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10명 중 7명 "생계 공유하면 가족"
정부 '동거·비혼 등 가족 개념 확대하겠다'
동거인도 가족 인정 '생활동반자법' 대안
[서울=뉴시스] 김남희 기자 = 최근 동성 부부가 건강보험 피부양 자격을 인정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해 눈길을 끈다.
법적 혼인은 아니지만 '사실혼'으로 인정해 피부양자 제도를 적용해달라는 건데, 정부가 향후 가족 정책의 기본방향을 '다양성'으로 정한 만큼 소송 결과에 관심이 모인다.
정부는 지난 4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는 정책 방향을 담은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앞으로 혼인하지 않고 동거하는 커플도 부부로 인정하는 등 가족의 개념을 넓히겠다는 선언이다.
그러나 '동성 부부'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민법과 가족관계등록법에서 정할 사안"이라고 선을 그어 동성 부부를 가족으로 규정하는 데는 험로가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동거인에게 가족과 같은 권리를 부여하는 '생활동반자법'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결혼 5년차 동성 부부 김용민·소성욱씨는 법적 혼인 관계는 아니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피부양자 적용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고 지난해 2월 피부양자 자격을 취득했다.
그러나 뒤늦게 이들이 동성 부부임을 인지한 건보공단은 같은 해 10월 자격을 무효화했다. 국민건강보험법상 사실혼 관계도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있는데, 동성 부부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해석한 것이다.
소씨 부부는 "실질적 혼인 관계에 있는데도 단지 동성 배우자라는 이유만으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부인하는 것은 피부양자 제도의 목적에 어긋난다"며 건강보험료 부과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피부양자로 인정받지 못하면 건강보험료를 각각 따로 내야 한다.
건보공단 측은 국내법상 동성혼이 인정되지 않는 만큼 임의로 사실혼 관계를 적용할 순 없다는 입장이다.
성소수자 단체는 동성 부부에게도 사실혼 관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소수자 가족구성원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가구넷)은 기자회견에서 "우리 법원은 민법상 혼인으로 인정되지 않는 관계일지라도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사실혼 배우자로서 보호를 인정한다"며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인정 역시 제도의 목적에 맞춰 배우자 해당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소송은 현재진행형이다. 동성 부부의 사실혼 관계 인정에 관한 첫 재판으로, 향후 가족 개념을 어디까지 확대할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할 수 있다.
여성가족부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9.7%가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이라고 답했다. 가족에 대한 인식이 이미 혼인과 혈연을 넘어서 확대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민법상 가족의 범위를 확대하는 일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민법 제779조는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로 규정한다. 각종 가족정책의 법적 토대인 건강가정기본법도 '가족이란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진 가족의 기본단위를 말한다'고 적시한다.
여가부 관계자는 "소관 부처인 법무부는 가족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기 때문에 법 개정이 쉽지 않다는 입장"이라며 "여성가족부도 건강가정기본계획이 동성애를 인정하는 건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고 전했다.
'별도의 입법 조치 없이 동성 간의 혼인을 허용할 수 없다'는 취지의 헌법재판소 결정 및 대법원 판시 사례가 있고, 동성혼 인정 여부는 민법과 가족관계등록법 등에서 관련 법률로 정할 사항으로 건강가정기본계획에 담을 수 없는 내용이란 설명이다.
정영애 여가부 장관은 건강가정기본계획 발표 당시 비혼 동거 범위에 '동성 부부'가 포함되는지 여부를 묻자 "국민들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확답을 피했다.
이는 동성혼 허용으로 논란이 비화해 정책 자체에 반대가 커질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계획 발표 직후 동성애 반대단체들은 "동성애를 합법화하려는 시도"라며 반대 시위를 열기도 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한국 사회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해야 한다고 개념적으로는 인식하고 있지만, 아직 감정적 준비는 덜 된 상태"라며 "당장 동성혼, 동성 부부를 법률적으로 인정하는 방향의 법 개정은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기존 법 제도로 포용하지 못하는 가족 유형을 포용하기 위한 대안으로 '생활동반자법'을 제정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부 선진국에서는 동거인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법을 시행하고 있다. 동거인도 가족으로 인정하면 수술동의서 작성, 보험 혜택, 소득공제, 재산 분할 등이 가능해진다.
프랑스는 1999년 동거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시민연대계약 '팍스(PACS)' 제도를 도입했다. 팍스는 두 성인이 계약을 통해 결혼한 부부와 유사한 권리와 의무를 갖는 제도다. 비혼 동반자의 권리가 보장되며 비혼 출산 비율은 1999년 42.7%에서 2012년 56.7%로 올랐고, 합계출산율은 1.79명에서 1.99명으로 증가했다.
독일은 2001년 생활동반자법을 입법해 동성커플의 법적 권리를 보호하기 시작했다. 동반자 관계 커플에게도 가족으로서의 권리와 부양 의무, 가사로 인한 채무의 연대 책임 등이 발생한다.
일본도 지방자치단체 조례를 통해 생활동반자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2015년 도쿄 시부야구는 '파트너십 증명제도'를 통해 동거하는 두 성인이 구 내에서 법률상 혼인에 상응하는 관계로 인정받을 수 있게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14년 진선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비혼 동거인의 권리를 인정하는 생활동반자법을 입법하려 했으나 개신교 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끝내 발의하지 못했다.
정 교수는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법률혼 규정을 먼저 바꾼 게 아니라 동거인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동거인이 함께 아이를 키울 권리부터 시작해 단계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넓혀나간 것"이라며 "혼인이 아닌 아이 중심으로 가족 개념을 바꾸고, 생활동반자로서 살아가는 형태에 사람들이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적 합의가 형성될 때 (가족 개념을 확장하는) 민법 개정도 가능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법적 혼인은 아니지만 '사실혼'으로 인정해 피부양자 제도를 적용해달라는 건데, 정부가 향후 가족 정책의 기본방향을 '다양성'으로 정한 만큼 소송 결과에 관심이 모인다.
정부는 지난 4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는 정책 방향을 담은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앞으로 혼인하지 않고 동거하는 커플도 부부로 인정하는 등 가족의 개념을 넓히겠다는 선언이다.
그러나 '동성 부부'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민법과 가족관계등록법에서 정할 사안"이라고 선을 그어 동성 부부를 가족으로 규정하는 데는 험로가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동거인에게 가족과 같은 권리를 부여하는 '생활동반자법'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동성 부부도 사실혼 인정해 달라' 국내 첫 재판
그러나 뒤늦게 이들이 동성 부부임을 인지한 건보공단은 같은 해 10월 자격을 무효화했다. 국민건강보험법상 사실혼 관계도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있는데, 동성 부부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해석한 것이다.
소씨 부부는 "실질적 혼인 관계에 있는데도 단지 동성 배우자라는 이유만으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부인하는 것은 피부양자 제도의 목적에 어긋난다"며 건강보험료 부과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피부양자로 인정받지 못하면 건강보험료를 각각 따로 내야 한다.
건보공단 측은 국내법상 동성혼이 인정되지 않는 만큼 임의로 사실혼 관계를 적용할 순 없다는 입장이다.
성소수자 단체는 동성 부부에게도 사실혼 관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소수자 가족구성원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가구넷)은 기자회견에서 "우리 법원은 민법상 혼인으로 인정되지 않는 관계일지라도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사실혼 배우자로서 보호를 인정한다"며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인정 역시 제도의 목적에 맞춰 배우자 해당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소송은 현재진행형이다. 동성 부부의 사실혼 관계 인정에 관한 첫 재판으로, 향후 가족 개념을 어디까지 확대할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할 수 있다.
민법상 가족 개념 확대는? "법 개정 쉽지 않을 것"
그러나 민법상 가족의 범위를 확대하는 일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민법 제779조는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로 규정한다. 각종 가족정책의 법적 토대인 건강가정기본법도 '가족이란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진 가족의 기본단위를 말한다'고 적시한다.
여가부 관계자는 "소관 부처인 법무부는 가족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기 때문에 법 개정이 쉽지 않다는 입장"이라며 "여성가족부도 건강가정기본계획이 동성애를 인정하는 건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고 전했다.
'별도의 입법 조치 없이 동성 간의 혼인을 허용할 수 없다'는 취지의 헌법재판소 결정 및 대법원 판시 사례가 있고, 동성혼 인정 여부는 민법과 가족관계등록법 등에서 관련 법률로 정할 사항으로 건강가정기본계획에 담을 수 없는 내용이란 설명이다.
정영애 여가부 장관은 건강가정기본계획 발표 당시 비혼 동거 범위에 '동성 부부'가 포함되는지 여부를 묻자 "국민들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확답을 피했다.
이는 동성혼 허용으로 논란이 비화해 정책 자체에 반대가 커질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계획 발표 직후 동성애 반대단체들은 "동성애를 합법화하려는 시도"라며 반대 시위를 열기도 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한국 사회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해야 한다고 개념적으로는 인식하고 있지만, 아직 감정적 준비는 덜 된 상태"라며 "당장 동성혼, 동성 부부를 법률적으로 인정하는 방향의 법 개정은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동거인도 가족으로 인정하는 '생활동반자법'
일부 선진국에서는 동거인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법을 시행하고 있다. 동거인도 가족으로 인정하면 수술동의서 작성, 보험 혜택, 소득공제, 재산 분할 등이 가능해진다.
프랑스는 1999년 동거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시민연대계약 '팍스(PACS)' 제도를 도입했다. 팍스는 두 성인이 계약을 통해 결혼한 부부와 유사한 권리와 의무를 갖는 제도다. 비혼 동반자의 권리가 보장되며 비혼 출산 비율은 1999년 42.7%에서 2012년 56.7%로 올랐고, 합계출산율은 1.79명에서 1.99명으로 증가했다.
독일은 2001년 생활동반자법을 입법해 동성커플의 법적 권리를 보호하기 시작했다. 동반자 관계 커플에게도 가족으로서의 권리와 부양 의무, 가사로 인한 채무의 연대 책임 등이 발생한다.
일본도 지방자치단체 조례를 통해 생활동반자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2015년 도쿄 시부야구는 '파트너십 증명제도'를 통해 동거하는 두 성인이 구 내에서 법률상 혼인에 상응하는 관계로 인정받을 수 있게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14년 진선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비혼 동거인의 권리를 인정하는 생활동반자법을 입법하려 했으나 개신교 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끝내 발의하지 못했다.
정 교수는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법률혼 규정을 먼저 바꾼 게 아니라 동거인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동거인이 함께 아이를 키울 권리부터 시작해 단계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넓혀나간 것"이라며 "혼인이 아닌 아이 중심으로 가족 개념을 바꾸고, 생활동반자로서 살아가는 형태에 사람들이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적 합의가 형성될 때 (가족 개념을 확장하는) 민법 개정도 가능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