보완을 요청한 것을 두고 사실상 담아야 할 내용을 지시한 것이라는 논란이 커질 조짐이다.

교육부는 이번 교육과정 개정 작업을 국가와 전문가에게만 맡기지 않고 국민들의 참여를 확대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정작 이념 갈등이 커지자 국가가 개입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학계에서도 이번 교육부의 발표를 두고 '과도한 개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뉴시스 취재에 따르면 교육부는 지난해 4월20일 공개한 '국민과 함께하는 미래형 교육과정 개정 추진 계획'을 통해 향후 정책 제안 과정에 전문가로 구성된 개정추진위원회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 참여를 확대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전문가들에게만 교육과정 개정을 위한 정책 제안을 받았던 것과 달리, 일반 국민들이 직접 초·중등 교육의 방향 설정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는 취지였다.

이 같은 기조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교육부는 "현장 수용성 높은 교육과정에 대한 요구가 증대"된다며 전문가 중심으로 개발되던 교육과정 개발에 국민 참여를 확대해 최선의 대안을 설정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 취지는 교육부가 발주해 교육과정 개정 기초 자료로 쓴 정책연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부산대 박창언 교수 등이 연구한 '국민 참여형 교육과정 개발을 위한 대국민 의견수렴 및 분석 연구' 보고서(2021년 4~11월 연구)를 보면 '이해관계자의 과도한 개입이 바람직한 교육과정 개정 작업을 저해하는 기능을 한다'는 분석이 담겨 있다.

박 교수 등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국가와 그에 준하는 집단의 힘이 우세하면 교육과정이 도구화될 수 있고, 전문가와 교사집단의 힘이 강하면 학교가 이론 체계를 구현하기 위한 장이 될 것"이라며 "특수이익집단의 힘이 강하게 되면 이익을 관철시켜 공익에 부합하는 교육과정을 만들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연구진은 "특정 집단의 힘이 우세하게 돼 균형이 잡히지 않게 되면 교육과정에서 사회적 합의는 의미가 없게 된다"며 교육부 등 각 주체가 대화, 타협을 통한 조정과 협력적 관계 정립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날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개정 역사 교육과정 관련 기자회견에서 '자유', '남침' 등 표현이 빠진 것을 보완하라고 "정책연구진(개발진)에게 '각별히 요청했다"고 밝혔다.

장 차관은 "교육과정이라는 것이 사회적 공감대, 국민 눈높이에서 상식적인 부분, 아주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그대로 가르쳐야 되는 게 아니냐는 관점에서 그 내용들이 포함돼야 될 필요가 있느냐, 수정돼야 될 것이냐, 보완될 것이냐 판단해 달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뉴시스] 강종민 기자 = 오승걸 교육부 학교혁신지원실장이 지난달 31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최근 공개한 새 교육과정 시안 중 우리 나라 현대사를 다루는 대목에 '남침'과 '자유 민주주의' 등의 표현이 없는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2022.09.19 ppkjm@newsis.com
[세종=뉴시스] 강종민 기자 = 오승걸 교육부 학교혁신지원실장이 지난달 31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최근 공개한 새 교육과정 시안 중 우리 나라 현대사를 다루는 대목에 '남침'과 '자유 민주주의' 등의 표현이 없는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2022.09.19 [email protected]

오승걸 학교혁신지원실장은 "연구진들이 어떤 불만을 갖고 수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국민들에게 전체의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의견을 반영하는 과정을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연구진에게 '수정 압박'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물음에 내놓은 답변이었다.

오 실장은 '교육부가 생각하는 국민적 상식'에 대해 묻자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는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기본적 내용"이라며 "누락해 불필요한 쟁점이 되는 것은 적절치 않고, 반영한다고 큰 문제가 안 되면 빠르게 보완하는 게 사회적 갈등을 줄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오 실장은 "교육부의 직접적 판단보다 공청회, 전문가가 참여하는 각론조정위원회, 개정추진위원회 등을 통해 연구진과 협의하며 보완될 수 있다"고 밝혔다.

교육부의 태도에 대해 교사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진보 성향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면밀한 수정·보완을 요구하겠다’는 태도는 국민의 의견을 핑계 삼아 교육부의 의도를 교육과정에 관철시키기 위해 연구진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박래훈 역사교사모임 대표는 "모든 단어가 하나하나 들어가는 게 교육과정은 아니다"라며 "남침이 꼭 들어가야 한다면 교과서 집필 기준에 명시하면 되는데, 교육과정에 굳이 그 이야기를 하는 의도는 역사과 교육과정을 이념 논쟁화 시키려는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보수 성향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이념 편향적,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내용들은 균형 잡힌 관점과 충분한 숙의과정을 거쳐 반드시 바로잡아 교육과정에 반영해야 한다"고 논평했다.

[서울=뉴시스] 조성우 기자 =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등교를 하고 있다.<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이 없음> 2022.09.19. xconfind@newsis.com
[서울=뉴시스] 조성우 기자 =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등교를 하고 있다.<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이 없음> 2022.09.19. [email protected]

조성철 교총 대변인은 오 실장의 '빠른 보완이 갈등을 줄인다'는 답변에 대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집필자가 자유롭게 다 하게 놔두는 게 바람직한 것인가 되묻고 싶다"며 "역사적 팩트(Fact·사실)는 국민들의 여론에 따라 달라지는 사안아 아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이념 갈등' 모습에 한국근현대사학회 이사를 지냈던 반병률 한국외대 사학과 교수는 "남침, 자유와 같은 용어 싸움은 본질이 아니다"라며 "학생들이 스스로 역사관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아니라 이념의 대상화로 삼는 것이 양 진영 모두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반 교수는 교육부에 대해서도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추가로 개입한 것"이라며 "우리나라 교과서는 검인정이기 때문에 집필 가이드라인이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 지침이 있음에도 지나치게 개입한다는 것이다.

그는 "역사는 편식하면 안 좋다"며 "다양한 역사적 관점 중에서 정부가 '이것만 먹어라'하고 주는 게 교과서인데 그것을 너무 좁혀 역사를 보는 안목을 너무 좁게 한다든가 그렇게 나가는 건 절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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