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당했는데 교통사고 사망 처리…법원 "부실수사"(종합)

기사등록 2021/04/02 15:23:50

최종수정 2021/04/02 15:28:14

대구 여대생 사망사건 초동수사 부실 논란

유족들 손해배상 소송…"1억3천만원 배상"

"'소멸시효가 지났다' 주장은 정의에 반해"

범인 지목 스리랑카인, 공소시효 도과 무죄

[서울=뉴시스] (그래픽=뉴시스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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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류인선 기자 = 1998년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사건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이 당시 경찰의 부실수사로 인한 위법을 인정하며 국가가 유족들에게 총 1억3000만여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부장판사 이관용)는 2일 대구 여대생 사망사건 피해자 정모(당시 18세)양의 유족들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앞서 1998년 10월17일 새벽 학교 축제를 끝내고 귀가하던 정양이 구마고속도로에서 덤프트럭에 치여 숨진 채 발견됐다. 같은 해 12월 사건은 단순 교통사망사고로 종결됐고, 덤프트럭 운전자는 과실 불인정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됐다.

당시 사건 장소는 정양 집과는 반대 방향이었고, 거리는 약 7㎞ 떨어진 곳이었다. 또 정양은 속옷을 입지 않은 채 청바지와 정장 상의만 입은 채 발견됐다. 뒤늦게 발견된 정양의 속옷에서는 정액이 검출되기도 했다.

정양의 유족들은 수사기관의 부실한 초동수사로 인한 정신적 손해를 배상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국가 측 대리인은 변론 과정에서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검찰이 2013년 9월 스리랑카인 K씨를 성범죄자로 기소했고, 그때 비로소 수사기관의 잘못을 알 수 있었다"며 "자기 책임으로 빚어진 장애에 대해서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하는 것은 정의와 공평의 관념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양은 속옷을 입지 않은 채로 상의와 바지만 입고 있었고 집 방향과 7㎞ 떨어진 구마선 하행선 중앙분리대에서 발견됐다"며 "남자친구를 거꾸로 부축했으면 무단횡단 중 사고를 당했다고 보기에 부적절한 의심점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경찰이 사건 발생 직후 교통사고로 성급히 판단해 현장 수사와 증거 수집을 하지 않고, 증거물 감정을 지연하는 등 부실하게 초동수사한 것은 현저히 불합리하게 경찰의 직무상 의무를 위반했다"며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성범죄가 의심된다는 진정이 있었지만 속옷 착용 여부를 영안실 직원에게 전화로 확인한 점 ▲질속 분비물 검사를 바로 시행하지 않은 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 의뢰를 지연한 점 등을 부실한 초동수사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부실한 초동수사로 긴시간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이 명백하다며 정신적 손해배상은 인정했다. 다만 정양이 살아있었다면 벌었을 수입에 대한 재산상 손해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재판부는 국가가 정양의 부모에게 각 2000만원, 형제 3명에게 각 5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사고 당시 98년 10월17일부터 지연 이자를 계산하면 총 1억3000만원이다.

한편 2013년 정씨의 속옷에서 검출된 정액 DNA와 일치하는 인물로 스리랑카인 K씨가 지목됐다. 하지만 특수강간 혐의 공소시효 10년이 지나 처벌할 수 없었다.

무죄가 확정된 후 강제출국된 K씨는 스리랑카 현지에서 재판에 넘겨진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K씨에게는 법무부의 요청과 달리 성추행 혐의가 적용된 것으로 전해졌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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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당했는데 교통사고 사망 처리…법원 "부실수사"(종합)

기사등록 2021/04/02 15:23:50 최초수정 2021/04/02 15: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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