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해도교거사 (사진=고성이씨 간서가 이재업 선생님 제공) 2021.04.13. photo@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1/04/13/NISI20210413_0000725627_web.jpg?rnd=20210413111310)
[서울=뉴시스] 해도교거사 (사진=고성이씨 간서가 이재업 선생님 제공) 2021.04.13.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김우락(金宇洛, 1854~1933) 여사의 '해도교거사'와 김우모(金羽模, 1874~1965) 여사의 '눈물뿌린 이별가'가 만주망명 110주년 기념 기획보도에 실린다.
한국국학진흥원과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이 만주망명 110주년 기념 기획보도 제3편으로 여성독립운동가의 삶을 담은 한글가사에 대한 내용을 진행한다고 13일 밝혔다.
김우락 여사의 '해도교거사'라는 한글가사가 전한다. 김우락 여사는 1911년 만주망명의 주역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의 아내이자 백하 김대락의 누이동생이다.
이 가사는 김우락 여사가 만주 망명 후 서간도에 정착해서 지었다. 자신의 성장 과정과 혼인 이후의 삶, 남편의 구국운동 상황, 만주 망명과 정착 이후 삶의 이야기 등 자신의 일생 경력을 한글로 기록한 자료다.
제목은 한글로 되어있지만 '해도(海島)'는 (서)간도를 의미하고 '교거(僑居)'는 임시거주를 의미한다.
가사 말미에 "신해년(1911) 국화절(음력 9월 9일)에 단풍은 비단 같고 찬바람은 소슬하니 원객(遠客)의 시름일세, 심심하고 수란한 중에 심신이 어지러워 자리에 혼자 누워 공부 없는 짧은 문필로 자신의 경력을 기록하니 남이 볼까 부끄럽소."라는 구절로 볼 때 기록 시기는 대략 음력으로 1911년 9월9일 (양력 10월 29일) 또는 그 이후로 추정된다.
한국국학진흥원과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이 만주망명 110주년 기념 기획보도 제3편으로 여성독립운동가의 삶을 담은 한글가사에 대한 내용을 진행한다고 13일 밝혔다.
김우락 여사의 '해도교거사'라는 한글가사가 전한다. 김우락 여사는 1911년 만주망명의 주역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의 아내이자 백하 김대락의 누이동생이다.
이 가사는 김우락 여사가 만주 망명 후 서간도에 정착해서 지었다. 자신의 성장 과정과 혼인 이후의 삶, 남편의 구국운동 상황, 만주 망명과 정착 이후 삶의 이야기 등 자신의 일생 경력을 한글로 기록한 자료다.
제목은 한글로 되어있지만 '해도(海島)'는 (서)간도를 의미하고 '교거(僑居)'는 임시거주를 의미한다.
가사 말미에 "신해년(1911) 국화절(음력 9월 9일)에 단풍은 비단 같고 찬바람은 소슬하니 원객(遠客)의 시름일세, 심심하고 수란한 중에 심신이 어지러워 자리에 혼자 누워 공부 없는 짧은 문필로 자신의 경력을 기록하니 남이 볼까 부끄럽소."라는 구절로 볼 때 기록 시기는 대략 음력으로 1911년 9월9일 (양력 10월 29일) 또는 그 이후로 추정된다.
![[서울=뉴시스] 눈물뿌린 이별가 (사진=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제공) 2021.04.13. photo@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1/04/13/NISI20210413_0000725631_web.jpg?rnd=20210413111533)
[서울=뉴시스] 눈물뿌린 이별가 (사진=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제공) 2021.04.13. [email protected]
김우모 여사가 지은 '눈물뿌린 이별가'라는 가사도 남아있다. 김우모 여사는 안동 서후면 금계마을 의성김씨 김세락의 딸로, 가일마을 안동권씨 권준희의 며느리이자 권동만의 아내다. 여사의 친정은 독립운동 명문가로 유명하다.
숙부 김회락은 김흥락과 함께 의병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어 총살당했다. 큰오빠 김양모는 의병에도 가담하고 파리장서에 서명하기도 했다. 둘째오빠 김원식은 만주에서 서로군정서, 대한통의부, 정의부 등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시댁도 안동의 모스크바로 불리며 권오설, 권오상, 권오운, 권오직 등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가일마을로, 시아버지 권준희는 광복회에 참여했다. 아들 권오헌도 신간회, 안동청년동맹 가담 등 활발한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이다.
'눈물뿌린 이별가'는 김우모 여사가 1934년에 만주로 망명한 두 아들과 함께 살기 위해 1940년 망명길에 오르면서 지은 가사로 고향과 벗을 이별하는 장면, 가족과의 해후에 대한 기대 등 애절한 심경이 담겼다.
가사 말미에 "수삼 일이 지나가면 고진감래 되리라. 기차에서 내려가면 아들 손자 만날 수 있으리. 면면히 손잡으면 반겨 맞이할 일 미리 좋다. 그동안 쌓인 억만 회포 낱낱이 더하며 이야기 할 것이다."라는 구절에서는 고향과 생이별 하는 고통도 있지만 만주에 있는 자식을 보고 싶어 하는 어머니의 심경을 느낄 수 있다.
정종섭 한국국학진흥원장은 "일제에 의해 나라가 무너진 상황에서 고향을 뒤로하고 고난의 길을 떠나는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 그들의 삶과 애환이 한글 가사에 고스란히 남아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다"며 "앞으로도 이런 근현대 기록자료를 발굴하는 작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한국국학진흥원과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은 만주망명 110주년을 맞이해 총12회에 걸쳐 기획 보도를 진행하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숙부 김회락은 김흥락과 함께 의병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어 총살당했다. 큰오빠 김양모는 의병에도 가담하고 파리장서에 서명하기도 했다. 둘째오빠 김원식은 만주에서 서로군정서, 대한통의부, 정의부 등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시댁도 안동의 모스크바로 불리며 권오설, 권오상, 권오운, 권오직 등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가일마을로, 시아버지 권준희는 광복회에 참여했다. 아들 권오헌도 신간회, 안동청년동맹 가담 등 활발한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이다.
'눈물뿌린 이별가'는 김우모 여사가 1934년에 만주로 망명한 두 아들과 함께 살기 위해 1940년 망명길에 오르면서 지은 가사로 고향과 벗을 이별하는 장면, 가족과의 해후에 대한 기대 등 애절한 심경이 담겼다.
가사 말미에 "수삼 일이 지나가면 고진감래 되리라. 기차에서 내려가면 아들 손자 만날 수 있으리. 면면히 손잡으면 반겨 맞이할 일 미리 좋다. 그동안 쌓인 억만 회포 낱낱이 더하며 이야기 할 것이다."라는 구절에서는 고향과 생이별 하는 고통도 있지만 만주에 있는 자식을 보고 싶어 하는 어머니의 심경을 느낄 수 있다.
정종섭 한국국학진흥원장은 "일제에 의해 나라가 무너진 상황에서 고향을 뒤로하고 고난의 길을 떠나는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 그들의 삶과 애환이 한글 가사에 고스란히 남아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다"며 "앞으로도 이런 근현대 기록자료를 발굴하는 작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한국국학진흥원과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은 만주망명 110주년을 맞이해 총12회에 걸쳐 기획 보도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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