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탈바꿈①]'재벌 개혁'에서 '규제 개혁'으로…친기업 발맞춘다

기사등록 2022/06/04 09:00:00

최종수정 2022/06/04 09:03:43

'규제개혁 전담기구'에서 경쟁제한 부문 주관

'경쟁영향평가센터' 구축…불필요한 규제 개선

온플법 제정에서 '민간 자율규제안'으로 선회

M&A 규제도 완화…'글로벌 전담과' 신설 검토

[서울=뉴시스] 전신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2022.06.03. photo1006@newsis.com
[서울=뉴시스] 전신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2022.06.03. [email protected]


[세종=뉴시스] 이승재 기자 = "기업들이 모래주머니를 달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고 뛰기는 어렵다."

지난달 30일 윤석열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이제는 정부가 기업 투자 가로막는 규제를 풀어 화답할 때"라며 이 같이 밝혔다.

새 정부의 정책 기조가 친기업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발언이다. 이에 발맞춰 그간 '재계 저승사자'로 불려온 공정거래위원회의 지위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4일 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공정위는 조만간 새로 만들어질 정부의 '규제개혁 전담기구'에서 경쟁 제한적 규제 개혁을 주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얼마 전 유출된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 담긴 내용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경쟁영향평가센터'도 공정위 주도로 구축한다. 여기서는 과도한 등록·허가 요건, 공공조달 입찰 참가 자격 제한 등 시장 진입과 사업 활동을 막는 불필요한 정부 규제를 개선하는 업무를 맡게 된다.

아직 확정된 사안은 아니지만 새 정부에서 공정위가 맡게 될 역할을 대강 짐작해볼 수 있는 계획들이다.

당초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게 되면 공정위의 입지가 쪼그라들 수 있다는 견해가 많았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기업에 대한 자율과 최소 규제 원칙을 공약으로 내걸어 온 반면, 공정위는 이전 정부에서 '재벌 개혁'에 앞장서왔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공정경쟁을 통해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것이 공정위의 핵심 업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간 정부 주도로 규제를 만들어냈다면 앞으로는 민간이 끌어가고 정부는 뒤에서 받쳐주는 역할을 맡게 된다.

그간 코로나19 장기화로 경기가 침체됐던 만큼 규제 강화가 아닌 이런 식의 시장 친화적인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이호영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경제 불황에 직면한 상황에서 공정거래 정책도 이에 맞춰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세종=뉴시스] 강종민 기자 =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2019.09.05 ppkjm@newsis.com
[세종=뉴시스] 강종민 기자 =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2019.09.05 [email protected]


공정위, '플랫폼 자율규제안' 민간에 맡긴다

윤석열 정부의 친기업 정책 기조는 네이버, 카카오, 쿠팡 등 대형 온라인 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규제 방식에서부터 명확히 드러난다.

당초 공정위는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을 제정해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들의 '갑질'을 막으려 했다.

이 법의 핵심은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계약서 교부 의무, 온라인 플랫폼 중개사업자의 불공정거래 행위 기준, 사업자 간 분쟁해결제도, 위반 행위에 대한 공정위 조사·처리 및 사업자의 손해배상책임 등을 규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새 정부에서는 민간 기업들이 정하는 자율규제 방안이 이를 대신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공정위는 '플랫폼 자율규제'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민간 협의기구를 구성하고 있다. 이 협의체에는 네이버, 카카오 등 온라인 플랫폼 기업과 해당 플랫폼 입점업체, 소비자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게 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국정과제의 취지에 맞춰 정부 주도로 규제를 제시하기보다 '필요 최소한의 제도 장치'를 만들기 위한 민간 협의기구를 꾸리겠다는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민간이 주도적으로 논의할 수 있도록 하고, 제약이 있으면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자율규제 방안을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들이 직접 플랫폼 자율규제 방안을 만드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애초에 갑을관계가 명확히 나뉘어 있는 시장이기 때문에 일부 대기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규제가 적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화령 한국개발연구원(KDI) 플랫폼경제연구팀장은 "사전규제보다는 자율규제로 가는 방향성은 맞다고 보고 있다"며 "다만 불공정행위를 했을 때 법 집행이 강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원칙이 세워져야 하고, 그 위협이 신빙성이 있어야 자율규제도 제대로 작동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호영 교수는 "기존 규제를 다른 산업처럼 적용하면 되는지, 아니면 새로운 규제 틀을 마련하자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며 "빨리 시장에 메시지를 전달해줘야 사업자들이 혼란스러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주차장에 쿠팡 트럭이 주차되어 있다. 2022.05.12. 20hwan@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주차장에 쿠팡 트럭이 주차되어 있다. 2022.05.12. [email protected]


M&A 심사에 속도…글로벌 심사 전문팀 꾸릴 듯

새 정부에서는 기업 인수합병(M&A) 관련 규제가 완화되면서 심사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공정위는 기업결합 신고가 접수되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령 등에서 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해당 인수 건의 공정성을 따져보고 있다.

앞으로는 시장에 큰 영향이 없는 사모펀드(PEF) 설립 및 완전 모자회사 간 합병은 신고 의무를 면제한다는 방침이다.

글로벌 정합성과 기업 자율성을 높이기 위해 자진시정방안 제출 절차도 도입하기로 했다. 또한 반도체·전기차 등 혁신 산업의 기술제휴형 M&A는 보다 신속히 심사하는 방안도 살펴보고 있다.

공정위 내부에 '글로벌 기업결합 전담과'를 새로 만드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과 관련된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해외 경쟁당국의 기업결합심사가 길어지면서 전담팀을 신설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힘이 붙는 분위기다.

해당 국가에서 자국 기업의 시장 점유율 위축과 독과점 등을 문제 삼아 M&A를 승인하지 않을 수도 있고, 이러면 국내 기업에 피해가 갈 수 있는 탓이다.

실제로 올해 초 EU 집행위원회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을 불승인해 무산시킨 바 있다.

해외기업 간 M&A를 심사할 때에도 보다 심도 깊은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 공정위는 미국 대표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비디오 게임 개발업체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 건을 살펴보고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최근 국내 기업 간 M&A는 물론, 해외에서 들어오는 신고도 많다"며 "이런 것들을 꼼꼼히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전담조직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천공항=뉴시스] 이영환 기자 = 지난달 2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 화물기가 이륙하고 있다. 2022.05.24. 20hwan@newsis.com
[인천공항=뉴시스] 이영환 기자 = 지난달 2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 화물기가 이륙하고 있다. 2022.05.24.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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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탈바꿈①]'재벌 개혁'에서 '규제 개혁'으로…친기업 발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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