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서 확진자 밀접접촉자 대상 백신 접종 시작
확진자 주변 '링' 모양 방어벽 만드는 포위접종 전략
우리나라는 1·2세대 백신 밖에 없어 활용 어려울 듯
3세대 백신 도입해도 접종 대상·범위 설정 문제 복잡
[서울=뉴시스] 안호균 기자 = 원숭이두창이 예상보다 빨리 확산하고 있는 북미와 유럽 국가들이 백신 접종 카드를 꺼내들기 시작했다. 광범위한 백신 접종 대신 감염 위험이 높은 확진자 주변을 대상으로 하는 '포위접종'(Ring vaccination, 링 백시네이션) 전략이 고려되고 있다. 국내로 원숭이두창 환자가 유입될 경우 '링 백시네이션'을 통해 확산을 막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9일 의료계에 따르면 두창 백신은 바이러스에 노출된 뒤 4일 이내에만 접종을 하면 감염과 중증화 위험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숭이두창은 두창과 같은 폭스바이러스과에 속해 있어 두창 백신 접종으로 85%의 예방 효과를 낸다.
이에 따라 캐나다, 영국, 미국 등의 국가들은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포위접종 전략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확진자들과 밀접 접촉한 사람이나 바이러스에 노출된 의료진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을 하는 방식이다.
포위접종 전략은 과거 아프리카 지역에서 에볼라나 두창이 발생했을 때 확산을 억제하는데도 효력을 발휘했다. 당시에는 감염이 발생한 지역사회 전체에 백신을 접종해 링 모양의 방어벽을 구축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유럽과 북미에서는 확진자와 밀접하게 접촉한 사람들을 추적해 백신을 접종하는 방식이 채택되고 있다. 백신 비축 물량에 한계가 있고, 백신의 안전성이나 효과성이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광범위한 인구 집단에 대한 접종은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원숭이두창 백신 접종 대상은 엄격한 접촉 추적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WHO는 확진자와 성 접촉을 한 사람이나 가족, 의료 종사자 등 고위험 밀접 접촉자에 대해 예방접종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원숭이두창이 유입되더라도 밀접 접촉자에 대한 백신 접종을 통해 확산을 예방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비축하고 있는 1·2세대 두창 백신은 부작용 위험이 크고 접바늘 끝이 두갈래로 갈라진 분지침을 사용하는 까다로운 접종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금 우리(나라)가 생물 테러에 대비해 보유하고 있는 2세대 백신은 접종이 까다롭고 중증 부작용이 있다"며 "지금 원숭이두창으로 아프리카 밖에서는 사망자가 없고 치사율이 굉장히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접종의 이득이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원숭이두창의 국내 유입을 대비해 북미와 유럽 국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3세대 백신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3세대 두창 백신은 덴마크 바바리안 노르딕사가 세포생물학적 방법을 적용해 개발한 제품이다. 미국에서는 '진네오스(Jynneos)', 캐나다에서는 '임바뮨(Imvamune)', 유럽에서는 '임바넥스(Imvanex)'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3세대 백신은 사람에게 질병을 일으키지 않는 비복제형 백시니아 바이러스가 들어 있어 중증 이상반응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1·2세대 백신을 접종할 수 없었던 면역저하자 등에게도 접종이 가능하다. 기존 두창 백신에 비해 중화항체 유도 능력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KMI 한국의학연구소 연구위원회 신상엽 상임연구위원은 "이 백신은 201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의해 원숭이두창에도 사용이 승인됐다"며 "기존 백신보다 안전성과 효과성이 크게 개선됐고 접종 금기 대상이 거의 없어 국내 도입 시 원숭이두창 예방에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3세대 백신을 도입하더라도 접종 대상과 범위를 설정하는 것은 복잡한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원숭이두창은 성접촉 등을 통해 전파되는 경우가 많아 밀접 접촉자를 추적하기 쉽지 않고 공기 중 감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높은 수준' 또는 '중간 수준'의 원숭이두창 바이러스 노출이 있었던 사람들에게 백신 접종을 권하고 있다. 이 범위에는 원숭이두창 환자의 피부 또는 체액을 직접 접촉한 경우 뿐만 아니라 확진자와 1.8m 이내에 있던 사람도 포함된다. 원숭이두창이 환자가 내뱉는 기침이나 재채기의 비말을 통해서도 감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사람들을 백신 접종 대상자로 할 경우 세밀한 추적이 가능한 인프라가 필요하고, 대상자를 일일이 찾아내 4일 이내에 신속하게 백신을 접종하는게 쉽지 않을 수 있다. 확진자 주변에 머물렀던 사람을 모두 넣을 경우에는 너무 많은 대상자가 포함될 수 있다.
김 교수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파티를 통해 원숭이두창이 전파되는 경우가 많아 접촉자를 특정할 수 없어서 그 곳에 있었던 사람을 대상으로 백신을 접종하자는 얘기가 나올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그런 상황은 아니다"며 "(공기 전파 가능성에 대비해)밀접 접촉자가 아닌 사람도 접종하지는 얘기는 더 근거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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