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보화각 전시실 재개관...16일 개막
보존처리 유물 32점 전시..2층 전시실은 비운 채 공개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팔을 끊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간송미술관 전인건 관장이 울컥했다. "앞으로 국보를 경매에 내놓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2년간 벌어진 일 때문이었다. 2020년, 2021년 국보와 보물을 경매에 내놓아 세상에 충격을 줬다. 할아버지가 일제 강점기 어렵게 모은 유물들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세간의 입방아에 오른 경매는 유찰 됐다. 간송미술관의 굴욕이었다.비난의 화살은 전인건 관장으로 향했다. 간송 전형필(1906~1962)의 장손이었고, 3대째 운영하는 미술관장이었다. 상속 받은 미술관의 국보와 보물 주인은 전 관장이었다. 2020년 35억 원을 주고 경매 나온 보물 2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사들였지만, 다시 나온 국보는 난감했다. 결국 유찰됐고, 공중에 떴다. 간송이 이 꼴을 봤으면 뭐라 했을까. 안타까운 시선이 이어졌다. 이후 국보(금동삼존불감)는 외국계 암호화폐 투자자 모임 ‘헤리티지 다오(DAO)에 팔렸다. 25억 원에 구매했다고 다오에서 알려 또 논란이 됐다.
전인건 관장은 "헤리티지 다오가 사들인 금동삼존불감은 간송미술관 수장고에 있다"고 했다. 다오가 간송미술관에 영구 기탁했다. 간송미술관은 51% 지분을 가졌지만 기금 성격인 만큼 헤리티지 다오와 공동 소유다. "당장 전시 계획은 없지만 금동삼존불감을 공개하는 행사는 열 것"이라고 했다.
전 관장은 "이제 어지러운 일들이 정리됐다"며 "앞으로 심려 안끼치겠다"고 했다. 2018년 부친인 전성우 이사장이 작고한 후 벌어진 일이었다. 미술관은 허울만 좋았다. 미술관을 상속한 전인건 관장은 세월의 무게에 눌렸다. 재정난은 구조 조정을 해야 했다. 경매 출품은 피할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제 부채 정리가 됐다"는 그는 다사다난했던 과정을 말하다 동그란 눈이 작아지면서 슬픈 얼굴이 됐다.
51세 젊은 관장은 3대째 이어온 미술관을 혁신해야 했다. '문화재 지킴이' 사명감은 말로만은 안됐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거부한 외부 지원을 받아들였다. '간송 문화재는 간송만의 것이 아니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2019년 10월 박물관 등록을 했다. 간송미술관 건물 보화각은 2019년 국가등록문화재(근대문화유산)가 됐다. 국비와 지방비 12억여 원의 지원으로 보수·복원 작업으로 비지정 문화재 197점에 대한 보존 처리와 훼손 예방 작업이 이뤄졌다. 올해 1월 25일 착공한 대구 시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 건립에도 국비와 지방비 400억 원이 들어갔다.
전 관장은 NFT(대체불가토큰)와 같은 신기술을 활용한 사업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훈민정음 NFT' 논란을 의식한 반응이었다. 그는 '지정문화재만 있는게 아니잖냐"면서 "훈민정음 NFT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글로벌 팬 커뮤니티를 조성하고 전 세계 서포트 그룹이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전 관장은 지난해 국보 제 70호 훈민정음 해례본을 한정판 NFT로 발행했다. 개당 1억원에 판매가가 매겨져 001번부터 100번까지 총 100개다.
"전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명소를 만들고 싶다"는 전 관장은 "문화재 전시와 보존, 연구와 교육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계속 살려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보물을 팔고 ‘국보를 디지털화'해 숨통을 튼 간송미술관은 다시 살아났다. 중단했던 보화각 전시를 7년만에 재개한다. 2015년부터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와 협력 전시로 중단됐고 코로나19와 수장고 신축 공사로 인해 계속 휴관 상태였다.
7년만에 재개관...간송미술관 보화각 전시실 32점 전시
7년 만에 문을 연 이번 전시는 1971년부터 이어온 101번째 전시다.
권우의 문집인 '매헌선생문집' 초간본과 안견의 '추림촌거', 신사임당의 '포도', 심사정의 '삼일포' 등 30점의 명화가 수록된 '해동명화집'이 이번 전시를 통해 최초로 공개된다. 또 조선중기 화원화가 한시각의 '포대화상', 김홍도의 '낭원투도', 장승업의 '송하녹선' 등 지정문화재에 버금가는 명품들이 새롭게 복원된 모습으로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2층 전시실은 전시기간 동안 보수 정비전 마지막 모습을 보여준다. 진열장은 모두 비워진 채, 과거 보화각의 외경을 기록한 짧은 영상이 전시된다. 그 자체로 문화유산이 된 보화각 건물과 진열장 등을 보면서 간송미술관의 역사와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다. 매년 보화각을 찾아 각별한 애정을 보내준 관람객들을 위해 마지막 모습의 사진 찰영도 허용된다.
간송미술관은 2014년까지 봄 가을 매년 두 차례 전시가 열릴 때마다 훈훈했다. 미술관 입구부터 성북동 골목길에 줄지어 선 사람들로 화제가 됐다. 지금 말로 하면 '간송미술관 오픈런'이었다.
세상이 달라지고 미술관도 달라졌다. 미리 가본 간송미술관은 '사막의 집' 같았다. 잔디도 이끼도 없는 자갈돌 마당에서 봄빛을 받고 있는 미술관은 휑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곰삭은 세월의 더깨를 걷어낸 탓일까. 고서화의 눅진한 냄새조차 사라진 표백 된 느낌이다. 코로나19 시대로 전시도 예약해야 관람할 수 있다. 6월5일까지.
간송미술관은 1938년 국내 최초로 세워진 사립 미술관이다. 국보 12점이 있고 소장품 1만6000여점이 등록되어 있다. 이번 전시를 끝으로 보수 정비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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