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 업무 관련성·업무상 정보 이용 '관건'
투기 입증할 객관적인 증거 확보해야 '몰수'
[서울=뉴시스] 박성환 기자 =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현직 직원들의 투기 정황이 잇따라 드러난 가운데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집값과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주거 불안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터진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흔드는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공공주도의 주택 공급을 주도해야 할 LH 직원들이 불법 투기를 막기는커녕 오히려 투기에 나서면서 2·4 공급 대책에 대한 불신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으로 악화된 여론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지난 8일 경남 진주시 LH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LH 직원들의 '농지 투기'를 규탄했다.
전농은 "3기 신도시 LH 직원들이 투기한 땅 중 98.6%가 농지라는 사실에 분노한다"며 "가장 만만한 투기대상 중 하나가 농지라는 점에 망연자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자유전의 원칙을 정한 대한민국 헌법 121조에 따라 농지법을 전면 개정해 농사짓는 농민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 함으로써 농지 투기를 원천 차단하라"며 "한국토지주택공사는 농지를 소유한 직원들을 전면 공개하고, 정부는 투기꾼이 소유한 농지를 즉각 몰수하라"고 주장했다.
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번 투기 의혹과 관련해 정부 자체 조사가 아닌 국정감사나 검찰 조사를 요구하는 글과 함께 광명 시흥 신도시 지정을 취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잇따라 올라왔다.
정부는 성난 부동산 민심을 달래기 위해 초강력 대응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지난 3일 광명 시흥 지구는 물론 3기 신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국토부, LH 등 관계 공공기관의 신규택지개발 관련 부서 근무자와 가족에 대한 토지거래 전수조사를 지시하고, 국무총리실이 지휘하도록 했다.
정부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부동산 투기 확인 시 수사 의뢰, 징계 조치 등 무관용 원칙을 천명했다. 또 토지·주택업무 관련 부처·기관 직원들은 일정 범주 토지 거래를 신고토록 하거나 제한하고 상시 감시를 위한 부동산 등록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이번 사태에 대한 국민의 커다란 실망은 부동산 시장에서 나타난 불법과 편법, 불공정에 대한 감정이 함께 표출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4대 시장교란 행위'에 대해서는 차제에 발본색원하겠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비공개 및 내부정보를 불법 부당하게 활용한 투기 행위 ▲부동산 거래질서를 위협하는 담합 등 시세조작행위 ▲허위매물과 신고가 계약 후 취소 등 불법중개 및 교란행위 ▲내 집 마련 기회를 빼앗아가는 불법전매 및 부당청약행위 등에 대해 가중처벌도 강구하기로 했다.
경찰 역시 지난 9일 LH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수사관 67명을 동원해 압수수색영장을 진행했다. 압수수색 대상은 LH 본사와 경기지역 과천의왕사업본부, 인천지역 광명시흥사업본부 등 3곳을 비롯해 투기 의혹을 받는 직원 13명의 주거지가 포함됐다. 13명에 대한 출국 금지 조치도 내렸다.
LH가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LH 임직원들은 2017년 8월30일부터 지난해 2월27일까지 12개 필지를 100억원대에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흥에서는 직원 10명이 8개 필지(1만7995㎡)를 단독이나 공유 형태로, 광명에선 3명이 4개 필지(8990㎡)를 사들였다. 또 13명 가운데 5명이 부장급인 2급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일벌백계와 토지거래 제한 등의 대책을, 정치권에선 투기 이익 환수를 위한 법안을 잇따라 내놓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처벌과 환수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신도시 업무 관련성·업무상 비밀 여부 입증이 어려운 데다, 토지 취득 자체를 사전에 막을 규정도 없기 때문이다.
LH 직원들에게는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부패방지법)과 공공주택특별법, LH법 위반 혐의가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LH 직원들이 업무상 비밀을 통해 재산상의 이익을 취한 사실이 확인되면, 부패방지법을 적용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의 벌금과 함께 '재물·재산상의 이익 몰수·추징'이 가능하다.
다만, 의혹을 받는 직원 13명 가운데 11명이 정년을 앞둔 50대 중후반으로, 신도시 관련 부서 근무자가 아니다. 또 광명 시흥 지구는 예전부터 개발 예정지로 꼽힌 지역이다 보니 '업무상 비밀'을 입증하기가 간단치 않다.
이들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업무 담당자로부터 개발 정보를 언제 입수했는지, 또 얼마나 구체적인지 등을 확인하는 것이 관건이다. 지분 쪼개기와 허위로 작성된 농사계획서를 통한 거액을 대출받아 사전에 땅을 무더기로 매입한 정황을 입증할 구체적인 증거 필요하다는 얘기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LH 직원들이 취득한 부당이익을 가능한 수단을 모두 동원해 환수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특히 특별법을 만들어 소급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변 장관은 지난 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토지 몰수를 위해 특별법을 만들어 소급적용을 할 필요가 있는데, 동의하냐"는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논란이 있지만 부진정 소급입법을 통해 이익이 실현되지 않은 경우도 가능한지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변 장관은 또 "부패방지법 관련, 대법원 판례에서 직접 비밀이 아니라도 공무상 간접적으로 얻은 거도 충분히 비밀로 간주할 수 있다"며 "판례에 따르면 회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업무상 정보를 이용해 부동산 투기를 했다면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업무상 관련한 정보를 이용해 부동산 투기를 한 것이 사실로 확인되면 그에 상응하는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며 "업무상 취득한 정보에 대한 비밀 유지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벌은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권 교수는 "LH 직원들이 사전에 정보를 알고 땅을 샀는지가 관건"이라며 "업무상 비밀 여부 위반에 대해 객관적으로 입증하고, 사법부의 결론이 나기 전까지 개인 사유 재산으로 환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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