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사무엘 윤 "쾰른서 23년, 독일 궁정 가수 영광...이젠 후학 양성 몰두"

기사등록 2022/05/30 13:09:46

3월부터 서울대 교수로…쾰른과 이별

2012년 바이로이트 주역 서 세계 주목

"제자들 롤모델로…좋은 영향 나눌 것"

[서울=뉴시스]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 (사진=아트앤아티스트 제공) 2022.05.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 (사진=아트앤아티스트 제공) 2022.05.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강진아 기자 = "여러분들은 언제나 변함없이 제가 힘들거나 슬플 때도 똑같이 박수를 쳐줬습니다. 제 인생에 있어 쾰른 극장에서 당신들과 함께 보낸 시간을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지난 22일 독일 쾰른 오페라극장.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공연이 끝난 후 '궁정가수(Kammersänger·카머쟁어)' 칭호를 받은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은 객석을 바라보며 울컥했다. 23년간 쾰른 극장과 함께해온 시간이 스쳐 갔다. 몸이 악기인 성악가로서 긴 세월, 마음처럼 늘 좋은 공연만 선물하진 못했을 터다. 그러나 세계 무대를 활보하고 돌아온 쾰른은 늘 따뜻한 고향 같았다.

궁정가수는 기량이 뛰어난 성악가에게 독일 왕정 시대에 왕이 내렸던 칭호다. 독일어권 성악가 최고 영예로, 현재는 독일 주 정부에서 수여한다. 한국인 성악가 중에선 2011년 소프라노 헬렌 권과 베이스 전승현, 2018년 베이스 연광철이 호칭을 받았다.

사무엘 윤이 투우사 '에스카미요'로 출연한 이날 무대는 극장과 관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자리라 더 특별했다. 지난 3월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임용된 그는 쾰른의 종신 가수 자리를 떠나게 됐다. 그는 개보수 중인 극장이 2024년 완공될 때 불러준다면 축하하러 한걸음에 달려오겠다고 약속했다.

'바이로이트의 영웅'…"바그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

"성악가로서 23년간의 모든 시간을 정리해주는 상이죠. 한 명의 예술가가 탄생하기까지 많은 분의 협조와 가족의 도움 없이는 어려워요. 그 감사함의 결실이죠."
[서울=뉴시스]지난 22일(현지시간) 독일 쾰른 오페라 극장에서 열린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의 '궁정가수(KS)' 수여식. (사진=아트앤아티스트 제공) 2022.05.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지난 22일(현지시간) 독일 쾰른 오페라 극장에서 열린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의 '궁정가수(KS)' 수여식. (사진=아트앤아티스트 제공) 2022.05.2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 25일 서울대 한 카페에서 만난 사무엘 윤은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쾰른 극장과 가족들의 배려가 컸다고 했다. 종신 가수인 그가 1년 중 쾰른에서 노래한 건 사실 2개월 남짓이었다. 나머지 10개월은 전 세계 극장을 자유롭게 누볐다. "쾰른은 제가 전 세계 어디서든 노래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존중해줬어요. 항상 믿어주고 응원해준 분들과 버팀목이 돼준 아내에게 정말 감사해요."

궁정가수 칭호 수여식에서 울컥한 까닭은 사실 따로 있었다. 70대의 은퇴한 궁정가수 2명이 사무엘 윤을 직접 축하해주고자 참석했다. 1999년 처음 쾰른에 발을 들였던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그들의 눈물에 사무엘 윤도 목이 메었다. "이탈리아에서 갓 건너와 독일 말도 잘 못 할 때였어요. 그중 한 분이 혼자 외로이 대기실에 있던 제게 말 걸어주며 예뻐해 준 기억이 나요. 절 보며 우는 모습에, 울컥했죠."

지금은 주역을 도맡지만 초창기엔 단역만 하던 인내의 시간이 있었다. 20년 만에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됐다. 살갑게 챙겨준 이 70대 궁정가수가 자신이 사무엘 윤에게 기회를 줬다고 오래된 이야기를 꺼냈다. 그를 '피가로의 결혼'의 정원사 '안토니오' 역에 추천했다는 것.

"당시 본인이 맡았던 역인데 컨디션이 좋지 않아 저를 추천했다는 거예요. 짧은 역이지만 그땐 대사 한마디가 전부였던 제게 많은 분량이었죠. 열심히 준비해 잘 해냈고, 당시 극장장도 밀라노에서 온 병아리 같은 이 친구가 갖고 있는 목소리가 있다고 호평했어요."

세계 이목을 끈 건 '바그너의 성지'로 불리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2012년 개막작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주역이 결정적 계기였다. 이후 '바이로이트의 영웅'으로 불리며 그는 쾰른의 얼굴이 됐다. 성악가들의 꿈의 무대인 이 축제에 그는 2004년 '파르지팔'로 데뷔했다.
[서울=뉴시스]지난 22일(현지시간) 독일 쾰른 오페라 극장에서 열린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의 '궁정가수(KS)' 수여식. (사진=아트앤아티스트 제공) 2022.05.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지난 22일(현지시간) 독일 쾰른 오페라 극장에서 열린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의 '궁정가수(KS)' 수여식. (사진=아트앤아티스트 제공) 2022.05.2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바그너 가수로서의 시작은 2001년 쾰른에서 선보인 '니벨룽의 반지'의 번개의 신 '돈노'였다고 회상했다. "많은 분이 앞으로 제가 바그너 작품의 여러 역을 하겠다고 기대했는데, 그 상상이 현실이 된 거죠. 이탈리아에서 공부할 땐 독일 오페라를 할 거라고 상상도 못 했어요. 그런데 제 몸 안에 바그너를 부르기 적합한 성량과 넓은 음역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바그너 스페셜리스트'라는 수식이 부담도 되지만, 그에겐 선물이라고 했다. "바그너를 부르지 않았으면 사무엘 윤이라는 성악가가 세계적으로 알려지지 않았겠죠.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이에요."

후학 양성에 몰두…"제자들에게 좋은 영향 주는 통로로 역할"

"사실 제 우선순위는 항상 아이들(제자들)이었어요."

오랫동안 후학 양성에 뜻을 품어온 사무엘 윤은 모교인 서울대에서 본격적인 교육의 뜻을 펼친다.
[서울=뉴시스]2019년 1월 마드리드왕립극장에서 한 바그너의 '라인의황금'에서 '알베리히' 역으로 출연한 사무엘 윤. (사진=아트앤아티스트 제공) 2022.05.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2019년 1월 마드리드왕립극장에서 한 바그너의 '라인의황금'에서 '알베리히' 역으로 출연한 사무엘 윤. (사진=아트앤아티스트 제공) 2022.05.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유럽에서 활동하면서도 늘 후배 성악가들을 챙겨왔다. 베를린, 비엔나, 파리 등 공연하는 극장의 리허설룸을 빌려 그만의 마스터 클래스를 열었다. 어려운 친구들을 위해 무료로 레슨한다는 소문에 수십 명이 몰려들었다. 아침부터 시작한 레슨은 다음날 새벽에 끝나기도 했다. "15년 전부터 저는 교육자였어요. 제겐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었죠."

쾰른의 젊은 성악가 양성(영아티스트) 프로그램을 한국과 연계시킨 것도 그 일환이었다. 본래 호주 측과 이어오다가 2년 정도 끊긴 상황에서 그가 극장장을 찾아가 이를 성사시켰다. 2015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그램으로 뽑힌 7명 중 5명이 쾰른에 몸담고 있다. 3명은 정단원이 됐고, 2명은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종신 가수라는 보장된 자리를 박차고 나왔음에도 아쉬움은 없다. 그는 세계적인 성악가로 이름을 알렸던 모든 기회와 행운이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5~6년 전이라면 고민했겠지만, 지금은 과감하게 놓을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고 했다.

"유학온 학생들을 만나면서 좀 더 빨리 만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어요. 저도 삶의 반을 넘는 시간을 보냈고, 더 늦어지면 안 되겠다 싶었죠. 전 스스로 통로라고 생각해요. 제가 받은 걸 나눠주고, 아이들이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죠."

1순위는 제자들이지만 성악가로 무대를 놓진 않는다. 국내 무대는 물론 올여름엔 스웨덴, 겨울엔 이탈리아에서 공연한다. "안 해본 역이 없고, 안 서본 극장이 없어요. 무대 욕심보다는 저를 좋아해주는 분들을 위해 시간이 허락되는 한 하는 거죠. 열심히 가르치면서 제자들의 롤모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열심히 노래하는 성악가라는 걸 보여줘야죠."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button by close ad
button by close ad

[인터뷰]사무엘 윤 "쾰른서 23년, 독일 궁정 가수 영광...이젠 후학 양성 몰두"

기사등록 2022/05/30 13:09:46 최초수정

이시간 뉴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