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상과실치사상' 7명 입건…굴삭기사 등 2명 영장 신청
불법 다단계 재하청, 다원이앤씨·한솔·백솔 임직원도 입건
'업체 선정 개입' 폭력조직 출신 문흥식씨 도미…공조 추적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사상자 17명을 낸 광주 재개발 철거 건물 붕괴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이 불법 하도급 이면 계약·업체 선정 과정상 부당 개입 의혹 등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광주경찰청 수사본부는 동구 학동 재개발정비사업 4구역 내 철거 현장 붕괴 사고와 관련해 총 14명을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16일 밝혔다.
부실 철거·안전 관리 소홀로 인명사고를 낸 혐의(업무상 과실치사상)로 입건된 이는 7명이다. 재개발사업 시행사 HDC현대산업개발 현장사무소 관계자 3명, 한솔 관계자 2명, 백솔 대표(굴삭기 기사), 감리 등이다.
특히 불법 재하청사 대표이자 참사 당시 굴삭기 기사 A(47)씨, 철거 하청사 한솔 현장소장 B(28)씨 등 2명에 대해선 사전구속영장이 신청됐다.
이들은 참사 현장 내 철거 공정 전반에 걸쳐 불법 다단계 하도급 의혹에도 연루돼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혐의도 받고 있다.
신생 무자격 업체 백솔이 지정건축물(석면) 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재하청을 준 다원이앤씨 임직원 2명도 건설산업기본법 등 혐의로 조사 중이다.
조직폭력배 출신으로 철거 공정 하청사 선정에 부당하게 개입, 영향력을 행사한 의혹에 휩싸인 전임 5·18구속부상자회장 문흥식씨 등도 입건됐다.
문씨는 각 구역별 철거 공정에 불법 재하청 업체 선정 등에 두루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금품·향응 제공 또는 별개 이권 보장 등 다양한 연유로 문씨가 업체 선정에 개입한 것이 아닌가 살피고 있다.
문씨는 재개발·재건축 대행업체 '미래로개발' 대표를 역임한 바 있고, 아내 명의의 재개발 컨설팅업체 '미래파워' 등을 실제 운영하며 학동 4구역 재개발조합 고문으로 참여했다.
다만 문씨의 억대 금품 수수 의혹에 대해선 자세한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있는 단계라고 경찰은 밝혔다.
그러나 전날 입건 과정에서 문씨가 지난 13일 오전 미국으로 출국, 도피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국제 공조 수사를 통해 신병 확보에 나섰다.
이 밖에 불법 하도급 계약 관련자, 학동 4구역 재개발사업 관련 위법 사실이 드러난 조합 관계자 등 4명도 각각 다른 혐의로 입건된 것으로 전해졌다.
건설산업기본법 29조 4항에 따라 건설 현장에서 공정 재하도급 계약은 원칙적으로 불법이다. 건설업자는 도급받은 공사의 전부 또는 주요 공사의 대부분을 다른 건설업자에게 도급을 다시 줄 수 없다.
다만 전문건설업자에게 재하도급하는 등의 일부는 예외지만, 이 경우에도 발주자의 서면 승낙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경찰은 불법 하도급 수사와 관련해 이면 계약·추가 업체 연루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확한 계약 내용·업체간 관계 등을 파악한다. 또 업체 선정 과정에서 청탁·금품 수수 등이 있었는지도 조사한다.
이를 위해 전날 오후 광주시청·동구청·학동 4구역 재개발정비조합 사무실 등 3곳에서 압수수색을 벌여 철거 허가·감리 관련 기록물·전산 자료 등을 확보했다.
이날 오전 10시부턴 재개발사업 추진 시행사로서 철거를 비롯한 모든 공정에 총괄 책임이 있는 HDC현대산업개발 서울 본사에서도 전격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불법 하도급 관행 속 신생 무자격 업체인 백솔이 철거 공정을 도맡으면서 총체적 안전 부실이 발생, 참사로 이어졌다는 것이 경찰의 판단이다.
특히 불법 하도급 구조를 거치면서 철거 공사비는 3.3m²당 28만 원→10만 원→4만 원까지 크게 줄었고, 백솔은 허가 받은 계획서 상 작업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5층부터 아래로 해체해야 하는 작업 절차를 어긴 채 1~2층을 먼저 허물었고, 굴삭기 팔이 짧아 5층 천장에 닿지 않자 무리하게 건물 안까지 진입했다.
굴삭기 기사 A씨는 '굴착기 팔이 5층 천장까지 닿지 않았다. 건물 진입 순간 굴삭기를 떠받치고 있던 흙더미와 함께 앞으로 쏠렸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골조가 약해진 철거물과 흙더미를 결박, 지탱케하는 쇠줄(이른바 '와이어')도 참사 당일엔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수직·수평하중을 고려치 않은 흙더미 활용 하향식 압쇄 공법 ▲작업 절차 무시(후면·저층부터 압쇄) ▲건물 지지용 쇠줄 미설치 ▲과도한 살수 ▲흙더미 유실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 붕괴로 이어졌을 것으로 경찰은 판단하고 있다.
경찰은 여러 붕괴 요인을 두루 검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이다. 전문기관 감정과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 등을 충분히 고려해 붕괴 원인을 최종 규명한다.
한편, 지난 9일 오후 학동 4구역 재개발사업 철거 현장에서 무너진 5층 건물이 승강장에 정차 중인 시내버스를 덮치면서 9명이 숨지고, 8명이 크게 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