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불 장악 이후 폭압, 인권 유린 발생…악화일로
부르카 미착용 女 총살, 공항 인근 주민 강제해산
스스로 앞세운 약속 어겨…국제사회 지적 잇따라
[서울=뉴시스] 임종명 기자 =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후 폭압과 인권 유린이 곳곳에서 발생하는 등 아프간에 공포정치가 시작됐다.
지난 15일 아프간 수도 카불이 탈레반에 장악된 이후부터 19일까지 외신 보도를 살펴보면 이때까지 제기됐던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국제사회가 지원을 예고했지만 이미 현지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미국 폭스뉴스는 지난 17일 아프간 북동부 타하르주 탈로칸에서 한 여성이 부르카(눈 부위를 제외한 전신을 가리는 의상)를 입고 나오지 않았다가 탈레반의 총에 맞아 숨졌다고 보도했다.
이날은 탈레반이 카불 장악 이후 처음으로 연 기자회견에서 여성의 권리를 존중하겠다고 밝힌 날이다.
수하일 샤힌 탈레반 대변인은 이날 영국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탈레반 여성에 대한 규제를 일부 완화하겠다며 여성들의 복직을 독려하고 여학생들의 복학을 허용하겠다고 했다.
부르카 대신 히잡(머리와 목을 가리는 두건)을 쓰도록 하겠다며 "이것이 우리의 정책 방침"이라고 했음에도 현장에선 부르카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총살당했다.
월스트리저널(WSJ)과 데일리메일 등 외신에 따르면 탈레반 공포는 아프간을 떠나려던 주민들이 모인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인근에서도 나타났다. 아프간 탈출 시도를 막기 위한 것이다.
외신은 탈레반이 주민들을 찾아가 채찍, 곤봉 등으로 여성과 어린이 등 주민들을 폭행했다. 그리고 해산하기 위해 총을 쏘기도 했다.
정확한 피해 규모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더선은 "1시간 만에 최소 6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했고 WSJ는 최소 3명이 숨지고 12명이 부상입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탈레반이 카불을 떠나려는 아프간 주민들의 탈출을 방해하기 위해 벌인 행동으로 분석된다. 미국과의 사전 협상에서 아프간 내·외국인의 탈출에 협조하겠다고 했던 약속도 어긴 셈이다.
더선은 이 사건에 대해 "아프간의 새로운 공포 현실"이라고 규정했다.
이와 함께 카불의 동쪽 도시 잘라라바드에서는 탈레반 통치에 항의하기 위한 시위가 일어났다. 이들은 탈레반이 점령지에 꽂은 흰 깃발을 내리고 아프간 국기를 게양하고자 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이날 국기 게양 시위는 1919년 아프간이 14년 동안의 영국 통치에서 독립한 것을 기념해 제정한 독립기념일(매년 8월19일)을 하루 앞두고 치러졌다.
탈레반은 시위세력을 해산하기 위해 공중으로 총을 쏘고 막대기로 사람들을 공격했다. 집으로 도망치려는 주민들도 공격했다고 AP통신은 밝혔다.
현지 언론의 바브락 아미르자다 기자는 탈레반이 자신과 다른 언론의 TV카메라맨을 구타했다고 전했다.
AP통신은 18일 아프간 중부 바미안 주에서는 1996년 숨진 시아파 지도자 압둘 알리 마자리의 석상이 파괴되기도 했다. 마자리는 하자라족 지도자로, 수니파인 탈레반과 대립했던 인물이다.
탈레반은 카불 점령 이후 사면령 등을 선포하며 보복정치가 없을 것이고 포용적이며 개방적인 정부를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탈레반의 변화'가 세계적 주목을 받기도 했으나 일련의 사건들로 그들 스스로 앞세웠던 약속까지 지키지 못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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