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5·18민주광장 노제, 망월묘역 8묘지 안장
"민주·인권 투쟁 현장 누비다가 1월 음력 생일에 떠나다"
[광주=뉴시스]이영주 김혜인 기자 = "2021년 1월11일 음력으로 오늘은 엄마의 생신날입니다. 이제는 한열이와 편안히 영면하시길 간절히 비옵니다."
지난 9일 82세를 일기로 별세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마지막 길을 떠났다.
이한열기념사업회·광주전남추모연대 등으로 이뤄진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 장례위원회'는 11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고인의 넋을 위로하는 노제를 올렸다.
민중의례, 연도낭독, 인사말, 배은심 여사 민주유공자법 제정촉구 영상, 추도사, 조가(弔歌), 호상인사 순으로 진행했다.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원 등 추모객 300여명은 35년 동안 민주화·인권·노동 운동에 힘쓴 고인의 투쟁 정신을 잇겠다고 다짐했다.
고인의 운구 차량 주변에는 '민주의 길 걸어온 어머니 발자취 이어나가겠습니다' 등 만장 30여개가 펄럭였다.
노제에 앞서 참석자들은 주먹을 불끈 쥔 채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시민들은 배 여사가 국회 앞에서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외치는 영상이 흘러나오자 눈시울을 붉혔다. 날리는 눈발 사이로 낮게 울려퍼진 '마른잎 다시 살아나' 조가는 슬픔을 더했다.
이어 배 여사의 장녀 이숙례씨는 생일에 마지막 길을 떠나는 어머니를 애도했다. "저희 오남매는 어머니가 걸어오신 민주의 길에 한 발 짝 더 다가가겠다"면서 "아들 가슴에 묻고 살아간 35년 세월, 애가 타 울부짖으며 불러내던 그 울음도 이제는 들을 수 없습니다. 엄마, 이제 한열이와 편안히 영면하시길 간절히비옵니다"며 울먹였다.
이인숙 연세민주동문회장은 "배은심 어머니는 1987년 이한열 열사가 독재 정권의 최루탄에 맞아 숨진 뒤 그해 8월부터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활동을 시작하셨다"며 "다시는 민주주의를 위해 삶을 희생하고 고통받는 가족이 생기지 않도록 민주화 시위와 집회가 열리는 곳에 함께 해오셨다"고 애도했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한평생 비바람 몰아치는 거리에서, 민주와 인권 투쟁 현장에서 불의 앞에 목소리를 높이셨던 어머니는 시대의 이정표였으며 광주가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며 "민주열사·가족의 명예회복과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유족·유가협과 시민들은 제단에 헌화하며 배 여사의 넋을 기렸다.
장례위는 노제 직후 운구 차량에 유해를 싣고 생전 배 여사가 거주한 지산2동 자택을 방문했다.
이후 오후 1시께 광주 북구 망월묘지공원에서 하관식을 했다. 유해는 배 여사의 남편 이봉섭씨가 안장된 8묘역에 안치된다.
앞서 이날 오전 10시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배은심 여사의 발인식이 열렸다.
발인을 준비하는 동안 빈소 입구에서 지역 문화예술인들은 장송곡으로 '민중운동가'를 연주하며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배 여사는 유가협 회장을 맡아 의문사 진상 규명 특별법과 민주화운동 보상법 제정을 이끌어냈다.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촛불 집회 등 국가 폭력과 불의에 맞서는 현장에서 '민주화 투사'로 살았다.
배 여사는 지난 3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8일 퇴원했다. 이후 다시 쓰러져 치료를 받던 중인 9일 오전 5시28분 숨졌다.
한편 이한열 열사는 1987년 6월9일 6·10대회(고문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에서 전투경찰의 최루탄에 피격당했다. 이 사건은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돼 그해 6월29일 대통령 직선제 개헌의 초석이 됐지만, 그는 7월5일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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