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애정 남다른 두산
류중일 감독, 프랜차이즈 출신 감독으로 첫 우승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 타이거즈에서 쓴맛
[서울=뉴시스] 김주희 기자 = 프로 스포츠에서 '프랜차이즈 스타'는 구단을 상징하는 간판 인물을 뜻한다.
선수, 지도자의 구분은 없지만 실력만 좋다고 이런 칭호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해당 도시에서 성장해 연고지 팀에 입단한 뒤에도 꾸준히 활약한 선수나, 은퇴 후 선수 시절 몸담았던 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지속하는 이에게 주로 붙는 일종의 훈장 같은 단어다.
마흔 번째 시즌을 시작한 국내 프로야구에도 제법 많은 프랜차이즈 스토리가 쌓였다. 이제는 선수는 물론 프랜차이즈 출신 사령탑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그 팀의 문화를 가장 잘 알고, 분위기를 장악할 수 있다는 점은 프랜차이즈 감독의 큰 장점으로 꼽힌다. 올해도 2명의 프랜차이즈 감독들이 새로 지휘봉을 잡았다.
류지현 LG 트윈스과 김원형 SSG 랜더스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류 감독은 1990년 창단한 LG가 택한 첫 번째 프랜차이즈 출신 사령탑으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1994년 이후 정상에 서지 못하고 있는 LG는 '마지막 우승 멤버'인 류 감독과 숙원 풀기에 나선다.
선수, 지도자의 구분은 없지만 실력만 좋다고 이런 칭호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해당 도시에서 성장해 연고지 팀에 입단한 뒤에도 꾸준히 활약한 선수나, 은퇴 후 선수 시절 몸담았던 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지속하는 이에게 주로 붙는 일종의 훈장 같은 단어다.
마흔 번째 시즌을 시작한 국내 프로야구에도 제법 많은 프랜차이즈 스토리가 쌓였다. 이제는 선수는 물론 프랜차이즈 출신 사령탑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그 팀의 문화를 가장 잘 알고, 분위기를 장악할 수 있다는 점은 프랜차이즈 감독의 큰 장점으로 꼽힌다. 올해도 2명의 프랜차이즈 감독들이 새로 지휘봉을 잡았다.
류지현 LG 트윈스과 김원형 SSG 랜더스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류 감독은 1990년 창단한 LG가 택한 첫 번째 프랜차이즈 출신 사령탑으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1994년 이후 정상에 서지 못하고 있는 LG는 '마지막 우승 멤버'인 류 감독과 숙원 풀기에 나선다.
SK 와이번스를 인수해 KBO리그에 뛰어든 SSG는 SK의 프랜차이즈 출신 김원형 감독이 이끈다. 김 감독은 1991년 SK의 전신 격인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 2000년 SK 창단 멤버로 2010년까지 20년을 한 팀에서 뛰었다. 지난해 11월 사령탑으로 친정팀에 복귀한 그는 팀이 SSG에 인수되면서 창단 첫 감독이 됐다.
KBO리그 사상 첫 프랜차이즈 출신 사령탑은 OB 베어스를 맡았던 윤동균 감독이다.
1982년부터 1989년까지 OB에서 선수로 뛰었던 윤 감독은 KBO리그 역대 최초로 은퇴식을 갖기도 했다. 은퇴 후 OB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1991년 7월 감독대행을 거쳐 정식 감독으로 임명됐다.
이후 두 시즌 동안 무사히 팀을 지휘했던 그는 1994년 9월 선수단 항명 파동에 휘말려 시즌 중 자리에서 물러났다.
사상 첫 프랜차이즈 출신 감독은 OB 윤동균
1982년부터 1989년까지 OB에서 선수로 뛰었던 윤 감독은 KBO리그 역대 최초로 은퇴식을 갖기도 했다. 은퇴 후 OB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1991년 7월 감독대행을 거쳐 정식 감독으로 임명됐다.
이후 두 시즌 동안 무사히 팀을 지휘했던 그는 1994년 9월 선수단 항명 파동에 휘말려 시즌 중 자리에서 물러났다.
OB 시절을 포함해 두산 베어스는 프랜차이즈 감독과 가장 인연이 많은 팀이다. 성과도 나쁘지 않았다.
프랜차이즈 사령탑 중 대표 감독으로 꼽히는 이도 OB 출신으로 두산을 이끈 김경문 야구대표팀 감독이다. 1982년부터 1991년까지 선수 생활을 한 김 감독은 선수 생활 막바지 1년을 제외한 9년을 OB에 몸담았다.
이후 두산에서 배터리 코치를 거쳐 2004년 사령탑에 올랐다. 강한 리더십으로 7년 연속 5할 승률을 달성한 김 감독은 KBO리그를 대표하는 명장 중 한 명으로 꼽히기도 한다.
두산(OB 포함)은 윤동균 감독, 김경문 감독 이후에도 김진욱 감독, 김태형 감독 등의 프랜차이즈 출신 감독을 배출했다.
김경문 감독에 이어 두산 사령탑에 오른 김진욱 감독은 2011년 5위에 그친 팀을 데뷔 첫 시즌인 2012년 3위로 이끌었다. 2013년엔 정규시즌 2위, 한국시리즈 준우승의 성적을 냈다.
프랜차이즈 사령탑 중 대표 감독으로 꼽히는 이도 OB 출신으로 두산을 이끈 김경문 야구대표팀 감독이다. 1982년부터 1991년까지 선수 생활을 한 김 감독은 선수 생활 막바지 1년을 제외한 9년을 OB에 몸담았다.
이후 두산에서 배터리 코치를 거쳐 2004년 사령탑에 올랐다. 강한 리더십으로 7년 연속 5할 승률을 달성한 김 감독은 KBO리그를 대표하는 명장 중 한 명으로 꼽히기도 한다.
두산(OB 포함)은 윤동균 감독, 김경문 감독 이후에도 김진욱 감독, 김태형 감독 등의 프랜차이즈 출신 감독을 배출했다.
김경문 감독에 이어 두산 사령탑에 오른 김진욱 감독은 2011년 5위에 그친 팀을 데뷔 첫 시즌인 2012년 3위로 이끌었다. 2013년엔 정규시즌 2위, 한국시리즈 준우승의 성적을 냈다.
친정팀 이끌고 우승까지 달성한 김태형·류중일
2014년 10월 두산의 제10대 감독으로 선임된 김태형 감독은 프랜차이즈 출신 중 가장 성공한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매번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해 '2인자' 이미지가 강했던 팀에 본격적인 '최강 두산' 시대를 열어줬다.
부임 첫 시즌인 2015년부터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2019년에도 패권을 쥐었다. 김 감독이 사령탑에 오른 뒤 두산은 빠짐없이 한국시리즈 무대에 서며 역대 세 번째로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을 일궈냈다.
6년 연속 한국시리즈에서 팀을 지휘한 사령탑은 김 감독이 최초다.
김태형 감독 보다 앞서 프랜차이즈 출신으로 정상을 밟은 이도 있다. '30년 삼성맨'으로도 유명한 류중일 감독이다. 1987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류 감독은 1999년 선수 생활을 끝낸 뒤 삼성에서 지도자로 새출발했다. 한 번도 팀을 떠나지 않았던 류 감독은 2011년 감독 데뷔도 삼성에서 했다.
부임 첫 시즌인 2015년부터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2019년에도 패권을 쥐었다. 김 감독이 사령탑에 오른 뒤 두산은 빠짐없이 한국시리즈 무대에 서며 역대 세 번째로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을 일궈냈다.
6년 연속 한국시리즈에서 팀을 지휘한 사령탑은 김 감독이 최초다.
김태형 감독 보다 앞서 프랜차이즈 출신으로 정상을 밟은 이도 있다. '30년 삼성맨'으로도 유명한 류중일 감독이다. 1987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류 감독은 1999년 선수 생활을 끝낸 뒤 삼성에서 지도자로 새출발했다. 한 번도 팀을 떠나지 않았던 류 감독은 2011년 감독 데뷔도 삼성에서 했다.
류 감독과 함께 삼성은 '왕조' 시대를 열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프로야구 사상 첫 4연속 통합 우승을 일궜고, 2015년에도 정규시즌을 1위로 마쳤다. 그러나 팀 주축 선수들이 도박 스캔들로 이탈, 2016시즌 창단 첫 9위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인 뒤 류 감독은 재계약 없이 팀과 헤어졌다. 2년 뒤 류 감독이 삼성의 '재계 라이벌' LG 감독으로 부임하자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물론 프랜차이즈 출신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선수 시절 팬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팀의 자존심이자 대표 스타가 감독에 오른 뒤 실패했을 때 팬들은 더 큰 실망감을 느끼기도 한다.
'국보' 선동열, 타이거즈에서 초라한 퇴장
1985년 해태 타이거즈에서 데뷔, '무등산 폭격기'로 맹활약했던 선동열 감독도 '친정팀' KIA 타이거즈에서 쓴맛을 봤다. 선 감독은 2005년 삼성 사령탑에 올라 강력한 불펜진을 앞세워 '지키는 야구'로 두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포함 다섯 차례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성과를 냈다.
그리고 2012년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 고향에 금의환향했다. 그러나 선 감독의 영광은 짧았다. 계약 기간인 2012~2014년 3년 동안 한 번도 포스트시즌에 나서지 못했다. 2013~2014년에는 2년 연속 8위에 그쳤다.
그래도 구단은 2014년 말 2년 계약을 연장했다. 그러자 팬들의 계약 철회 요구가 빗발쳤다. 결국 성난 팬심을 이기지 못한 선 감독은 재계약 발표 6일 만에 자진사퇴를 결정했다. '국보' 선동열의 예상치 못한 초라한 퇴장이었다.
KIA는 앞서 '왕조'를 시대를 함께했던 강타자 김성한 감독에게 사령탑을 맡기기도 했다. 김 감독은 2002~2003년 2년 연속 팀을 정규리그 2위로 이끌었지만 포스트시즌에서 무기력하게 패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2003년 11월 KIA와 재계약했지만 2004시즌 중 성적 부진으로 경질됐다.
'미스터 롯데'로 불렸던 롯데 자이언츠의 원년 프랜차이즈 스타 김용희 감독은 1994년 39세의 젊은 나이에 롯데 지휘봉을 잡았다. 젊은 리더십으로 부임 2년 차인 롯데를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올려놓으며 지도력도 인정 받았다.
하지만 이후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함께 팀의 추락을 막지 못했고 1997년 최하위에 머물렀다. 결국 감독 5년 차인 1998시즌 중도 퇴진했다.
MBC 청룡의 창단 멤버였던 이광은 감독도 프랜차이즈 스타 시절과 달리 감독으론 쓴맛을 봤다.
LG에서 코치를 거쳐 2000년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해 LG를 매직리그 1위로 이끌었지만 '잠실 라이벌' 두산과 플레이오프에서 2승4패로 졌다. 이듬해는 초반 부진이 길어지자 5월 지휘봉을 내려놨다.
그리고 2012년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 고향에 금의환향했다. 그러나 선 감독의 영광은 짧았다. 계약 기간인 2012~2014년 3년 동안 한 번도 포스트시즌에 나서지 못했다. 2013~2014년에는 2년 연속 8위에 그쳤다.
그래도 구단은 2014년 말 2년 계약을 연장했다. 그러자 팬들의 계약 철회 요구가 빗발쳤다. 결국 성난 팬심을 이기지 못한 선 감독은 재계약 발표 6일 만에 자진사퇴를 결정했다. '국보' 선동열의 예상치 못한 초라한 퇴장이었다.
KIA는 앞서 '왕조'를 시대를 함께했던 강타자 김성한 감독에게 사령탑을 맡기기도 했다. 김 감독은 2002~2003년 2년 연속 팀을 정규리그 2위로 이끌었지만 포스트시즌에서 무기력하게 패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2003년 11월 KIA와 재계약했지만 2004시즌 중 성적 부진으로 경질됐다.
'미스터 롯데'로 불렸던 롯데 자이언츠의 원년 프랜차이즈 스타 김용희 감독은 1994년 39세의 젊은 나이에 롯데 지휘봉을 잡았다. 젊은 리더십으로 부임 2년 차인 롯데를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올려놓으며 지도력도 인정 받았다.
하지만 이후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함께 팀의 추락을 막지 못했고 1997년 최하위에 머물렀다. 결국 감독 5년 차인 1998시즌 중도 퇴진했다.
한용덕 감독, 10년 만의 가을야구에서 14연패 굴욕까지
LG에서 코치를 거쳐 2000년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해 LG를 매직리그 1위로 이끌었지만 '잠실 라이벌' 두산과 플레이오프에서 2승4패로 졌다. 이듬해는 초반 부진이 길어지자 5월 지휘봉을 내려놨다.
한화 이글스 11대 사령탑에 올랐던 한용덕 감독은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현역 시절 통산 120승을 거두며 한화를 대표하는 투수로 활약했던 그는 은퇴 후 한화에서 투수 코치, 감독대행, 단장 특별보좌역 등 다양한 보직을 거쳤다.
감독으로 출발은 성공적이었다. 2018년 부임 첫 해 팀을 3위로 올려놓으며 한화에 11년 만의 가을야구를 선사했다. 구단과 팬 모두 암흑기를 지워낸 한 감독에 열광했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2019년 9위로 떨어져 겨우 최하위를 면했고, 2020년 6월에는 14연패를 기록, 구단 역대 최다 연패 타이를 이뤘다. 결국 한 감독은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한 감독이 사퇴한 뒤에도 한화는 4번을 더 지고서야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한편 구단 역사가 짧은 NC 다이노스, KT 위즈는 아직 프랜차이즈 출신 감독을 배출하지 못했다.
※스잘알은 '스포츠 잘 알고 봅시다'의 줄임말로 재미있는 스포츠 이야기와 함께 어려운 스포츠 용어, 규칙 등을 쉽게 풀어주는 뉴시스 스포츠부의 연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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