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진상규명조사위, 대국민보고회서 경과 발표
광주역 등 3차례 집단 발포해놓고 '자위권' 천명
민간인 집단학살·부녀자 성폭행 등 계엄군 만행
무명 열사·행불자 신원 파악…'광수 1호'는 시민
'북한군 투입' 허위…최초 주장자 "당시엔 평양"
[서울·광주=뉴시스] 이준호 변재훈 전재훈 기자 =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지휘부가 비무장 시민에 집단 발포한 반인도적 행위를 '자위권' 구실로 은폐하려 한 정황 등이 드러났다. 발포 명령자 등 학살 책임까지 규명할 수 있을 지 관심을 모은다.
민간인 집단 학살 등을 서슴지 않은 계엄군 무자비한 진압 만행과 '북한군 침투설' 등 왜곡 주장의 진위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 3차례 집단 발포 뒤 '자위권' 구실로 은폐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는 12일 오후 서울사무소에서 대국민보고회를 열어 "광주역(80년 5월20일)과 전남도청(80년 5월21일) 집단 발포가 신군부 중심 별도 지휘 명령에 따른 것인지 파악 중이다"고 밝혔다.
특히 '최세창 3공수여단장이 광주역 현장 지휘 중 무전으로 발포 승인을 요청했다'는 무전병 증언을 확보했다. 군 최고 지휘부가 따로 발포 지휘를 했을 가능성을 추론할 수 있는 증언이다.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역시 일제 사격, 조준 사격, 철수 도중 집중 사격 등 총 3차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조사위는 3개 발포 유형이 현장 지휘관 재량에 의한 자위권 발동인지, 별도 지휘 계통에 따른 명령에 따른 것인지를 규명할 계획이다.
군 지휘부가 5월 19일부터 21일 오후 1시 사이 계림동, 광주역,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로 민간인을 학살한 이후, 21일 오후 7시 30분에서야 계엄사령관 명의로 자위권 보유를 천명한 점도 눈 여겨 보고 있다.
조사위는 사상자가 발생한 최소 3차례 이상의 집단 발포 이후 '자위권 보유 천명'은 위법하며 군의 반인도적 행위를 감추기 위한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 '민간인 학살·성폭행' 무자비 진압
조사위는 집중사격 받은 차량 내 확인 사살, 앰블런스 등 민간인 차량 무차별 사격, 송암동 일원 민간인 집단 학살 등을 뒷받침할 진술도 공개했다.
화정동 통합병원 확보 작전 중 배치한 저격수가 민가에 총격하는 등 무차별 발포 정황도 나왔다.
조사위는 민간인 집단학살이 20일 광주역, 21일 전남도청·전남대 일원, 21~24일 도심 봉쇄 외곽 도로 4곳 등 총 6개 지역에서 있었다고 판단, 경위를 들여다보고 있다.
계엄군에 의한 부녀자 성폭행 사건도 군 장병 진술 등을 토대로 실체를 확인 중이다. 해당 사건 이후 피해자가 출산한 사실이 있었다는 증인의 구체적 진술도 있었다.
조사위는 "7공수여단 병력이 광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야간 숙영 하면서 인근 유흥가·주택가를 수색했다는 계엄군 진술들이 있다. 다양한 증언 등을 토대로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 무명열사·행방불명자 신원 속속 파악
무명열사·행방불명자의 신원, 사망 경위도 드러났다. 조사 결과 1980년 5월 21일 장갑차를 타고 계엄군을 향해 전진하면서 "광주 만세"를 외치다 숨진 청년은 해남 출신 목공소 견습생 김준동씨였다.
김씨는 당일 오후 2시께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현장에서 계엄군 저격수의 조준 사격에 의해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총격 직후 김씨는 머리를 크게 다쳐 신원을 알 수 없었으나, 그를 겨눈 계엄군의 증언으로 42년 만에 이름을 되찾았다.
행방불명자였던 고(故) 김재영(당시 만 17세)군과 고 김광복(당시 만 14세)군의 신원도 최종 확인됐다. 이들 모두 1980년 5월 21일 금남로에서 소식이 끊겼다.
현재 재영 군 유해는 신원 미상자 묘지에 안장돼있다. 광복 군은 기존엔 양창근 열사로 알려졌던 민주묘지 1-38번 묘비에 묻혀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신원을 확인한 양 열사의 이장 과정에서 광복 군의 유해도 제 자리를 찾았다.
5·18보상심사위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기각됐던 신동남씨는 현재 민주묘지에 안장된 한 무명열사 유해와 일치, 신원이 확인됐다.
이로써 조사위 활동을 통해 행방불명자 3명의 신원이 파악됐다.
◇'김군'은 시민군 차복환씨…'북한군 침투설 허위' 종지부
극우 인사 지만원씨가 "광주 침투 북한특수군 1호(광수 1호)'로 지목한 '김군'의 정체도 일반 시민인 것으로 밝혀졌다.
동명의 다큐멘터리로도 알려진 '김군'은 차복환씨로 확인됐다. 차씨는 보고회에 직접 나와, 항쟁 당시 금남로 페퍼포그 차량 위에 올라 탄 자신이 보도 사진에 찍힌 경위 등을 이야기했다.
차씨는 "지만원씨로부터 사과를 받고 싶다. 필요하다면 법적 조치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김군은 광주 남구 송암동·효덕동 일원에서 계엄군 간 오인 교전 전후 사살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숨진 것으로 여겨진 김군 추정 인물은 '1963년생 자개공 김종철씨'로 드러났다.
조사위는 김종철씨가 효덕초등학교 앞 삼거리에서 연행 도중 계엄군에 사살된 뒤, 인근 야산 가매장을 거쳐 항쟁 직후 사체가 수습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조사위는 일부 탈북자들이 주장한 '5·18 북한군 광주 침투설'을 허위로 판단, 조사를 종결했다. 미 정부 문서, 군 기록 등을 근거로 꼽았다. 특히 '광주에 직접 침투했다'고 처음 주장한 탈북자는 '당시 평양에 있었다'며 진술했다.
◇ 신군부 정권 인권침해도 조사 과제
5·18 이후 전두환·노태우 신군부 정권의 인권 탄압도 규명한다. 구속 수감자·부상자·연행자 등을 강제 징집, 보안사령부 특별 관리 대상자로서 녹화 사업에 편입한 사실이 있는지 밝히는 것이 과제다.
특히 계엄 포고령 위반 등을 이유로 대학생을 '특수학적변동자'로 분류, 일부는 군 제대 이후에도 동향을 꾸준히 감시한 기록을 찾아냈다.
이에 따라 조사위는 1980년 '계엄포고령 위반자'로 강제 징집된 64명의 신원을 확보, 5·18 관련성 여부를 살핀다.
당시 합동수사본부가 5·18 관련자 중 일부를 '훈방 조치 후 삼청 계획 사범 편입 처리할 것'이라고 지시한 기록을 토대로, 삼청교육대 강제 입소 피해 주장 3건도 조사한다.
아울러 5·18 전후 전국 12개 시·도에서 연대 투쟁하다, 고초를 겪은 1000여 명도 인권 침해 조사 대상이다.
송선태 조사위원장은 "핵심 신군부 인사 사망과 증언 기피 등 각종 어려움도 있었다. 온전한 진상 규명을 위해 남은 조사기간 동안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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